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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Mar 01. 2024

사진을 보다가

틀린 그림 찾기

친정집에 다녀왔습니다. 왕복 5시간은 걸리는 거리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엄마', '아빠'라는 이름이 갖는 울림이 크게 마음을 두드리는 날엔 훌쩍 다녀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같은 듯 다른 부모님 모습에서 나 홀로 틀린 그림 찾기를 합니다.


식사량이 느셨구나.

운동시간이 많이 줄었네.

추위를 더 많이 타시는구나.

저 멋진 유머감각은 여전하시네.

전화기에 불이 나네. 동네 인기맨!


홀로 찾는 틀린 그림 찾기를 통해 부모님의 일상을 그려봅니다. 크게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면 마음속으로 합격점을 주고 나서 막내딸답게 애교도 떨어봅니다. 중년에 접어들어도 부모님 눈엔 귀한 막내딸이니까요.

오가는 웃음 속에 마음과 안부, 당부를 전하는 시간.

부모님 얼굴에 주름이 펴지고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시간들입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무언가를 꺼내 옵니다. 바로 앨범.

"앨범 보려고?"

내 말에 엄마가 웃습니다.

"지난번에 언니집(나의 이모)에 갔다가 처음 보는 사진들 있어서 가져왔어."

처음 보는 사진이란 말에 냉큼 앨범 옆으로 다가앉습니다. 그리고 꺼내든 사진에 입이 절로 벌어집니다.

그 사진은 친정집엔 없던 부모님의 약혼사진과 결혼사진이었습니다.

75년 6월 15일.

날짜가 선명하게 쓰여있는 젊디 젊은 부모님의 약혼사진.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간 그곳에 나와 똑 닮은 스무 살의 엄마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부모님의 청춘! 새삼스러워 한참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뒤이어 내밀어진 사진은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 그 사진엔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하얀 웨딩드레스의 엄마도 예쁘고 양복에 넥타이 맨 새신랑 아빠도 멋지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그 주위의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이젠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사람들이 그 결혼식에 가득합니다.


까만 한복에 까만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누런색 비단한복 입고 아빠 옆에 서 계시는 할머니.

색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할머니 옆을 지키시는 이모할머님.

늘 단정한 선비 같았던 큰아버지.

평소 2대 8 가르마를 애정하셨던 키가 큰 고모부.

조각처럼 잘 생긴, 젊었던 막내 삼촌.

늘 나만 보면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과자 사 먹으라던 이모부.

.

.

한편에 묻어뒀던 기억들이 그 페이지만 펼친 것처럼 화르륵 일어납니다. 한 분, 한 분. 사진을 짚어가며 기억 속을 거닐어봅니다. 그러다가 다시 눈에 들어온 건, 젊음이 빛나는 엄마와 아빠.

사진 속 그 빛나는 젊음과, 세월의 무게감이 내려앉아 주름의 수만큼 현명해진 지금의 얼굴을 번갈아 봅니다.


'아, 언젠가는 부모님도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날이 오겠구나!'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러워집니다.


'틀린 그림 찾기에서 매번 틀린 그림을 찾을 날도 오겠구나.'

'매번 틀려지는 그림을 찾다가 언젠가는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날도 오겠구나.'


생각만 해도 코끝이 찡해집니다.

영화 [코코]에서처럼, 누군가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영원히 가슴 속에 살 수 있다 해도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현재가 더 중요하고 소중한 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자주 전화해야지.

더 자주 찾아봬야지.

틀린 그림 찾기를 더 자주 할 거야.  

그렇게 서로에게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야지.

그러다가 언젠가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순간이 오면 끝없이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들로 두 분을 기억할 거야.



집에 돌아온 뒤, 사진으로 찍어온 그 사진들을 다시 보며 오지도 않은 훗날을 더듬었던 그 순간의 다짐들을 또 떠올려봅니다. 그러다가 전화기를 듭니다. 엄마이름을 찾아 누르며 조금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습니다. 그리고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밝게 물어봅니다.


"엄마, 뭐 해?"


내 질문에 톤을 높인 엄마의 반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흐릅니다.

이렇게 오늘도 틀린 그림 찾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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