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경삼림>을 보고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DK
* 이 글은 영화 <중경삼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덜 채워지기에 충분하다.
청춘은 미완성이기에 멋이었다.
경찰 233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파인애플 통조림통을 잡고 옛 연인을 잊지 못한다.
그 통조림의 유통기한인 5월 1일이 경과하자 Bar에서 본 첫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불과 얼마 전 둘은 찰나에 스쳤었다는걸.
함께한 호텔 방에서 그는 그녀의 구두를 닦아주는 것으로 그녀는 그에게 생일 축하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것으로 서로를 배웅한다.
둘은 사랑했을까?
딱히 표현할 단어를 찾기 어려워 그 둘을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뭔가가 미흡하다.
그저 서툰 청춘의 모습 중 하나였다고 하면 조금 기분이 좋아지는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경찰 663은 떠나간 연인의 물건도, 마음도 정리하지 못한 채 방치한다.
혹여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아둔 채 말이다.
그가 자주 찾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일하게 된 페이에게 그가 들어왔다.
괜스레 그와 마주치려 하고 의도적으로 알아낸 그의 집에서 옛 그녀의 물건을 정리하며 우렁각시를 한다.
그러다 그에게 들키게 되고 비로소 그 또한 그녀를 인지하게 된다.
그녀가 좋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엇갈리고 결국 다시 재회하게 된다.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면 탑승 티켓쯤은 얼마든지 다시 쓰면 될 뿐이다.
이 장면이 좋았다.
시종일관 서로 겉도는 이 영화가 엔딩은 명쾌했다.
과거와 현재가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인터넷과 스마트폰 두 개 빼면 크게 없지 않을까?
접근이 용이한 네트워크가 아날로그 시대와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디지털 시대가 개개인의 벽을 낮췄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편의성은 우리 마음의 벽을 더 높게 그리고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단언한다.
사람들은 모두 각기 개별적인 섬으로 확고해졌고 그 섬의 간격은 과거보다 매우 멀어진 것 같다.
멀어졌다는 것은 오가기가 어려워졌다는 것.
삐삐, 자동응답기, 손 편지, 사람을 통하는 전언.
좀 불편한, 조금 편하지 않은, 그렇기에 더 신경 썼어야 했던 그 시대의 순수함, 진정성을 사람들은 바라는 것 아닐까.
또한, 레트로 열풍, 빈티지, 갬성으로 표현되는 과거 유물에 대한 관심은 현실에 대한 결핍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 영화는 후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되리라고 인지하지도 않았기에 날 것 그대로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어질 반환 전, 홍콩의 풍경은 기록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게 되었고 더 시간이 지나면 이 영화는 클래식이 되겠지.
우리가 이 영화에 열광하게 되는 것, 디지털처럼 편하고 능숙한 사랑과는 다른, 좀 불편하고 서툴지만, 그 마음은 투명했던, 사랑은 이거다, 사랑은 이래야 하는 거야가 아닌 아날로그 시대의, 우리 어린 시절의, 뭘 몰랐던 그때 사랑을 이제는 느끼기 어려울 것만 같아서 아닐까.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그 시대라고 한들 어찌 모든 것이 맑고 순수했을까.
마음이 마음으로 통하고 목적의 충족이 아닌, 욕망의 해소가 아닌, 순수의 판타지를 인간은 끊임없이 염원하는 것 같다.
레트로로 칭하는, 아날로그라 말하는, 과거의 흔적들이, 더는 감성이 패션이 아닌, 사람에 대한 깊은 생각으로 뭉게뭉게 피어나는 세상을 바라본다.
너무 추억만 하지 않기로 해.
다만, 우리 청춘의 유통기한은 만년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