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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Feb 17. 2024

가지 않은 길

천정에 있는 전등 하나가 계속 깜빡거린다.

LED 등이라 한 번에 모두 교체를 했건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어떤 녀석은 아예 등이 나갔고, 어느 녀석은 저렇게 계속 깜빡거리고 있다.

그러다 결국은 불이 아예 들어오지 않겠지....


가게 앞 카페는 결국 문을 닫았다.

아직 임대라는 문구는 붙어 있지 않지만, 가게 안이 텅 비어있다.

그러고 보니 근처에 내놓은 가게들이 몇 군데 있는 걸 보았다. 확실히 요즘 경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그 모습을 보는 은애의 마음도 편치 않다.


내년이면 계약 만기인데, 보증금을 두 배로 올려주면서까지 가게를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건 은애가 있는 가게의 건물주가 바뀌면서 시작되었다.

전 건물주가 보증금과 월세를 현 시세로 내려주면서 계약서에 한시적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덕분에 은애는 아주 복잡한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작년 1년은 아무 생각 없이 영업을 했지만, 이제 남은 1년 동안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을 하고 그에 따라 실행에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보증금을 두 배로 올려주면서 가게를 하는 건 말이 안 되니, 남은 선택지는 가게를 내놓는 거였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 이 가게가 팔릴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팔 수 있는 물건은 모두 팔고 정리하는 수순까지 생각을 해야만 했다.


© timmossholder, 출처 Unsplash



이 가게를 접고 은애가 어떤 일을 하면서 지금의 수익을 충당해야 할지 그것도 고민해 봐야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매일 출근하는 하루하루가 생각이 많다. 

그녀는 가게를 한번 죽 둘러본다. 남들에게는 별거 없을지 몰라도 은애는 진열장 하나하나에도 정이 들었다.


이 특이한 진열장들은 A 도시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맞춰 주문 제작한 것들이었다.

모양, 높이, 너비 등을 남편이 세세하게 생각해서 원목으로 주문 제작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이런 진열장을 가진 가게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 좋았다.


이 진열장들이 몇 군데를 옮겨 다녔던가!

그렇게 이곳저곳을 주인 따라 떠돌아다녔어도 그대로인 건 원목이기 때문이었다.


매출이 코로나 때보다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부업으로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수입이 되기 때문에 이대로 정리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매출이라는 것이 주인의 마음가짐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수입이 들쭉날쭉하기 마련이다.

사실 은애가 요즘 이런저런 일로 가게에 집중을 하지 않았지만 조금 노력하면 지금보다는 더 수입이 늘어날 수 있기는 하다. 

지금이야 어차피 떠나보낼 가게이기에 물건을 들여올 때도 많은 생각을 해야만 하지만 말이다. 


이런 변수가 없었다면 은애는 5년 정도는 더 가게를 할 요량이었다.


© blakewisz, 출처 Unsplash


가게 주인장으로 살아온 15년이 넘는 세월....

은애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한 삶을 살아왔었다.


가게에 매달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다.

그저 365일 우선순위는 가게였다. 

동네에서 제일 먼저 문 열고, 제일 늦게 문을 닫았다.

하루라도 쉬지 않기 위해 명절날에도 설날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추석에는 은애와 아이들로 나뉘어 시댁과 친정을 방문할 정도였다. 휴가 때도 남편은 문을 열었다. 은애와 아이들만 친정식구들과 휴가를 떠나곤 했다.


그렇게 지독하게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냐 하면 그렇지는 못했다.

그저 가게라는 것이 문을 닫아서는 안된다는 남편의 이상한 신념으로 온 가족은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은애는 점점 지쳐갔고, 시들어갔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은애는 자신의 일을 글로 적어나갔고,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

비로소 가게 주인장으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삶의 주인으로 마주 설 수 있었다.

아직은 충분히 일할 나이이기에 앞으로 몇 년은 즐겁게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건물주가 바뀌면서 은애의 계획이 어그러져 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상하게 가게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요즘 부쩍 정이 든 몇몇 아이들을 못 보는 게 조금 아쉽긴 하겠지만, 가게를 접으면 그동안 갇혀있던 은애의 삶이 자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아침부터 퇴근까지 온통 이 작은 공간 안에 갇혀 있었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마저 들었다.


© yan_slg, 출처 Unsplash


그동안 가게 주인장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에, 그리고 그 삶을 글로 다 풀어냈기에 은애는 더 이상 가게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는 아직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는 설렘이 은애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고 있다.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은애를 찾아 오든 그저 꿋꿋하게 걸어 나갈 생각이다.

은애에게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요롭고, 감사한 삶이 펼쳐져 있기에....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 로버트 프로스트 -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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