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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Feb 15. 2024

"여행은 눈탱이 맞는 맛에 가는 거예요!"

여행의 맛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겨울방학.

아이들 학기 중엔 하기 힘든 급여행이나 소소한 일탈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날들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결정된 부산여행.

우리 가족에게 부산은 늘, 일이 있어 스쳐가듯 잠깐 들르는 도시였던지라 아이들이 가보고 싶다는 말에 1박 2일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 여행을 감행했습니다.

출발 전 뚜벅이여행의 어려움에 대해 미리 고지하는 것은 필수사항이지요.


"수서역에서 SRT 타고 부산역에 도착해서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거야. 그럼 이 여행에서 필요한 건 뭘까?"

툭 던진 제 질문에 아이들도 생각나는 대로 툭툭 답을 던집니다.

"튼튼한 다리요."

"체력이요."

"핸드폰요. 아, 물론 게임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길도 찾고 이것저것 알아봐야죠."

그렇게 대답하며 배시시 웃는 아이들입니다.

"응, 다 맞는 말이야. 그런데 하나가 빠진 것 같네. 인내심! 추운 겨울에 뚜벅이 여행은 여러모로 힘들 거야. 그래도 짜증 내지 말고 즐겨보자. 너희도. 엄마 아빠도."


이 대화를 끝으로 SRT에 몸을 실었습니다.

도착한 부산은 맑고 따뜻한 봄 같은 날씨입니다. 날씨 요정의 가호가 따라다닌다며 신난 아이들과 열심히 부산을 둘러봅니다.

걷고, 보고, 먹고.

힘들다고 투정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여행을 즐기는 아이들 덕분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새벽부터 종일 힘들었던 몸을 숙소에서 잠시 쉬어주고  다시 밖으로 나서 봅니다. 눈 시리게 빛나던 낮의 해운대를 봤으니 밤의 야경도 봐야지요.  사실 여행 온 밤을 술 한잔 없이 보내기 영 아쉬워하는 남편을 위해 나선 길이지만 빛축제 기간이라 야경도 마침 눈이 부십니다.

설렁설렁 해변 좀 걷다가 먹으러 가려는데 곰장어를 먹고 싶어 하는 남편과 조개구이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여행인데 모두가 먹고 싶은 걸 먹어봐야죠! 그래서 두 가지 메뉴가 모두 가능한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으로 꽉 찬 가게 안은 여행자들 특유의 흥분으로 왁자지껄합니다. 우렁차고 친절한 주인장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아 먹고 싶은 메뉴들을 호기롭게 외쳐봅니다.

"일단 조개구이 2인분, 곰장어 2인분 주세요.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잠깐 기다리니 순식간에 조개구이가 등장합니다. 평소 같으면 "우와!" 하는 감탄사가 아이들 입에서 나와야 하는데 직원이 돌아갈 때까지 테이블엔 정적만 가득했습니다.

남편과 나는 조개구이 양이 너무 적어 놀라서 말을 못 하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표정이 이상하니 말을 아끼고 있었던 거죠.

"어, 이건 좀 너무하네. 관광지임을 감안해도 너무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조개를 굽기 시작하는 남편을 빤히 보던 첫째가 한 마디 합니다.

"그러니까요. 진짜 조금이네. 그래도 조금이니까 더 맛있을 거예요. 나는 아주 아껴서 음미하면서 먹을 거 거든요. 눈탱이 맞는 것도 여행의 이죠 뭐."

"맞아. 맞아. 여행은 눈탱이 맞는 맛에 가는 거예요. 이것도 경험이에요. 다음에는 좀 검색해 보고 찾아보고 가요. 그럼 더 푸짐하게 먹을 수 있을 거예요. "

아들 둘이 교과서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지글지글 익어가는 조개를 쳐다보며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니 딱딱하게 굳어있던 남편과 제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여행에 대한 어떤 잣대 없이 자유롭게 즐기는 아이들을 보니, '그래, 이게 여행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음미하며 조개구이를 먹는 아이들의 식사가 금세 끝나고  마찬가지로 한입거리인 곰장어를 얼른 먹어치운 우리 가족은 미련 없이 그 가게를 나섰습니다. 눈탱이 맞는 경험을 했으니 제대로 배를 채우러 가야 하니까요.

앞서 우다다다 달려가는 아이들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도착합니다.

"저기 조개구이 식당 또 있어요. 저 식당 어떤지 찾아볼게요."


여행 과정 내내 터져 나오는 "우와!", "힘들어요.", "저건 뭐지?", "추워요.", "맛있어요.", "눈탱이 맞는 맛"... 그 모든 표현이 아이들에게 '부산' 그 자체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이번 뚜벅이 여행을 통해 생각보다 많이 성장해 있는 아이들을 발견합니다. 

여행 전 아이들에게 당부했던  '인내심'은 아이들보단 내게 더 필요한 덕목이었음도 알아갑니다.

그리고 황을  대하는 아이들의  유연함을 잊지 않고 기억해 봅니다.


"여행은 눈탱이 맞는 맛에 가는 거예요!"


아이들 덕분에 여행의 맛을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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