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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뜐뜐 Aug 19. 2021

아이패드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는 나

빠르고 선명하며 부드럽지만 정교한 태블릿이 있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무게 또한 가볍다. 화면에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도, 내가 원하는 영상을 편집하며,  오늘의 스케줄을 팀원들과 공유하며 커뮤니케이션하는,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만들어주는 태블릿이 있다. 카페에 조용히 앉아 나만의 글을 써 내려갈 수도 있고, 페이스 타임으로 비대면 시대에 살아남기도 하며,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시 공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아이패드를 샀다.


먼 옛날 스티브 잡스가 손바닥 만한 컴퓨터를 만들겠다며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과거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정신 나간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2010년 스티브 잡스는 결국 아이패드를 출시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나도 그 열광에 동참했다. 손바닥 만한 컴퓨터라니. 당장이고 써보고 싶었다. 출시일 오전, 시카고 애플 스토어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날씨는 아직 쌀쌀했지만 그깟 추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발을 동동거리며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렸다. 취재기자들이 생방송으로 현장을 중계하며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고, 첫 번째로 기다리고 있는 남성에게  아이패드를 왜 사려고 하는지 물어봤다. 그는 이유가 없다 그냥 사고 싶다고 대답했다. 질문을 했던 기자는 웃었고, 그도 웃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패드는 결국 나의 품속으로 들어왔고, 3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와 손을 깨끗하게 씻고 경건한 마음으로 언박싱을 했다. 아이패드를 여기저기 만져보고 이것저것 눌러보다 문득, 나도 내가 왜 아이패드를 샀는지 모르겠더라. 이유가 없었다. 분명 광고 속 주인공처럼 아이패드를 통한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의 목적을 두고 구매를 했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냥 나도 사고 싶었나 보다. 그날부터 그렇게 아이패드는 책상 구석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이패드 1세대부터 지금 M1칩셋이 들어간 최신 버전까지 모든 모델을 구매했다. 다시 말하자면, 샀다가 전부 되팔았다. 상상 속의 아이패드는 항상 화려 했지만, 나의 아이패드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신형이 나올 때면 디스플레이의 해상도는 높아지고 칩셋의 성능은 향상되어 발열이 적어지고 배터리 시간은 길어졌지만, 나는 고작 유튜브 정도를 실행시켰고 이것 또한 누워서 보기 무거워 다시 아이폰으로 보기 시작했다. 사파리 브라우저는 액티브엑스라는 높은 장벽을 넘지 못했고, 노트 필기를 해보려 유료 앱도 사봤지만 나의 악필은 아이패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그림이라도 그려볼까 하고 앱을 다운 받아 실행시켜 보면, 고작 그린다는 게 검은색 선으로만 이뤄진 졸라맨이다. 나의 초라한 아이패드는 항상 이렇게 책상 한구석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구형이 된 아이패드는 결국 중고나라 또는 당근마켓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왜 매번 신형 아이패드가 나오면 참지 못하고 구매를 했던 걸까. 왜 똑같은 실수를 이렇게까지 반복하는 걸까. 심지어 지금도 멀쩡한 맥북을 놔두고, 키보드 가격만 40만 원이 넘는 미친 가성비의 아이패드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 정말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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