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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파마와 매립지 May 11. 2020

도전 일기 6_ 봄날은 가고

무파마와 매립지의 제로 웨이스트 도전 일기_여섯 번째 이야기

 봄은 실패의 계절이다. 푸릇푸릇하니 돋아나는 자연의 흐름과 달리,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이 확실히 무너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도, 책을 읽겠다는 결심도, 금연을 외치던 결심도, 일상에 파묻혀 온데간데없어지는 계절이라고나 할까. 작심삼일이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때다. 그렇다. 지금 나는 나의 실패를 일반화시키려 노력 중이다. 당최 어디 갔는지 모를 나의 제로 웨이스트 도전을 어떻게든 합리화해보려고 애쓰는 중이랄까.


 얼마 전 매립지는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쓰레기봉투를 버렸다고 한다. 나는 몇 개나 버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빵을 살 때도 지퍼백을 들고 가는 매립지와 달리, 어쩔 수 없다며 금세 체념하는 나다. 처음엔 차라리 사지 않겠다 외쳤지만 본능을 이길 수가 있어야지. 매립지가 제로 웨이스트 샵에 비누를 만들러 간 사이,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쇼핑을 했다. 아니 글쎄, 일교차가 심한데 툭 걸칠 바람막이가 하나도 없지 않나. 그래도 택배는 안 시키고 친히 매장을 방문해서 샀다, 고 하면 변명이 될까. 게을러지는 통에 물을 끓이지 못해 급히 생수를 사 먹기도 했다. 급하게 나가는 터라 텀블러를 잊고 테이크 아웃을 하기도 했고, 배가 고프다고 서브웨이 샌드위치 포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뭘 했더라. 휴지 대신 사놓은 손수건은 처박아 둔 채 휴지를 팍팍 쓰기도 했고. 원두를 내리는 게 귀찮아 드립백을 사 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19로 인해 일회용 마스크를 몇 개씩 쓰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어쩜 이리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 혼자 어쩌니 저쩌니 타령까지 가지 않아도 그냥 다 귀찮다고 할까. 제로를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게 제로 웨이스트의 교훈이라고 선포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완벽함이 아니라 실천을 목표로 한다는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진 터였다. 죄책감마저 귀찮았다. 내가 한 말 내가 좀 어기는 게 어때서,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괜히 혼자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친구과 함께 동네 서점에 갔다가 '환경'을 주제로 한 코너를 봤다. 플라스틱, 지구, 환경, 각종 키워드로 이제까지 보지 못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적어도 퇴보는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2020년 봄은 코로나 19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계절이 되었다. 이토록 공포스러운 펜더믹을 겪게 되다니.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싶지만, 더는 코로나 19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하니, 앞으로 어떤 날들이 올지 두려운 마음도 든다. 경고로만 듣던 환경 재해가 진짜 우리 머리 위를 덮칠 날이 머지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선택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할 날이 오지 않을까. 종량제가 실시되었던 것처럼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양과 날 역시 법적 규제가 생기는 날이 오는 것 아닐까.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가 멈추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편함 속에 깨끗해진 세계 도시의 사진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곤 한다. 세계적인 불행 앞에 인간이 해였다는 말 따윈 하고 싶지 않다. 엄청난 고통이 가해져야만 자정 작용이 생기는 거라면 그것 역시 엄청난 난관임이 틀림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다.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은 실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은 유혹에 약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려 하는 본성이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방법을 찾아내는 게 인간이기도 하고. 집콕을 위해 달고나 커피 만들기가 유행하듯 나 역시 제로 웨이스트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해봐야겠다.


 유난히 짧은 봄이 지나갔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게 더더욱 힘든 계절이 찾아왔다. 길을 가다가도 카페만 보였다 하면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게 되는 계절, 불 앞에 있고 싶지 않아 해먹기보다는 사먹고 싶은 계절, 나의 청결함을 위해 더 많은 쓰레기를 배출해야 되는 계절이다. 앞으로도 나는 몇 번을 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얼마나 더 많은 실수를 하고, 후회하게 될까. 모르겠다.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버리고 나면, 조금 더 가볍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물부터 끓여야겠다. 밤 열두 시에 목이 마르다며 편의점으로 뛰쳐나가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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