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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세찬 Jan 22. 2024

나는 왜 사업을 하는가

다시 브런치를 시작하며

32년 인생, 첫 사업의 시작


2021년 12월, 평소 친하게 지냈던 형님으로부터 같이 동업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창업 아이템은 '농산물 유통 플랫폼'. 전국 농수산물 공영 도매시장에서 일하시는 도매상(중도매인)들을 타겟으로 한 '온라인 도매시장'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평소 창업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나는 그날 형님과의 만남이 끝난 직후 바로 농산물 유통 시장 조사에 착수했다.



전국 팔도에 퍼져있는 3~40여 개의 공영도매시장은 대한민국 농산물의 50%가 거쳐가는,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직접 방문해 눈으로 본 도매시장은 새로움 그 자체였다. 그곳의 중도매인들은 매일 밤 10시부터 아침 9시까지 납품할 물건을 준비하기 위해 경매에 참여한다. 중도매인은 거래처로부터 주문받은 물량을 원하는 가격에 납품하기 위해 1분 1초가 아쉬울 정도로 뛰어다닌다. 경매는 매 3초마다 1건씩 빠르게 낙찰되었고 경매가 끝난 물건은 그 즉시 지게차와 전동차에 실려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경매사의 흥겨운 추임새와 지게차의 후진 기어에서 흘러나오는 충돌경고음, 이따금씩 오가는 상인들의 욕설 섞인 고성으로 도매시장의 새벽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직접 눈으로 본 가락시장 과일동의 경매 현장


하지만 전국 도매시장은 발전 없는 시설과 낙후된 거래 방식 속에 점점 기회를 잃어가고 있었다. 산지 직거래가 활성화된 이후 도매시장을 거쳐가는 물류량은 매해 줄어들었고,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옛것을 고수한 거래 방식은 융통성이 부족해 보였다. 거의 모든 영수증이 손으로 작성되고 있었고, 그중 절반 이상은 외상으로 기록되었다.



물론 도매 단위의 대량 거래인만큼 거래처 간 신뢰에 기반한 외상 거래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꽤나 많은 수의 상인들이 거래처가 파산한 후 외상매입금을 돌려받지 못한 전적이 있었고, 변변한 구제책 마저 부재한 상황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기회를 포착한 지점이었다. 온라인 기반의 전산화된 거래방식이 도입된다면 상인들이 거래 장부와 영수증 작성에 들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우리 또한 거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으니 높은 가치를 지닌 농업 데이터 기업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오래된 거래 방식을 개선하고 '역물류 현상' 등 도매시장 중심 유통구조에 내재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송파 가락시장


익숙한 시장은 아니었지만 잠재 기회가 커 보였고, 무엇보다 청과물 유통업을 하는 형님이 있었기에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큰 꿈을 꾸며 다니던 디지털 광고대행사를 퇴사 후 생애 첫 창업에 도전하였다.



시작부터 찾아온 위기감


나와 공동창업자, 그리고 농부이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 평소 농업테크(Agtech)에 관심이 많았던 개발자 한 명이 모여 우리는 '팜도라'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었다.



팜도라는 '농가'를 뜻하는 'Farm'과 '선물'이라는 뜻을 지닌 'Dora'를 합쳐 '농산물 시장에 새로운 선물이 되자'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공동창업자였던 형님이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이름으로 나는 그 이름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당연하게도 안정적인 스타트업을 위해선 자금이 필요했고 나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지원사업에 지원했다. 문제(Problem)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문제 해결에 최적화된 솔루션(Solution)과 구성원들(Team)이 준비되었기에 원대한 비전(Scale-Up)을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을 한 줄 한 줄 사업계획서에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30여 장의 문서를 1주일간 밤새 만들었더니 꽤나 그럴싸한 모습이 되었다. 내용이 좋았는지 혹은 해결하려는 문제가 좋았는지, 우리는 예비창업패키지에 최종 선정되어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창업지원금을 받았다.


당시 제출했던 사업계획서


우리는 서비스 기획과 고객 인터뷰, 회의, 그리고 다시 서비스 기획을 수없이 반복하며 착실하게 프로덕트를 설계해 나갔다. 같은 기간, 입주사업에도 운 좋게 선정되어 광진경제허브센터에 사무실도 얻었다. 새롭게 배워야 할 것 투성이었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가장 큰 수확은 광고대행사를 다니던 시절, 입사 동기였던 친구를 꼬시는데 성공했던 일이었다. 일을 믿고 맡긴다면 그 친구만 한 사람이 없었기에 퇴사를 하고 나서도 몇 번이고 찾아가 함께 술을 마시며 사업 이야기를 해줬다. 기나긴 삼고초려 끝에 우리는 함께 하자는데 합의했고, 그 친구는 나를 믿고 퇴사 후 팀에 합류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이없고 무모한 도전이었을까. 아직도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순탄할 것 같았던 우리의 여행도 얼마 가지 못해 위기를 맞이했다. 개발이 막바지로 다다르고 있을 시점, 문득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인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뭘 놓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 불안하지? 고민이 가득했지만 어떤 답안도 떠오르질 않았다. 프로덕트 기획에 문제가 없다는 형님의 말씀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딱히 묘안이 없었기에 나는 직접 시장에 들어가 보기로 결심했다. 그곳에서 상인들과 함께 동고동락 하다 보면, 비어있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새벽, 밤새 일하는 가락시장의 상인들은 아주 잠깐의 휴식 시간에도 잠을 청한다. 그것이 지게차 위라고 할지라도


2022년의 가을이 다가오고 있을 무렵 나는 한국 최대 공영도매시장 송파가락시장의 한 청과회사에 위장취업(?)하여 일을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매일 밤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내가 맡은 일은 낙찰된 물건을 거래처의 트럭에 옮겨 싣는 일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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