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토끼 Jan 20. 2024

혼영의 추억

아침 등굣길. 문구점에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서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와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고, 학교를 가는 동안에도 이 여자 아이는 계속 문구점을 빙빙 돌고 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반갑게 그 아이에게 뛰어갔다. "너 왜 이렇게 늦었어?"


우리 문구점은 바로 초등학교 앞에 위치하고 있다.

차 2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학교와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문구점에서 친구를 만나 같이 학교를 간다. 겨우 그 몇 분을 함께 등교하기 위해~~~


여자아이들은 유독 이런 또래 문화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화장실을 갈 때도, 같이 급식을 먹을 때도, 늘 이렇게 끼리끼리 모여서 다니는 편이다.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나는 어쩌면 정신연령이 아직도 저 아이들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홀로서기>


혼자서 무얼 하는 게 나는 아직도 무척 서툴고 어렵고 겁이 난다.

혼자 여행을 하는 것도,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심지어 혼자 영화를 보는 것조차도....

마치 10대 또래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듯 당연히 혼자 해야 할 이런 일들을 혼자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거지?


나름 고난의 삶이라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던 것일까?

홀로 그런 경험이 없다는 것은 식당에서도 영화를 때도 늘 누군가와 함께였고, 여행을 때도 누군가와 함께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평탄한 삶을 살아왔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한때 나를 누르고 있던 커다란 바위 같았던 상황들이 어느샌가 이제는 그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작은 조약돌 정도의 흔적으로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세월의 힘인가 보다. 나이 든다는 것의 장점 중 하나인가 보다.


아무튼 그런 내가 혼자 영화를 본 적이 딱 1번 있었다.

아직까지도 혼영의 역사는 그 한 번뿐이다.



5년 전, 정확하게는 5년 2개월...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러 있었다니~~

당시 나는 커다란 돌덩이가 마음을 온통 짓누르고 있는 상태였다.

배신감과 허무함에 휩싸여 하루종일 지옥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못 마시는 술에 취해도 보고, 생전 하지 않던,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욕설을 하루종일 내뱉고, 울다가 소리 지르다가 그래도 해소되지 않는 분노에 치를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던 나는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가게문을 잠그고 무조건 걷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가면을 쓴 채 가게를 열고 손님을 맞았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가게문을 열었기에 어쩌면 잘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음속 불을 끄기 위해 본능적으로 아침저녁 근처에 있던 배다리공원을 하염없이 몇 바퀴씩 걷고 또 걸었다.

지금 산책하는 습관이 그때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 시기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간 것이었다.

제일 마지막 타임.

어떤 영화를 볼지 아무 계획도 없이 그저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기에 했던 선택이었다.

그래서 생애 최초로 혼자 보게 되었던 영화는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그런데, 하늘의 선물이었는지 생애 최초의 혼영은 말 그대로 정말 '혼자만의 영화관람'이 되었다.

어쩐 일인지 관객이 아무도 없이 오직 나 혼자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마치 꿈속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극장 안에서 프레디머큐리의 이야기와 퀸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그 기분은 참 묘했다. 좀 무섭기도 해서 나는 몇 번이나 주위를 둘러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극장 화면에 빨려 들어가 주옥같은 퀸의 노래들과 프레디머큐리의 음악에 관한 열정과 그의 기구한 삶에 녹아들어 갔다. 


그야말로 나만을 위한 영화상영이었다.

살짝 무서운 느낌, 그리고 많이 외로운 느낌, 하지만 어쩐지 영화와 내가 하나가 된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의 나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받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의 혼영은 정말 말 그대로 혼영이 되었고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 나는 퀸의 음악을 있는 대로 찾아서 듣게 되었다. 그렇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쯤 뒤 그 영화를 상영했던 영화관은 결국 영업을 종료했다.

지금은 다른 영화관으로 바뀌어 있다.


◇◈◇◈◇

작가의 이전글 눈 내리는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