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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세찬 Jan 23. 2024

나는 왜 사업을 하는가 ②

다시 브런치를 시작하며

>> 나는 왜 사업을 하는가 1편




가락시장에서의 밤


광진경제허브센터 앞에서 320번 버스를 타면 가락시장옆 앞에 바로 내릴 수 있다. 나는 매일 사무실에서 서비스 기획과 기타 업무를 처리하고 밤 11시 30분이 되면 사무실을 나서 가락시장으로 향했다.



첫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사장님이 경매를 보는 장소를 따라다녔다. 방울토마토는 어떤 게 맛있으며, 귤은 어떤 걸 골라야 하는지. 빼곡히 줄 지어 놓인 과일 박스들 중 제일 윗 박스는 경매 전 맛을 볼 수 있도록 열어 놓는데, 틈틈이 귤을 까먹었던 생각이 난다.



낙찰된 과일 박스를 팔레트에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도 배웠다. 사과는 8방으로 쌓고, 귤은 13방으로 쌓고 방울토마토는 16방으로 쌓는다. (방 : 팔레트 한 층 당 쌓는 박스의 수) 조금이라도 잘못 쌓으면 팔레트 계산이 어려워 지기에 외우는데 꽤나 고생했다.


경매장에서 까먹는 귤은 언제나 맛있다


나는 매일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가락시장에서 일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전 9시, 약 4시간 정도 잠을 청한 뒤 사무실로 출근했고, 다시 자정이 되면 가락시장으로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업무가 미숙했지만 함께 일하는 형님들이 잘 가르쳐 주셨다.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청과회사에 취업했기에 즐거운 일들이 많았다. 전동차를 몰다 다른 청과회사에서 낙찰한 과일 박스를 깨 먹어 배상한 일도 있었다. 내가 과일을 깬 사실을 모르고 지나쳐서 나중에 정말 많은 욕을 먹었다. 천장에 달린 CCTV로 누가 어떤 사고를 쳤는지 다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아침 7시가 되면 형님들과 함께 시장 내 매점에서 배달해 준 아침을 먹는데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 제육, 매운탕, 비빔밥, 순두부, 김치찌개 등 가락시장에서 직구한 재료들로 만들어서 그런지 더 맛있었다.


사장님께서 가끔씩 집에가서 먹으라며 과일을 챙겨주셨다.


피곤한 하루하루였지만 배우는 것이 많아서 기뻤다. 나는 매일 밤 새로 배운 것들을 다음 날 팀원들에게 공유해 줬고 개발 중인 프로덕트에 최대한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서비스 실패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딱 1주일이 지나, 우리가 만들던 프로덕트가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유를 크게 2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너무 불편하다


팜도라는 온라인 거래 지원을 통해 가락시장에서 종이 영수증을 제거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어차피 현금으로 거래하는 곳이었기에 복잡한 결제 기능도 모두 뺐다. (필요하다면 우리가 중간에서 직접 송금해 줄 생각도 했다) 전화나 문자로 받는 주문 대신 터치 몇 번으로 주문을 받을 수 있게 만들고 일간, 주간, 월간으로 거래 장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그렇게 나름 린(?)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건만, 내가 가락시장에서 일하며 깨달은 첫 번째 사실은 우리의 프로덕트가 사용하기에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도매시장 바닥에선 펜으로 적고, 틀렸을 때는 찍찍 긋고, 동료들끼리 주고받으며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종이 장부가 최고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기록지였다. 물론 손으로 영수증을 적으면 출하가 끝난 뒤 정리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소모되지만, 그것 만큼 좋은 선택지도 없었던 것이다.


박스를 어디로 옮겨야 할까


그런 상인들에게 매 순간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상품 리스트를 확인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중간에 박스 개수가 바뀌었다면? 다른 출하자의 상품을 출하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가 열리는 것이다.



② 목적에 부합하지 못했다


팜도라는 주문 직후, 경매에 참여하여 상품을 출하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원스탑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하지만 그 프로세스가 오히려 청과회사 직원들의 업무량을 더 늘리는 꼴이 되었다. 실시간으로 변경되는 물량과 주문 내역을 모두 업데이트해야 했기 때문이다.



종이 영수증을 없애서 상인들의 근로 시간을 단축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근로시간이 더 늘어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막바지에 다다른 론칭을 포기할 순 없었다. 우리는 기존 프로세스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적화해 최대한 빠르게 출시했다. 아이디어 자체는 틀리지 않았으니 어찌어찌 비벼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팀원들과 하루에 3번 씩은 회의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하며 알게 된 사장님들에게 베타 버전을 보여드리니 약간의 흥미를 보였지만 모두 사용을 꺼려했다. 일주일 뒤 우리는 서비스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장에서 일하는 기간, 기존 제품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두 번째 프로덕트 기획에 착수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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