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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퉁이극장 Oct 28. 2022

태양의 서커스

영화 <중경삼림>을 보고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미정



은이는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였지만, 나는 한 번도 은이를 누나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은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손을 가졌었다. 손끝에 붕숭아 물들인 손톱이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속마음을 은이한테 말한 적은 없었다. 은이는 그 작은 손으로 쉬는 날이면 경남 시골에 있는 부모님 딸기밭에 가서 일손을 거들어준다고 했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부산으로 유학왔고, 부산에서 취업해서 지금은 행사기획 관련 일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헤어지기 15년 전에 은이가 해준 이야기였다.


서면 지하철 환승역에서 우연히 만나, 나란히 걸어가던 10여 분간 은이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태양의 서커스라고 알아? 난 거기에 스텝으로 들어가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


은이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고, 자신의 꿈을 얘기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다. 은이는 부산에서의 일이 정리되면 서울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 대꾸해주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주춤거리다다가 "잘 됐으면 좋겠어." 하고 대답했다.


그때 당시의 나는 대학을 휴학 중이었고,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다대포 해변에 하릴없이 앉아있다가 노을이 지면 집으로 가길 여러 반복하며 살았다. 타인의 꿈에 대해서 여유롭게 들어줄 마음의 공간이 부족했던 시기였다. 그런 순간에 은이를 만난 건 행운이었는지만, 준비되지 못한 자에게 선급하게 제공된 과분한 기회였기도 했다.


은이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건 두 번 있었는데, 모두 서면 지하철 환승구역이었다. 서로 안면식은 있으나 별다른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는 사이였음에도 은이는 말을 먼저 걸어왔다. 처음 마주쳤을 땐 어색했으나, 두 번째 우연히 만났을 땐 속으로 엄청 기뻤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게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은이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은이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몰라서 숨겼고, 은이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서면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 먹어도, 은이는 맛있다면서 두 발을 동동거리며 몸을 한 바퀴 빙글 돌기도 하였다. 지금이라면 같이 빙글 돌아주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냥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 떡볶이를 다 먹고 헤어지기 아쉬워 "한잔하고 갈래?" 하고 물었더니 "안 돼, 미안. 내일 새벽에 엄마 오셔." 하고 은이가 말했다. 당시에 은이는 여자 룸메이트와 같이 자취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오면 룸메이트가 불편하겠다."고 물어보니 "오늘은 혼자야. 친구는 부모님 집에 갔어" 하고 은이가 답했다.


나는 은이의 집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은이의 대화 주제는 미래의 꿈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지, 현실의 삶에 대한 얘기는 잘 하지 않았다. '회사는 박봉에 야근이 많지만, 동료들이 좋아서 다닐만 해.' 이 정도의 말이 은이가 하는 현실에 대한 표현의 끝이었다. 현재를 얘기할 때 은이는 미간은 찡그렸던 것이 기억난다. 은이는 부산도, 회사도, 지금 사는 자취방에도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경남 시골 출신인 은이에게 부산은 하루하루 살기 팍팍한 이방인의 도시였던 것 같다.


둘이서 걷다 보니 서면 롯데백화점 근처 도로변에 서게 되었다. 평소처럼 택시를 태워서 배웅해 주려 했는데, 은이가 잠시 서서 고민하더니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안 피곤해, 걸어가도 될 것 같아" 하고 말했다. 은이는 발을 동동 굴려서 몸을 또 한 바퀴 회전했다. 나는 그런 은이를 또 바라만 봤던 것 같다.


나는 은이를 만나면서 배웅만 해주었지, 바래다준 적은 없었다. '그럼, 같이 걸을까?'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나는 하지 못했다. 다대포 노을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은이를 바라만 봤다. 인생에서 혼자서 결정해야 할 때, 나는 항상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다대포 노을에서 어느새 은이로 바뀌어 있었다는 걸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은이를 마지막으로 배웅해준 건 부산역이었다. 은이는 서울로 떠났고, 나는 부산에 남았다. 정확하게는 표현하면 남았다기보단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은이가 앉은 기차 좌석 옆자리에 그냥 같이 앉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은이가 떠나는 순간에도 끝내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은이는 변화를 꿈꿨고, 나는 변화를 두려워했던 결과였다.


지하철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쳐가는 곳이고, 그런 지하철 환승장에서 은이를 만났었다. 그래, 은이는 항상 어딘가를 떠나는 중이었다. 인연이 시작된 순간의 지하철에도, 인연이 떠나가는 순간의 기차역에서도, 은이는 항상 어딘가 여행 중이었다. 은이는 정처 없이 부유하다 잠시 나에게 머물렀다 한점 바람에 떠나갔다. 은이는 부산을 여행하는 방랑자였고, 여행이 끝나니 새로운 여행을 찾아 떠나갔다.


은이는 새로운 곳에서 자신만의 태양의 서커스를 찾았을까?

나에겐 은이가 태양의 서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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