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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파마와 매립지 Jul 17. 2020

도전 일기_7. 받을까 말까

무파마와 매립지의 제로 웨이스트 도전 일기_여섯 번째 이야기


 길을 걷다가 손을 베였다. 불쑥 들어오는 전단지를 거절하려다 베인 것이다. 피가 나지도, 흉이 지지도 않았다. 살짝 따끔한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증 났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위협하고, 배달 책자 대신 배달 앱을 켜는 시대에, 이 무슨 봉변인가요. 


 난 전단지가 싫다. 광고가 아닌 쓰레기로 인식한 지 오래다.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누가 보긴 보나 싶다. 광고 효과는 모르겠지만 경쟁 업체도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난 뒤론 더 싫다. 누군가 먹고사는 문제에 잘난척하며 아 없애야 한다며 말할 수도 없고, 이상한 양심의 가책까지 떠맡는 기분이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얼떨결에 받게 될 때에도 곧장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러니 받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받을 때가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나가나 한시라도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을 만큼 추울 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연신 허리를 굽히며 나눠줄 때, 빨리 돌리고 들어가시라는 마음으로 받곤 했다. 이 정도는 내가 베풀 수 있는 친절이라 여겼다. 그 마음이 지금의 나를 불편하게 할 줄이야.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한 후, 전단지는 당연히 받지 말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작게 보면 쓰레기 줄이자고 휴지도 아껴 쓰는 판에 전단지를 받을 순 없지. 나의 쓰레기를 늘릴 순 없었다. 크게 보면 내가 받음으로써 악순환의 구조 속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어쨌든 수요가 있으면 생산이 있는 법이니까. 나 하나 받는다고 순환까지 들먹이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제로 웨이스트 시도의 핵심은 '나 하나라도' 이니까. 박수치며 좋아할 만한 시도였건만. 어떻게든 손에 밀어 넣으려는 어르신들을 보니, 이상한 죄책감이 든다. 전단지를 받는 게 의무도 예의도 아니건만 심지어 어른도 못 알아보는 나쁜 인간이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또 받자니, 왜 내가 죄책감을 못 이겨 받아야 하나 화가 난다. 나는 그저 길을 지나갈 뿐인데, 원치 않는 광고로 인해 도덕성을 의심해야 하는 건가. 길가에 버려진 전단지들은 다 뭐고. 


 요즘 세상에 전단지를 만드는 게 과연 의미가 있나, 의문이 들지만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광고 수단이라면 방법을 달리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무방비 상태에서 접하게 되는 게 광고라지만, 전단지는 뒤처리까지 소비자가 떠맡아야 한다. 그렇기에 '전단지=쓰레기'라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원치도 않은 걸 받았으니 얼른 냅따버리고 싶을 수밖에. 어떤 이들은 쓰레기통 찾는 수고마저 귀찮아 길가에 곧장 내던지기까지 한다. 악순환이 따로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단지는 코팅지라 분리수거조차 쉽지 않을 거다. 버려지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할 게 아니라 버려지는 걸 알았으니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싼 방법을 찾으려다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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