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나를 드러내는 표식을 하지 않고 직원들과 동일한 유니폼을 착용하고 일을 하기에 대부분의 고객님들은 나를 직원, 혹은 아르바이트생으로 생각한다. 처음 방문하는 거래처 사람들도 대뜸 나에게 “사장님 좀 불러주세요.”하는 일도 비일비재. 제가 사장인데요? 그러나 고객 응대 업무를 하다 보면 종종 사장님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과연 아르바이트생 친구들이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직원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과 직원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차이가 있으니 그런 부분을 알아채시는 분들도 있는가 보다.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의 나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라 내 전재산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나만의 것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에 차곤 했다. 공포와 희망, 그 사이에서 처음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을 절박하게 응대했다. ‘제발, 고른 맛들이 취향이었으면!’, ‘이 가게가 마음에 들어 또 찾아주셨으면!’. 다 먹지 않고 떠나는 사람은 잡고 싶고, 맛있다 맛없다 평하는 사람들에게는 귀가 기울어졌다. 나의 명운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단 한 사람에게 달린 기분으로 보낸 시기였다.
본인 브랜드 운영 1년 10개월 차 사장은 이제 바들바들 떨진 않지만, 그때의 버릇이 상흔처럼 남아 고민하는 손님 앞에서는 다시 한번 절박해진다. 먹고 싶어 하셨지만 선택하지는 못한 맛은 좀 더 얹어주기도 하고, 흩어지는 말들을 사장 아닌 척 엿듣기도 하며, 너무 손님이 몰리는 날에 부족한 응대로 인해 손님들이 만족을 못하고 돌아가신 것 같으면 매출과 상관없이 손님들의 못마땅해하는 얼굴이 잊히질 않고 다음 날까지 속이 상한다. 처음 오는 고객님들의 어디 한 번 보자는 시선들. 지인의 지인들, 단골손님들의 지인들이 잔뜩 기대하는 말들. 단골손님들의 사사로운 평들. 온라인 상의 불만족들. 알바 친구들의 실수들. 그런 것들에 짓눌리고 흐릿해진다.
특히, sns나 배달 서비스 후기들! 나는 이제 연예인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일견 이해한다. 오픈 이래로 레시피가 바뀐 적이 없는 메뉴인데 점점 재료를 아낀다고 실망이라거나 아기가 깨니 벨을 누르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배달 기사님이 벨을 눌러서 다시는 안 먹는다고 하는 그런 글들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나의 결과물에 대한 오해와 편견과 저평가와 불만족과.. 등등. 도도와 나를 너무나 동일시하다 보니 도도에 대한 판단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덤덤하게 일상을 받아들이기에는 내 미래는 아직도 불안하다.
영혼을 울리는 영화 한 편에, 작은 소비 하나에 기분이 좋아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매출과 오늘 다녀간 고객님들이 얼마나 좋은 분들이었는지가 하루의 기분을 결정한다. 숫자와 남의 태도에 기분이 결정된다니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시시해져 버렸는지, 한탄하다가도 아주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딱 나쁜 것만큼 좋은 일도 있는 게 장사라는 걸 알고, 그걸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긴 5년 차 사장이 되었으므로. 차변, 대변이 딱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거대한 고통만큼 자잘한 뿌듯함으로 생활하는 게 내 일임을 알았으므로. 게다가 세상에 내가 만든 것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과 내가 통하니까.
6,000명이 넘는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들이 남들과 비교하면 적게 느껴지기도 하고, 익숙해져서 단순한 숫자로 여기게 되기도 한다. 특히 비 오고 추운 날. 세상에, 도도를 좋아하던 분들은 다 홀로그램이었나? 그 많던 애정은 체감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6,000은 숫자가 아니라 6,000명의 사람들이다. 6,000명의 사람들이 도도의 소식을 궁금해하고 관심 있어한다는 건데 새삼스레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에는 여자 손님 두 분이 오셔서 인스타그램의 글만 보고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이 느껴져서 와보고 싶었다고, 미국에서 입국하자마자 방문한 거라는 장난스러운 말을 하셨는데 그 말이 며칠간 두고두고 마음을 울렸다. (잊어버리고 가실 때 맛있었는지 여쭤보지 못한 것도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지만.) 메뉴 소개하는 글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매력적이게 느껴질까 고민하다가 제 때 올리지 못하는 나라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의 번잡한 마음들이 누군가에겐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 신비롭다.
명품 브랜드들과 협업하는 기회를 얻었을 때도, 2호점을 오픈했을 때도, 매체에 특집기사가 실렸을 때도, 블루리본 스티커를 받았을 때도 도도를 자식처럼 여기고 기뻐해 주는 분들이 계시고, 내가 일일이 기억을 못 해도 대면으로, dm으로, 후기로 도도를 정말 좋아한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분들이 있고, 내가 가진 것은 손쉽게 평가절하하는 나도 감히 낮잡아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마음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고단한 육체노동과 지난한 감정 노동 사이의 나를 진정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도도로 말미암아 내 세상이 자꾸 넓어지지 않았던가. 내가 돈을 받고 강의를 한다니, 브런치에 글을 쓴다니 말이다.
엉망진창 굴러가는 일상에 치이고, 기대와 실망에 푹 꺼져서 사람이 싫을 땐 솔직히 대충 근무할 때도 있다. 출처가 묘연한 불만이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지레 ‘넌 날 싫어하지? 나도 너 별로야.’하게 되는 날. 그런 날들의 끝은 영 개운치가 않고, 결국은 손님들에게 져주게 된다. 아무래도 대충 서비스하는 것은 영 행복치가 못하다. 초심인 면도, 습관인 면도, 돈 버는 수단인 면도 없진 않지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응대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사장님이세요?”하는 물음이 훈장처럼 새겨진다. 내 마음이 전달됐구나. 맞아요, 제가 우리 도도의 사장이랍니다. 아유 참, 어떻게 아셨담. 내가 또 절박하게 행복했구만.
그러니 다음번 도도에 방문했을 때 유난스레 응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봐주세요.
“혹시 사장님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