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근면성실, '올해의 산타' 다관왕 등극!] 축
엄마, 아빠의 산타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당시에 10살까지도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었던 나는 산타는 없는 거라던 몇몇 시니컬한 친구들의 말에 짜증이 났었다. 반박을 하고 싶은데 자꾸만 걸리는 게 있었다.
10살,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 엄마, 아빠의 방 서랍장에서 내가 전부터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화이트보드 칠판 필통’이 구석에 끼어있는 것을 봤었기 때문이다. 애써 진실을 외면하려는 눈짓과는 달리 손은 슬쩍 그것의 형체를 확인하려 했고 그 후 크리스마스 당일, 머리맡에 놓인 선물은 전에 봤던 것과 똑같은 필통임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게 먼저 발견해 버린 필통은 당시에 남동생 것일 수도,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없는 구조였다. 집에 ‘필통광’인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필통을 아빠나 엄마가 쓸 일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필통엔 무려 ‘화이트보드 칠판’과 마커가 있었다.
사실 유치원생일 때에도 우리 집에 직접 방문한 산타가 아빠와 유난히 닮았다며 애써 모른 척했던 지난날의 심증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 때 받았던 선물이 불량제작된 상품이어서 산타님께 받은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화를 내며 교환하자고 말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의아했었다.
당시엔 배려 깊었던 어린이 (6세): "산타님이 다시 우리 집에 어떻게 와!!ㅠㅜㅜㅠ 눈도 다 녹았는데!!!ㅠㅜㅜ우아아앙 그냥 쓸래!!! 안 바꿀래!!!!!!!!!"
필통을 선물 받은 해의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그간 나의 산타들은 모두 아빠와 엄마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다음 날 학교에서 시니컬하긴 했지만 여전히 선물 받는 크리스마스가 좋았던 친구들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산타는 이 세상에 없다며 연신 외쳐댔다. 나는 새로 들고 간 그 필통이 그때 처음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간의 선물들을 보면 이상하리만큼 나의 니즈를 정확히 충족시켜줬었고 ‘어쩜 산타님은 내가 갖고 싶은 걸 이렇게 정확히 아실까?’라고 궁금해했었는데 크리스마스 시즌만 다가오면 늘 나에게 “모은이는 이번에 산타님한테 뭐 갖고 싶다고 기도할 거야?”라고 묻던 엄마와 아빠의 말이 그제야 합리적 의심을 거쳐 산타가 없다는 말에 증거가 된 것이다. 과거에 “어~나는~OO 달라고 기도할 거야~!”라고 술술 불던 나의 모습도 두 번째 증거가 된 셈이다.
엄마, 아빠가 내 10년 간의 삶 속 산타였다면 모쪼록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마음으로 3-4년은 더 선물을 받았던 것 같다. 작든 크든, 늘 나와 동생에게 선물을 주셨다. 아마 연말쯤 산타나라의 신문에 [근면성실, ‘올해의 산타' 다관왕 등극!]이란 헤더가 있다면 그 아래 줄에는 ‘강OO’, ‘연OO’가 굵게 적혀있을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고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의 시간이 줄 수록 문득 엄마, 아빠의 산타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졌다. 몇 년 동안 그들 세계 속에서 존재했었는지, 얼마나 근면성실 했었는지, 가끔은 직접 가정방문도 해줬었는지.
아마 높은 확률로 당신들은 산타에 대해 내가 겪었던 시니컬한 친구들 역이었을 수도, 당신들의 산타는 불성실했을 수도, 산타의 직접 가정방문은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산타를 겪어온 이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겐 꽤 긴 시간 동안 산타의 존재를 믿게 해 줬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겨울의 크리스마스가 이토록 따뜻하고 풍요로운 날임을 해마다 알려준 엄마, 아빠에게 사무치게 고마워지는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