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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잼과 같다

밀크티잼을 만들다가 건져올린 생각

by bi

올 여름엔 밀크티에 빠져버렸다. 언제부터가 그 시작인지 모르겠다. 집에서 마신 각종 얼그레이 티 때문인지, 집앞 빵집에서 먹은 홍차번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얼그레이 타르트? 얼그레이 포카치아? 밀크티에 인도 향신료를 넣은 짜이티? 써놓고 보니 얼그레이, 밀크티에 단단히 빠지긴 빠졌다. 이렇게도 종류별로 많이 사먹었다니.


특유의 향...코스모스를 한 잎 떼어서 먹으면 이런 향이 날까 싶은 향긋한 맛. 색깔로 치자면 분홍색이 떠오르는 맛. 왕창 그 향을 입 안 가득 느끼고 싶어서 밀크티잼을 만들까 말까 며칠을 고민했다. 밀크티잼, 밀크티잼 하고 앓다가 결국 직접 만들기에 이르렀다.


밀크티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잼을 담을 유리병, 생크림, 설탕, 얼그레이 티백 6개.



밀크티잼 레시피

1. 잼을 만들 냄비를 준비한다.

2. 얼그레이 티백 2개를 뜯어서 가루만 넣는다.

3. 생크림 1L당 설탕 100g을 넣는다. (500ml면 50g)

4. 불을 약불에서 중불 사이로 켜고, 티백 4개를 뜯지 않은 채로 10분간 우린다.

5. 30분 동안 저으면서 끓인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건, 계속 저으면 잼이 될 거라는 확신이다.

묽은 액체를 계속 타지 않게 인내심을 갖고 젓는 것이다.


나는 결국 잼을 망쳤다. 30분동안 뭉근히 저어야, 타지 않고 온전한 얼그레이 잼이 되는데 10분만에 강불로 끓여버렸다가 검은 덩어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황급히 불을 끄고 유리통에 옮겼는데...잼은 잼인데 묘하게 카라멜 혹은 달고나 맛이 나는 요상한 잼이 되어버렸다.


약불에서, 비록 지금은 묽을지라도 곧 꾸덕한 잼이 될 거라 믿으며 저었어야 하는데...


어쩌면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지금 내게 독이 되는 건 조바심이고, 나는 곧 완성이 될 거라 믿고 계속 나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오늘 만난 D에게 말했더니 다음엔 더 잘 만들 수 있을 거라며 위로 받았다.

잼을 만드는 데에 1단계 2단계 3단계가 있다면, 지금은 잼을 만드는 1단계 속에 있는 거라며.


그래서, 말이 길었다. 오늘의 메시지는 좌절 금지. 킵고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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