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아 Jul 11. 2022

내게 남은 삶이

여행이 내 삶에 주는 교훈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던 최근이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왜 떠나고 싶은지 정리되지 않은 채 뒤숭숭하게 떠다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갈증을 해소시켜줄 물 한 컵을 든 것처럼 단숨에 읽어버렸다. 작가에게 있어 여행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모든 사람에게 여행은 특별할 것이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떠나 미지의 세계로 항해하는 여행은 특별함이라는 특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에는 몇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일차적으로 장소의 이동이다.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지역에 가는 일을 뜻한다. 대개 반복적인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해 여행을 간다. 혹은 나만의 안식처, 각별히 애착을 느끼는 장소로 휴식을 위해 떠날 수도 있다. 아니면 그것이 여행이겠냐마는 일을 위해 가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머물던 곳을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나의 몸과 정신을 이동시키는 것. 그것이 여행의 첫 번째 요소이다.



둘째로, 그렇게 떠난 여행지에서 낯섦을 경험한다. 익숙한 패턴으로 작동되던 일상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임으로 당연히 모든 것이 예측불허이다. 기존에 알던 것이 아닌 모르는 것투성이라 호기심과 동시에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함께 느껴진다. 아무리 사전 조사를 하고 계획을 세워도 실제 경험이 전무한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개인의 통제력 밖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설레는 낯섦을, 때로는 두려움의 낯섦을 느낀다.



이어지는 세 번째 요소는 세계의 확장이다. 늘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내가 아닌, 여태껏 내보이지 않은 새로운 나를 낯선 상황을 통해서 발견하게 된다. 존재는 했지만 발견되지 못한 숨겨진 면모를 발견하여 내가 인식하고 있는 자아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이 세 가지 이외에도 여행이라는 것을 설명해 줄 요소는 많겠지만, 나는 적어도 이 세 가지의 요소를 경험했을 때 비로소 여행을 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때로는, 온전한 주체로서 존재하고 있는(그렇다고 믿고 싶은) '세상'을 탐구하고 싶을 때마다 혼란스러움을 경험한다. 그래서 최근에 그토록 여행을 떠나고 싶었나 보다. 속해있는 공동체가 이루는 주류에 의심을 품고, 비주류의 것들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경험해 보지 않은 문화와 공동체로 건너가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균열의 진동이 생길 때마다 나의 공동체는, 그리고 나의 에고는 그 진동을 아주 손쉽게 진압해버린다. 나의 의심은 시간 낭비라고, 그러니 잔말 말고 평범하게 주류를 따르라고. 이런 봉쇄의 힘은 너무 강력해서 결국 알을 깨부술만한 동기를 제거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편안하고 작은 둥지 안으로 고립된다.



사실 이것이 내 삶에 큰 문제가 된 적은 없다. 미리 경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들어줄 만 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고생을 사서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고분고분 따라도 손해 볼 것은 없다. 하지만 백번 가본 여행지를 백한 번째 또 가야 할 이유가 더 남아있을까 싶은 게 내 심정이다. 어떤 깨달음을 찾기 위해 백 번을 가본 것이라면, 그리고 백번 가서 찾았을 깨달음이었다면 그전에 찾았을 것이다. 또 그곳에서 한 경험이 각별하게 좋아서 백한 번째 도 찾고 싶다면, 그 경험을 한 사람들에 한해서 유효한 이유이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질리도록 들은 여행지를 가고 싶지 않다. 조금은 낯설고 두렵더라도 나로부터 우러나온 호기심을 동력 삼아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새로운 곳에서, 낯섦을 경험하며 나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그런 여행. 내게 남은 삶이 그러한 여행과도 같았으면.



[Mailbox]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