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이 있을까
이번 여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바다를 즐기러 강릉 여행을 했다. 여름이라면 족히 한 번은 동해를 가야 진정으로 여름을 보내는 기분이 든다. 네이버 지도를 켜고 눈에 제일 먼저 띄는 동해의 해수욕장을 골랐다. 주문진 해수욕장이었다. 차편을 먼저 예약하고 그 부근의 숙소를 찾아보던 참이었다.
나는 원래 호텔을 선호하지 않는다. 잠만 자는 공간치고는 비싸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것은 의식 활동이 아니다. 물론 잠을 자는 동안에 나의 몸은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운동하기 때문에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은 휴식을 위해 떠나는 것이며, 기본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몸은 회복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의식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즉 깨어있는 시간에 최대한 잘 여행(휴식) 하면 몸은 회복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숙소의 기능은 그냥 두 눈 붙이고 잠에 들 수만 있는 환경이라면 충족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혼자 여행을 할 때마다 매번 싼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행이 있었다. 동행이 있는 여행은 둘 사이의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리 높지 않은 청결의 기준을 만족한다면 싸면 쌀수록 좋았다. 호이 역시 깨끗하고 정제되어 있는 곳이라면 만족한다고 하여 열심히 검색을 했다. 다행히 싼 가격의 호텔을 찾아 예약했고, 여행을 떠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뜨거운 햇살로 정수리가 벌겋게 익을 것만 같은 그런 날, 나와 호이는 주문진으로 출발했다. 서울 도심을 벗어나니 금세 푸른 산과 높지 않은 건물들이 들어선 마을들이 보였다. 두 시간 반 정도 달려 주문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는 짐을 먼저 풀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숙소와 버스 터미널은 약 600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16층짜리 건물로 그리 고층은 아니었지만 주변 건물들이 워낙에 낮은 탓에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체크인을 하고 객실 층수를 확인하니 11층이었다. 20년 동안 살아온 본가의 집이 11층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앞뒤가 똑같은 높이의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높이 감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숙소는 주변 건물들의 층고가 높아봤자 2층 정도 되어 객실에서 내려다보면 상당히 높게 느껴져 아찔했다.
아찔함을 느끼던 중, 건물의 벽면은 개나리처럼 노랗고 지붕은 동해바다의 색처럼 아주 푸르른 한 가정집의 옥상에 시선이 꽂혔다. 두 색의 대비가 눈에 확 띄었다. 높이는 1층짜리 건물이었고, 빨래들이 널려있는 것을 보아 가정집 같았다. 그 옥상 한가운데에서 한 여성이 돗자리를 깔아두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문양이 그려진 돗자리 위로 노란색 접이식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한상 가득 준비한 음식들 때문에 테이블은 다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음식을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식들의 색상이 조화로웠다. 그 음식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만의 규칙대로 그릇의 배열을 이리저리 옮기며 구도를 살펴보기까지 했다. 한참을 준비하더니 그제서야 만족한 듯 편하게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지난날의 게스트하우스만을 전전하던 여행길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돈이 아깝다'라는 이유로 항상 핑계를 대며 무시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주머니 사정이 문제였긴 하지만, 돈에 스스로를 대접할 줄 아는 마음이 굴복당했다는 생각에 잠시 의기소침해졌다. 옥상에 근사한 저녁 한 상을 차리고 최대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릇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던 그 여성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우선시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감히 추측해 봤다.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이 될까 생각해 보며 여행의 첫날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