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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퉁이극장 Oct 28. 2022

말할 용기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를 보고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미정

나는 말할 기회가 세 번 있었다.

너와 공원 가로수 길을 거닐었을 때,

카페 마감 시간까지 너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

막차 버스를 기다리면서 버스정류장에 같이 앉아있을 때.

당시에 나는 말하지 않는 게 너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아직은 아니라고, 

사실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내 입을 무겁게 만들었던 것이었겠지만.

쌀쌀한 날씨에 브라운 색깔의 코트 옷깃을 여미던 너를 보면서도

눈을 마주 보는 게 부끄러워서 괜시리 너의 단발머리에만 시선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나는 너에게 내 진심을 언제 말할까, 타이밍만 재고 있었던 것 같다.

영원히 오지 않을 완벽한 타이밍을 말이다.

‘그래, 다음에, 다음에 말하자.’ 하고 그 상황을 도망쳐버리고, 

너를 버스에 태워 보냈을 때. 

나는 다시 없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당시에 나는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이자 기회였는지 알지 못했다.

속내를 드러내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해본 적이 없는 미숙한 20대였으니까.

2주 후에, 다시 용기내 연락했을 때.

그땐 이미 너의 마음이 정리되었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인연이라는 건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다는 걸, 난 그때 배웠다.

인생에 완벽한 타이밍이란 것은 없고,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그 순간을 놓치면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용기내어 말했다면 결과가 어떠하였든 일생의 미련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버린 지금도,

가끔은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생긴다.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이, 내가 원했던 삶의 의미에 다가가고 있는지,

새벽녘 안개에 시야가 막혀버린 듯, 미래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때의 버스정류장을 떠올린다.

청춘의 시작은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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