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 du moustique
요즘은 우쿨렐레라는 악기를 배우고 있다. 고등학생 때 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라는 프랑스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트랙 중 유난히 마음속에 별사탕들이 데구루루 굴러다니는 듯한, 어릴 때 탄 자전거 바퀴에 달려있는 구슬 같은 음악이 있었는데 우쿨렐레라는 악기로 연주된 음악이었다.
그때부터 대학 진학만 하면 배우고 싶었던 우쿨렐레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배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당장 급한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런 걸 배우는 것이 어리석은 짓일까 싶다가도 지금 아니면 또 언제까지 미뤄질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조급해졌다. 아니 사실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걸 배우며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좋으급'해졌다.
그리고 지금 이런 좋으급한 자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내게 닿는 주변인들의 태도 덕일 것이다. 나를 아는 그 누구도 취업을 빨리 하라고 닦달하지도,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 그냥 나 혼자 가끔 조급해졌다가, 절망했다가 혼란을 겪고 중심으로 돌아온다.
5월의 한 주에는 당장 사회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는 퇴행적인 생각들과 부족한 능력에 대한 자기 비난만 가득해서 너무 울적해진 탓에 몸과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너 일은 할 거잖아."
"어차피 할 건데 뭐, 지금 안 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결국엔 하게 돼있으니까 미래의 일에 지금을 가져다가 마음 불편해하지 마."
그리고 다시 나는 중심으로 돌아와 메모장을 켜고 오랫동안 미뤄왔던, 하고 싶었던 리스트들을 확인했다. 우쿨렐레 배우기, 불어 배우기, 테니스 배우기, 해외에서 일하기…100가지는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법적 보호자인 엄마, 아빠에게 말했다.
"나 우쿨렐레 배우고 싶어서 우쿨렐레 학원 다니려고, 내가 모아놓은 돈으로 레슨비 할 거야."
"그래라~ 졸업하고 남들과 달리 행복해 보여서 좋네.", "넌 배우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참 좋겠다. 부럽다."
(비꼬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진짜로 좋아하고 부러워하셨습니다….)
"어차피 취업할 거면 하고 싶은 거 좀 하다가 해도 돼. 엄마, 아빠가 지금 당장 힘이 너무 부치는 상황도 아니고 아빠도 왜 그렇게 부랴부랴 취업했나 몰라. 다시 돌아간다면 너처럼 할 것 같아."
엄마, 아빠는 어떻게 나한테 취업 스트레스를 단 한 번도 주지 않을 수가 있지...
너무 속물적이지만 난 이런 대목에서 날 향한 엄마, 아빠의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내가 뭣도 아니어도 엄마, 아빠는 날 그냥 사랑하는구나.
의외로 방목하는 환경 탓에 나는 나름 고삐 없는 망아지처럼 뜯고 싶은 풀을 다 뜯으며 살고 있다. 물론 그 풀들은 이미 엄마, 아빠 말이 어느 정도 파악했겠지만 말이다. 늘 이 둘 덕에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평양냉면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볼 땐 밍밍할지라도 경험자는 이미 최고의 고자극을 맛보고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마음가짐을 지지해 준다.
우쿨렐레는 '벼룩'이란 뜻의 'uku', '뛰다'라는 뜻의 'lele'가 합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벼룩이 뛰는 듯한 영겁의 자연소리를 내는 악기라 그런지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간 들어온 현악기 중에 가장 순정의 소리가 난다. 아마도 나는 그런 소리에 매료됐을 것이다. 바이올린 같은 소프라노 악기들은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나는 듣기에 비교적 평화로운 소리들을 내는 악기들에 매료되곤 한다. 첼로나 베이스 같은 저음을 내는 악기들이 대체로 그랬다. 우쿨렐레는 바이올린만큼의 높은음들을 내지도, 그렇다고 첼로만큼 낮은음들을 내지도 않지만 아기가 자는 낮잠처럼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은은히 귀여운 소리를 낸다.
기타도 배워본 적 없는 나는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손가락으로 코드를 집어본 적이 없다. 중학생 때 했던 첼로는 옆으로 자연스럽게 코드를 집으면 됐던 터라 힘이 덜 들었던 것 같은데 우쿨렐레는 첼로보다 힘을 더 들이게 된다. 어쩐지 쇠줄보다 나일론줄을 다루는 지금의 손가락이 더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가 멋있게 나지 않았다. 첫 수업부터 디리링- 까지 원하진 않았지만 딩딕띡ㄱ- 또한 원하지 않았기에 첫 수업을 마치고 보니 왼손 검지에 현 자국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점은 50분이 10분처럼 지나갔다는 것,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 코드를 3개나 배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진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올 틈이 없다는 것.
우쿨렐레 학원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위치해 있다. 등하원이 5분 컷이다. 다른 동의 다른 집 구조를 방문하니까 꼭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의 집에 가는 것 같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마냥 가볍지 않은 생기가 느껴진다. 꼭 잘 자라고 있는 나무의 줄기 같은 색이다. 선생님은 주로 시간이 이끄는 대로 흘려 다녀도 좋은 어린이들과 시간을 이끌 힘이 생긴 어른들을 가르치시다가 두 가지 방식으로 시간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20대를 오랜만에 보셨는지 나를 반가워하셨다.
누군가 나를 첫인상으로 판단할 때 ‘착해 보인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아주 못된 사람은 아니어도 누구나 이 정도 법은 준수하며 남한테 큰 피해는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아닌가. 그것을 착하다고 말한다면 착하긴 하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착하지만 성격이 더럽다. 대개 나를 그렇게 보고선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면 더러운 성격의 나를 보며 인상과 다르다며 한 마디씩 얹는다. 난 그들이 말하는 착한 인상에 반(反)하고, 받고 더블로 또 반(反)해 정의된 틀들을 못 견뎌한다. 무언가에 쉽게 질리고 인내심이 없다. 빠른 시간 안의 최대의 효과를 원해서 원했던 결과를 내거나 아예 포기해 버려 나 몰라라 해버린다. 중간의 범위가 좁고 양극의 범위가 훨씬 넓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나를 설명하는 이유는 착함을 순종적임으로 대칭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순종적…….ㅋ………………..
진짜 웃기다ㅋ……ㅋ………나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다 못해 뭔 소리냐며 성을 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은 유유상종이라고 나의 주변인들 또한 모두 성격이 더럽다. 그래서 성을 낼 것이다.
선생님은 나를 ‘착해 보인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간 내가 들었던 가짜 ‘착해 보인다’와 달리 진짜 본질적인 의미의 ‘착해 보인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이 관계에서, 둘의 결이 비슷한, 적어도 서로에겐 비슷하게 들어맞는 나이스한 사람으로 봐주고 있단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엉망진창 ‘착해 보인다’에 경계심이 잔뜩 들었던 터라 첫날 선생님의 ‘착해 보인다’란 말엔 “에…? 에…..ㅎ….”로 끝났지만 둘째 날의 ‘착해 보인다’는 말엔 부연 설명을 하셨다. 자신과 어느 정도 비슷한 착함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말
이마저도 남을 경솔하게 판단하는 말일지라도 적어도 나에겐 무례하거나 무지하지 않았다.
“뭐 좋아해요?”
아마 이 질문이 없었다면 나는 계속 ‘착해 보인다’란 말에 노이로제가 한층 더 심해진 채로 살았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뭘 좋아하냐고, 이렇게 광범위하면서도 너무나 사적이라 아주 좁은 영역을 파고드는 질문은 이미 그 질문이 가진 양극적인 성질 탓에 중간이 없는 나를 동요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침착하게
“어떤...? 범위 없이 그냥 좋아하는 거 아무거나요?”
“네 아무거나요. 그냥 좋아하는 거”
선생님... 저 이런 질문 진짜 좋아해요. 왜냐면 저는 좋아하는 걸 생각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생길 수밖에 없는 싫어하는 걸 말하는 것만큼 좋아하는 것도 무진장 많아서 배우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엄청 많아요. 제 능력 밖에 일일지라도 좋아하는 걸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들로 매일을 살아요. 거의 망상꾼처럼요.
“전시나 공연,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너무 무난했나
“주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하시네요.”
네!!!!!!!!!!!!!
혼자 어떤 것들을 해봤는지 서로 이야기하다가 혼자 여행을 가본 경험을 얘기하며 의외로 혼자 여행은 동행인이 있는 여행보다 재밌지 않았다는 나의 나름 은밀한 비밀마저 말하게 되었다. 나를 궁금해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선생님의 적당한 관심 농도는 재밌었다. 이는 무척 주관적이라 나도 누군가에게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튜닝을 하며 생각했다. 오늘도 50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