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의 도랑
외할아버지의 꿈은 영화평론가였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고등학생이었던 엄마와 엄마의 친구를 영화관에 데려가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다 보고 상영관에서 나온, 금방 내어진 따끈따끈한 호빵 같은 엄마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금 본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엄마는 이때 자신의 아빠와 한 대화를 오래 기억한다. 그리고 이때 아빠와 자신의 꿈의 결이 비슷했다는 걸 어렴풋 느껴만 본다.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평생 맘 놓고 사랑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경제적 능력이 조금 부족해서 외할머니가 고생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엄마를 괴롭히는 존재가 자신을 사랑하는 아빠이다 보니 엄마는 유년시절이 조금은 불편했다. 따뜻한 니트의 한 올이 풀리고 묶이는 과정의 반복이었을 테니까.
할아버지는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대사를 유심히 곱씹고, 배우의 연기를 보고, 그리고 이제 막 10살도 채 되지 않은, 사극 드라마에 빠진 9살 손주와 등장인물들의 극 중 이름과 배우 이름 외우기 놀이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할아버지는 이미 알기에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손주는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었고, 한창 ‘태왕사신기’에 나오는 ‘독고영재’라는 다소 긴, 주인공도 아닌 배우의 이름까지 외웠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무척 뿌듯했다.
“모은이가 날 닮아서 배우 이름이랑 극 중 역할 이름을 금방 외우고 기억하네.”
가족끼리 할아버지가 일하던 곳에 가, 오리고기를 먹고 걷던 중 호탕하게 가족들에게 나를 자랑하는 모습이 난 무척이나 좋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너는 나를 닮았다며 웃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독고영재'라는 배우는 손주의 눈에 자신의 외할아버지와 꽤나 닮아 보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가급적 빨리 외우고, 가족들에게 가급적 빨리 알려야 했다. 할아버지가 '독고영재'와 닮았다는 것을.
마이클 잭슨이 죽던 날, 외할아버지는 춤추는 마이클 잭슨이 쓰던 모자를 삼킨 듯한 목소리로 뉴스를 보며 말했다.
“세기의 엄청난 뮤지션이 이렇게 가는구나…”
할아버지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음악을 좋아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러브스토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영원히 그 전말을 알 수 없겠지만 아마 추측하기로는 둘 다 음악 좋아하기와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유흥 정도는 즐길 수 있는 마음의 도랑이 각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둘 다 잘 불렀다. 음악과 노래가 주는 팽팽하지 않은 느슨함과 긴장감이 둘에게 흘렀고 그들은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가끔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곳을 이렇게 지나다니시겠구나 싶은 때가 있다.
비슷한 걸음걸이와 복장, 또는 실루엣이나 말투의 높낮이를 가진 사람이 문득 지나갈 때마다 말이다. 할아버지의 시간은 칠십 초에 멈춰있어서 함께 나이 들지 못한다는 것에 목구멍과 콧구멍이 아릿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