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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뜐뜐 Aug 18. 2021

고독, 그리고 음악.

처음 느꼈던 나

20대를 겪다 보면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된다. 내 드라마의 장르는 불분명하지만, 정말 치열했다는 것은 인정해주고 싶다. 무척이나 뜨거웠고, 한없이 무책임했던 지난날. 어느 다른 드라마 속 주인공들과 달리 나의 주인공은 20대에 이룬 것이 하나 없다. 젊은 날의 나는 그렇다 할 자랑거리는 없어도, 그렇다 할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군 전역 후 무작정 떠난 미국 유학. 낯선 타지에서의 시간은 추억으로 쌓이고, 추억은 기억으로 번지며 어느새 나를 물들였다. 그때 물들여진 색깔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좋든 싫든 이게 나라는 것을 인정한다. 따듯한 봄에 갑자기 단풍 지듯 계절을 모르고 불쑥 찾아오던 성장통을 겪었던 나는, 이제는 가끔씩 그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퇴근길 라디오에서 영화 원스 ost가 흘러나왔다. 음악이 귓가에 스치면 불현듯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는 음악의 마법이라 하고,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한다. 전자에 속하는 나는, 사무치도록 고독했던 그런 장면이 스쳐갔다.


미국에 온 지 6개월쯤 됐을까. 영어는 못했지만 열정 하나만큼은 대단했던 시절이 있었다. 일리노이 주립대 편입을 위해 커뮤니티 컬리지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23살 나는 보스턴에서 일리노이 주의 작은 마을 샴페인으로 이사를 왔다. 아직 이삿짐은 널브러져 있고 침대 프레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며, 책상만 덩그러니 방 한구석을 차지했다. 불 꺼진 깜깜한 거실 바닥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며 노트북으로 영화 원스를 재생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이 끌고 다니는 고장 난 청소기를 바라보다 문득, 애처롭게 끌려다니는 모습이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잠시 멈췄다. 조그만 모니터 속 장면은 멈춰 있고 시계 초침 소리가 갑자기 귀를 찌르는데, 날이 선 초침 소리가 귀가 아닌 가슴으로 찔린 듯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것은 부족함이 없고 원하던 대로 흘러가던 그때.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아니면 어디로 끌려가는 건지 모르겠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하던 그때.

눈을 감고 천천히 돌이켜 보니, 나는 내 인생에 대해서 단 한 번의 고민 없이 그냥 끌려 다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끌리고 끌려 일리노이 샴페인이라는 낯선 곳에 도착해 있는 나를 발견했고, 갑자기 이런 내가 무서워졌다.


깜깜한 세상에 아무도 없고 오직, 나와 나만 존재할 때. 고독함은 온전히 나와 마주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인 것 같다.

그렇게 처음으로 고독이라는 것을 배웠다.

고독은 단어가 풍기는 자체로도 고독하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단어 그 이상 고독하다는 것 또한.


나는 그렇게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 나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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