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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Oct 06. 2023

마흔 다섯 방황 일기.

선언

내 나이는 올해 마흔다섯이다.

고맙게도 올해부터 나라에서 만 나이를 통일해 준 덕분에 한 살이 젊어지긴 했으나, 이 나이에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그냥 난 마흔다섯이고, 그게 내 또래와의 관계에서는 더 익숙하고 분명한 숫자이니 난 올해도 마흔다섯 살로 살려한다.



나는 올해 남편한테 '휴직'을 선언했다.

직장에서 쓸 수 있는 육아 휴직은 십여 년 전에 모두 썼기에 더 이상 쓸 수 있는 여건이 없었지만, 다행히 내 경력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은 쓸 수 있는 휴직이 남아 있어서 과감히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육아 휴직의 목적이 순전히 아이를 케어하기 위한 휴직이었다면, 이번에는 순전히 나를 위한 휴직이었다.



처음에 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표정과 눈빛에서 그리고 무반응 자체가 나의 휴직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휴직을 한다면 당장에 현실적으로 부담되는 것이 경제적인 부분이니 반대하고 싶은 이유도 충분히 이해한다.

육아 휴직은 육아라는 명분이 있었기에 준비 없이 해도 어쩔 수 없는 거라면, 마흔 중반의 나이에 갑자기 나의 쉼을 위해, 나의 삶을 위해 일을 중단한다는 것은 남편으로서는 쉽게 수긍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가정의 경제는 나 역시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었기에 나 역시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당장에 휴직을 충동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진짜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도록 그동안 만약을 대비해서 꾸준히 마이너스 통장의 빚을 갚아나갔다.  

저축이었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이너스 통장을 제로로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내가 융통할 수 있는 돈으로는 저축을 할만한 여유는 없었기에 빚을 갚아서 다시 빚을 낼 수 있는 통장을 만드는 방법이 내가 휴직을 하기 위한 유일한 대비책이었다.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이 여윳돈이 아닌 빚을 내는 생활을 준비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최소한 나의 휴직으로 인해 남편한테 생활비의 부담을 더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은 돈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인지라, 그냥 내가 일하면 문제가 안될 것을 내가 휴직하는 바람에 당장에 자신에게 금전적인 부담이 생기면 알게 모르게 나한테도 압박이 커질 게 뻔하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나한테 귀결시키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결국은, 휴직으로 인해 부족한 부분도 내 통장에서 알아서 빼 쓰고, 나중에 갚는 것도 내가 알아서 갚으면 되는 문제이므로 남편은 나의 휴직에 대해 왈가 왈부할 자격은 없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이런 구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처음부터 경제권을 합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의 연봉은 내 연봉의 3배 정도 많다. 물론 40프로 정도가 세금으로 다 빠져나가서 실질적인 월급은 연봉에 비해 체감할 수 있는 금액은 안되지만, 어쨌든 세금을 포함하면 억대 연봉자에 해당한다.

하기사, 요즘에는 월 천을 못 벌면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을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경제적 독립, 경제적 자유를 외치며 기본 값을 ' 천'으로 하고 있으니 억대 연봉자가 특별하지도 않은 것 같다.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 신혼 때 각자의 월급, 연봉을 오픈하고 급여를 나한테 다 몰아서 주기를 제안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본인의 월급을 내 통장으로 이체하는 걸 거부했다. 그래서 내가 내 월급을 그럼 다 이체하겠다고 하니 본인은 자잘한 것을 잘 챙기지 못하고 신경 쓰기 싫으니 생활비 부분과 재테크 및 투자 부분을 그냥 나눠서 관리하되, 일정 금액을 생활비에 보태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보통 여자가 월급을 다 관리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활비와 재테크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나누어서 하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상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당시에는 나도 사회 초년생이었고, 사실상 투자나 재테크 같은 데는 아예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였기에 나보다 그런 부분이 탁월한 남편이 알아서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거 같다. 그때의 그 경제적 구조가 지금까지도 이어오면서 나를 옥죄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으니까..



이것도 다행스러운 건지 안타까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매우 짠돌이이고 돈에 매우 민감하기에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가족한테도 돈을 쓰는 게 상당히 인색한 사람이다. 십여 년 동안 진짜 가르치고 가르쳐서 그나마 지금의 모습이 되긴 했지만 뼛속부터 타고난 짠돌이 DNA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요즘도 종종 확인하게 된다.  내가 농담처럼 진심을 던지는 말이 있는데 '당신은 돈이 아까워서 바람도 못 필 거다'라는 말을 할 정도니까... 아무튼, 13년을 같이 살아본 결과 남편이 돈을 따로 관리한다고 해서 허투루 딴짓을 하거나 다른 주머니를 찬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이것도 확인한 바는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이게 무슨 문제가 되나 싶을 수도 있다.

사실 요즘은 이런 구조로 지내는 부부들도 많다는 걸 알기에 별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니 여자가 버는 돈과, 남편이 보태주는 생활비로 어쨌든 생활을 유지하고 남은 건 재테크를 더 잘하는 남편이 하는 게 뭐가 문제야?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문제점은 그게 가정 살림이던 투자던 재테크던 자신이 스스로 융통할 수 있는 범위를 택할 수 있는 자유의 유무이다.

돈을 결코 내가 내 맘대로 마음껏 쓰고 싶은 게 아니다.  

쓰고 싶을 때, 쓸만한 곳에 쓸 수 있는 선택을 내가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있냐 없냐의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나는 내가 버는 모든 월급을 생활비로 다 쓰기 때문에 써야만 하는 것에만 쓸 수 있을 뿐 거기서 다른 걸 선택할 여지조차 없다.

하지만, 남편은 나한테 주는 일부 금액 외에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부동산을 사기도, 팔기도 하고 투자를 하기도 하고 넣었다 뺐다 하면서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융통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허튼 데 쓰는 게 아니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쓰는 건데 왜 그게 문제가 되냐고 한다.



돈이 있어도, 없어도 스스로 쓰는 범위를 결정하는 자유를 가진 자와 정해진 한도 내에서 그것 외에는 쓸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사람이 느끼는 차이는 상당히 크다.

남편은 본인이 정해진 한도 내에서! 정해진 것에만! 반드시 쓸 수밖에 없는 것을 위해서만! 쓰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 심정을 이해할리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매우 쿨하게 그만두라고 한다.

내가 버는 월급이 없어지면 지금 주는 생활비의 2배 이상 줘야 할 텐데 어떻게 할 거냐 물으면 생활비를 더 줄 수는 없으니 지금 쓰는 것보다 더 줄여서 생활을 하라고 한다.

말만 그만두라는 거지, 그만둬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결국은 그나마 지금의 생활이라도 유지하려면, 내가 죽으나 사나 일을 해서 벌어야만 가능한 구조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들이 결국 나를 위한 휴직의 목적이자 방황의 시발점이 되었다.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갈망은 남편에 대한 분노, 남편에 대한 경쟁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당신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사람이 되고 말 테다.'

'당신이 버는 그 돈은 당신 용돈으로나 쓰라고 치부할 정도로 내가 더 부자가 되고 말 테다...'란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물론 이것만이 유일한 이유라고 할 수는 없다.

올해 직장에서의 힘겨움이 특별히 크게 느껴졌고, 불합리함으로 스트레스가 매우 큰 상태였으며 그로 인해 나의 일에 대한 불평과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 와중에 내가 돈을 벌고 있음에도 자잘한 돈 때문에 남편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찌질하게 다투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남편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경제적으로 남편을 이기려고 했다면, 더 열심히 일해도 모자랄 판에 그럼 나는 왜 퇴사를 고려하고 휴직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오히려 악착같이 일해서 조금이라도 저축하고 모아야 하는 게 아닐까?


남편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려면 노동자의 삶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현재의 직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똑같은 노동자의 삶으로는 변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생산자가 되어야지만 지금과 다른 삶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노동자인 남편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생산자의 삶을 살려면 그건 사업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의 본격적인 진짜 방황이 시작됐다.


일단, 생산자가 되겠다고 맘을 굳히고 나는 남편한테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휴직에 이어서 두 번째 하는 선언이었다. 어쩌면 선포라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다.


나 사업할 거야.

뭐? 사업? 무슨 사업?

몰라. 근데 나 사업할 거야.

(훗...) 뭐가 있어? 설마 뭐 커피숍이나 차리고 가게 내는 그런 걸 말하는 거야?

아니. 그런 거 안 해.

그럼, 뭐 믿는 구석 있어? 뭘 믿고 사업을 해?

난 나를 믿어. 사업해서 당신보다 더 부자가 될 거야. 그러니까 말리지 마. 난 성공할 테니까.


나는 무슨 용기가 나서 앞뒤도 없이 저렇게 당당하게 선언을 했을까?

믿는 구석도 없이 그냥 여기저기서 잠재의식 전환, 무의식 해체, 긍정확언, 경제적 자유, 독립 등등

하도 많이 찾아서 보고 수십 번 듣다 보니 마치 내 잠재의식이 진짜 생산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만이 진짜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유튜브와 책에서 말하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명상, 자기 암시, 100번쓰고 말하기, 감사하기, 시각화하기, 긍정확언하기는 물론이거니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행동하기를 실천했다.



사업을 하려고 마음은 먹었으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하고 있는 거 외에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뭘 잘하는 지도 도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나와 같은 처지에서 먼저 빠져나와 성공한 사람의 카페를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노동자의 삶을 생산자의 삶으로, 대표로 바꿔준다는 글들을 모조리 섭렵하면서 그 즉시 개인 컨설팅을 신청했다. 이전의 삶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고 신뢰했기에 컨설팅을 받기까지 추호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선행자는 (나보다 먼저 행동한 자니까 선행자라 하겠다. ) 우아했고 당당했으며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리고 나를 위한 동아줄을 쥐고 있는 사람 같았다.



2시간에 걸쳐서 받은 컨설팅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으며, 그 미래는 머지않아 곧 내 것이 될 거라는 확신마저 들게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약 800만 원 남짓의 돈을 결제하게 되었다.

모아 놓은 것도 없이 휴직을 한 상태였지만 컨설팅을 받고 나니 나는 몇 개월 안에 '월 천'을 달성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확신이 이미 든 상태가 되었기에 그 정도 나한테 투자하는 것쯤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템을 찾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매주 정신없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할 수 있는 과제들이 있었으며, 주 1회의 컨설팅 시간에는 1대 1로 나의 아이템을 사업화하기 위한 실제적인 과정들이 진행되었다.

과제를 하고 컨설팅을 받는 약 두 달여간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집중하고 몰입해서 적극적으로 열심히 참여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뭔지 모르겠는데 진짜 나의 사업이 서서히 실체로 드러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모든 과정들을 남편도 지켜봤기에, 처음에는 미심쩍어했던 남편도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고 어쩌면 내가 자신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해주기도 했으니, 내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으며 컨설팅을 받고 준비하는 과정도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업이 이렇게 쉽다고?

진짜 이게 사업이 된다고?

하는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과정이 진행되고 마무리가 되어갈수록 내가 정한 아이템에 대한 의구심은 점차 커져만 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게 진짜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게 맞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았다.



1인 브랜딩, 1인 기업가가 대세인 요즘 나 역시 1인 기업가가 되고자 사업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막상 시작 시점이 다가오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뭔가 굉장히 열심히 하긴 했고 시스템이 갖춰져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어떻게 사업화하고 내가 그걸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대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시작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지식 기반 1인 기업가들의 삶을 더 심도 있게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고, 같은 분야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겠기에 또다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온라인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1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나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서는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사람도 많았다.

정보를 찾으면 찾을수록 나의 자신감과 패기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의 방향성을 틀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불현듯 독서 모임을 운영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해서 또다시 나는 독서 모임 강좌를 찾아 헤맸다.  

온라인 세상에는 독서 모임도 정말 많았다. 나 빼고 모두 독서 모임 운영자 아니면 참석자들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독서 모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참석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많은 독서 모임 중에 결이 맞을 것 같은 운영자의 독서 모임을 선뜻 신청하게 되었다.  

이 독서 모임은 지금도 진행 중인데 사업을 떠나서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사람들도 너무 좋고, 그 시간 자체가 힐링이 되고 위로가 되고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 되고 있다.



아무튼, 독서 모임까지 참석하고 나서도 실질적으로 이것을 내가 정한 아이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한 막연함은 계속되었고,  아이템을 진짜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 나는 또다시 '코칭'이라는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하려는 일이 결국은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스킬이 필요함을 느꼈기에, 코칭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또다시 인터넷 세상을 헤매기 시작했다.



마케팅과 세일즈 등 실제적인 사업의 전략을 배운 것이 사업의 포장지라면, 코칭 스킬은 아이템을 실현하기 위한 알맹이로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포장지와 알맹이가 조화가 되기만 한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 사업을 잘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으리란 확신을 가졌다.



이왕 배우는 거 대충 배우고 싶지 않아서 이 또한 3~4일 정도 찾고 비교하고 탐색해 본 끝에 아우라가 다르게 느껴지는 분을 선택했고 마침 오프라인 강의가 오픈되어서 이틀간의 집중 코치양성과정을 듣게 되었다.

코칭을 가르쳐주신 대표님은 이 분야에서는 30여 년의 경력을 지니신 꽤나 깊이 있고 전문성이 있는 분이었다.



처음에는 사업을 잘하기 위해 코칭의 스킬을 익히기 위한 목적으로 강좌를 신청했던 것인데, 이 과정을 하다 보니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진짜 나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며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제대로 코칭을 받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결론은...

나는 아직은 다른 것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맞는 길인줄 알고 정신없이 걸어가다가 중간에 가던 길이 맞나 의구심이 들어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한테, 코칭은 그 길이 아니라는 답을 알려주었다.

사업을 하기 위해 단순히 스킬을 배우러 갔다가, 나는 나를 제대로 돌아보게 된 것이다.



하아... 어쩌지... 그렇게 당당하게 선포할 때는 언제고.. 결국 또 나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

뭐든 시작은 창대하나 끝이 미약한 게 내가 원래부터 가진 최대 단점이자 가장 고치고 싶은 면이었는데 이번에도 또 같은 패턴으로 끝나는 것인가.. 남편한테, 가족들한테는 뭐라고 해야 하지..


이 쪽팔림은 어쩔 것이며... 특히, 남편한테 패배자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 못내 서글펐다..



자괴감과 자책감은 물론이거니와 나는 이번만큼은 진짜 달라질 거라는 나에 대한 기대감 또한 한 순간에 무너졌다. 유튜브에서 말하는 잠재의식의 변화가 나한테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나 보다.

고작 몇 달 따라 했다고 40년이 넘게 갖고 있던 나의 의식과 태도가 변했다고 착각했으며 모든 것을 너무 섣불리 시작했다는 반성과 함께 내가 너무도 단순하고 조급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결국, 코칭은 스킬이 아닌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 보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지금도 그 과정은 계속 진행 중이며 나는 다양한 코칭 기술과 함께 나를 스스로 돌아보며 찾아가는 여정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독서 모임처럼 방법을 익히기 위해 시작한 과정이었는데, 이 역시 나한테 위로와 치유의 시간으로 남게 되었다.



처음부터 단계적으로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섣불리 정한 사업의 아이템부터가 조급했고 신중하지 못했기에 이제는 지금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직장에 다닐 때 보다도, 대입을 준비할 때 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집중해서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확신을 가지고 달려왔는데 아니었다는 결론을 인정하고 나니 공허함과 허무함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갈 길을 잃고 안갯속에서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남은 인생 후반을 위해 계속해서 나에 대해 고민 중이고 나의 진로에 대해 매일 매 순간 탐색하고 있다.  

한 번의 섣부른 선택과 실패가 있었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이제는 나부터 다시 알아가는 중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진짜 잘하는 게 뭔지..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나의 미래를 위한 또 다른 준비 과정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 시절 진로 고민을 지금만큼만 했으면 아마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고도 남았을 테다.

마흔다섯의 나이에 인생 후반을 위해 나의 진로와 미래, 삶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방황하게 될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지난 과정들이 바보 같고 후회되지만, 이 또한 나에게 필요했던 경험이라 생각한다.

경험해 봤기에 깨달음이 있고, 깨달았기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정하지 못해서, 가고 싶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지만 이 방황도 끝이 있을 것이고 방황이 끝날 즈음에는 분명히 또 다른 길이 나에게 새로운 답을 알려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내 삶에 대해 당분간은 계속해서 고민하고 찾아가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마흔다섯의 방황은... 진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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