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완전한 원
시내와 수담이는 동그라미들이 일러 준 대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그 길을 따라 곧장 가면 동그라미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고 했다.
둘은 장난스럽게 활개를 치며 걸었다. 숲은 서늘했다. 훤칠한 나무들이 푸른 바람을 보내 주었고, 작은 이파리들은 저마다 손을 흔들어 주었다. 구름위동그라미를 만난 것은 그 아름다운 길 위에서였다.
길 가 큰 나무가 만든 그늘에 동그라미 하나가 누워 있었다. 나뭇잎이 무성해 햇빛이 들지 않는데도 동그라미는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찌푸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시내와 수담이는 어디가 아픈 건지, 아니면 자는 건지 살펴보려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인기척을 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괜히 단잠을 깨우는 것 같아 조용히 지나치려고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동그라미가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여어, 시내와 수담이구나.”
시내와 수담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동그라미가 싱긋 웃었다.
“그늘이 정말 좋아서 잠시 쉬려고 누웠는데 그만 깜빡 잠이 들었었나 봐. 아, 개운하다.”
동그라미는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시내와 수담이에게 곁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친구가 너희들 얘기를 해 주었어. 나는 구름위동그라미야. 반가워!”
시내는 동그라미가 내민 손을 잡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
“구름위?”
“나는 생각하는 걸 좋아해. 그렇다고 뜬구름 잡는 생각만 한다고 짐작하지는 마. 나는 완전한 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거든.”
“완전한 원?”
시내와 수담이가 동시에 물었다. 구름위동그라미는 굉장한 비밀을 알려 주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동그라미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원은 완전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 다른 아이들은 다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는 원이 왜 완전하다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결국 지혜로운 노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찾아가 물었지만, 그분들은 스스로 풀어 보라고 말씀하셨어. 그때부터 거기서 꽤 오랫동안 지냈어. 왜 원을 완전하다고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구름위동그라미는 잠시 먼 산을 바라보더니 이내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그곳을 떠났어.”
구름위동그라미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옆집 형네 놀러 가서 해 봤는데 컴퍼스를 꼭 잡고 잘 그리면 정말 동그란 원이 나오던데, 그래서 원이 완전한 거 아닌가?”
수담이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언뜻 보면 그렇기도 한데, 사람들이 그리는 원은 불완전해.”
“왜?”
“연필을 엄청 뾰족하게 깎아서 반들반들한 종이 위에 컴퍼스를 정확하게 돌려 원을 그려 봐. 그 다음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면 어떻게 보일까?”
시내와 수담이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갉아 먹은 뻥튀기 과자처럼 울퉁불퉁할 거야. 그러니까 완전한 원은 사람들 머릿속에나 있을 뿐이야. 나는 우선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그 완전하다는 원을 우리 동그라미나라에서 만들어 보고 싶어.”
“원이 왜 완전한지도 모르는데 완전한 원은 만들어 보고 싶다고?”
시내와 수담이가 의아한 듯 구름위동그라미 얼굴을 쳐다보았다.
“응. 그러니까 복잡해.”
“그럼 이제 어쩔 거야?”
“우리 어른들 말씀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 거야.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 혹시 잘못되지는 않았나 고민도 되고…….”
“그래서 이곳을 떠나는 거야?”
“좀 더 넓은 세상을 보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해서. 너희들도 그래서 여행하는 것 아니니? 너희들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도 여행 떠나기로 했거든. 조금 있으면 같이 갈 친구가 올 거야.”
“여행?”
시내와 수담이가 동시에 되묻고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어디로 갈 건데?”
시내가 물었다.
“글쎄. 아직 정하지는 못했어. 너희는 어디로 갈 거야?”
“우린 여행 온 게 아니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여기였어.”
“뽀얀동그라미, 초록빛동그라미 … 우리가 동그라미들을 그렸대.”
시내와 수담이가 서로 앞다투며 말했다. 구름위동그라미가 살짝 웃었다.
“그럴 리 없어. 인간 세상에서 원을 아무리 많이 그려도 여기 들어오지는 못해. 그게 가능하다면 여긴 벌써 사람들로 꽉 찼을 거야.”
구름위동그라미의 말에 시내와 수담이는 멍하니 할 말을 잃었다.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었을 거야. 잘 생각해 봐.”
시내와 수담이는 서로 마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동시에 외쳤다.
“원주!”
“숙제!”
시내와 수담이 머릿속에 갑자기 불이 켜진 듯 생각이 났다.
‘그래, 학교 운동장에서 손을 잡고 원을 만든다며 돌다가 붕 떠올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