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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Jun 22. 2024

폭염주의보

어제에 이어 오늘 날씨도 35도를 예고하고 있어서인지 오전부터 후덥지근하다.

아직 6월인데 올여름 날씨가 얼마나 더우려고 벌써 이러는 걸까?

날씨가 더워지면 그때부터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도 가게를 정리하는 게 좋은지, 더 이어나가야 하는지 마음이 자꾸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마침 어제 주문한 음료가 도착해 열심히 정리를 했다. 하필 바로 옆 건물에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들어와 안 그래도 줄어든 매출에 쐐기를 박았다.

가격을 부랴부랴 할인점 가격으로 낮춰 놓아도 아이들은 구색이 더 많은 할인점으로 달려간다.

그동안, 과자와 음료, 아이스크림 매출이 문구점 매출의 큰 축을 담당했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요즈음이다.


정리를 마친 박스와 비닐 등을 갈무리하고 있는데, 도어벨 종소리가 울리며 50대 후반쯤 된 여자분과 70대는 넘어 보이는 할머님이 들어오신다.


"어서 오세요~~"

"일찍 여셨네요.... 지금은 한가한 시간이죠?"

"네, 아이들이 끝나는 시간이 바쁘고 지금은 한가해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내 옆으로 다가온 두 사람 중 50대로 보이는 여자분이 조금 느린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 너무 어렵고, 또 험한 일들이 많죠~. 미래는 불안하고....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종교가 있으신가요?"


© noahholm, 출처 Unsplash


대충 어떤 사람들인지 촉이 온다.

절에 다닌다고 할까? 아님 교회를 다닌다고 할까? 아님 종교가 없다고 할까? 대답을 망설이다가 침묵을 택했다.


"....."

"이렇게 험한 세상일수록 미래가 걱정스럽죠. 여기 좋은 글귀가 있는데 한번 안내해 드려 볼까요?"

"아니~ 관심 없습니다."

"성경은 종교랑 무관하게 베스트셀러라고 하잖아요.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네. 됐습니다."


단호한 나의 대답에 우물쭈물하더니 안 먹힐 사람임을 알았는지 "그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인사를 하고 두 여자가 문을 밀고 나간다.


여자는 양산을 쓰고 있고, 따라다니는 할머니는 양산도 없이 아이보리 버킷햇 모자를 쓰고 있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저 할머니 괜찮을까? 갑자기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답답함이 솟아오른다.

저 사람들은 자의로 다니는 걸까? 이미 세뇌되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마음이 무너진 누군가가 저들에게 걸려들어 제2의 저런 사람들이 되겠지....

그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이라지만,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는 걸까?

혼자 상상 속에서 어디선가 봤던, 태어나자마자 세상과 단절되어 종교시설에서 살아가는, 누군지도 모를 아이들 걱정까지 하고 있다.


© aaronburden, 출처 Unsplash




평일 퇴근길이나, 주말에 늦게 출근할 때 보면 한 건물 앞에, 가끔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거리 한쪽에 항상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자 두 명이거나, 가끔은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 또는 남자 두 명 이렇게 짝을 이루어 둘이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서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는 성경공부 어쩌고 하는 글씨가 쓰여 있는 스탠드형 배너가 자리하고 있다.


자세히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내 짐작이 맞다면 그들은 소위 사이비라고 불리는 어떤 종교의 신자들이리라.


하나같이 말끔한 외관을 갖춘 사람들이다.

저 사람들은 어쩌다 저렇게 된 것일까? 어떤 사연이 있어서 저런 삶을 살고 있을까?

자신들은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힐끗 곁눈질을 하며 지나가면서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떠 오른다.

결국 한 명의 교주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나를 보며 구원해 주어야 하는 가련한 중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펄펄 끓는 35도의 햇볕아래서 끊임없이 포섭할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을, 베이지색 모자와 원피스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70대 일지, 80대 일지 모를 자그마한 할머니가 자꾸 눈에 밟힌다.


어긋난 종교적 신념 앞에서는 폭염주의보조차 하찮은 듯 해 우상(憂傷)하다.


◆◈◇◈◆


- 우상(憂傷)하다 : 근심스러워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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