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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 himi Nov 13. 2020

"학교로 돌아오지 않아도 돼 은별아."

교수님께 최악의 문자를 보내는 법   [휴학-ADHD의 경우2]

*김은별은 저의 별명인 '작은 별'에서 따온 가명입니다.


졸라리 당당하고 짱 쎈 20살 은별이. 자기 자신과 대학교에 대한 의문만 차곡차곡 쌓아가던 은별이는 고민 끝에 교수님께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김은별이라고 합니다. 내일 있을 전공수업에 출석하지 못하게 되어 미리 문자 드립니다. 수업보다 더 중요한 걸 찾으러 가야 해서요.]


밤 10시에 돌연 내일 수업 빼먹겠다는 쌩뚱맞은 문자를 받은 교수님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궁금하지만 여쭤보고 싶지 않다. 부끄러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끄러운 줄도 몰랐던 시기! 그로부터 6개월 정도가 지난 5월, 휴학생이 된 은별이는 다시 한번 교수님께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 저는 작년에 교수님 수업을 들은 김은별이라고 합니다. 궁금한 게 있어 고민 끝에 문자 드립니다. 괜찮으시면 시간 될 때 상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살면서 꼭 잡아야 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학점이나 포폴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고 휘갈긴 메모. 야 그거 중요해 인마...


여러분은 교수님께 보내는 최악의 문자 유형 두 가지를 보셨습니다. 황당하리만치 어이없었을 이 문자에도, 교수님은 금세 답을 해주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 근처 카페로 향한 나는 교수님 맞은편에 앉자마자 혼났다.




"너는 혼나야 돼. 왜인지 알아?"

설마설마 카페에서 혼날 줄은 몰랐지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구는데 교수님이 덧붙이셨다.

"고민을 너무 오래 하고 있어서야."

감동의 눈물 왈칵.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고등교육을 한다는 대학교에서는 대체 뭘 가르치고 있는 건지, 애초에 가르치기나 하는 건지 의문스러웠고,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모든 상황의 고삐를 내 손에 쥐고 있는 게 부담스러웠다. 착실히 학점을 챙기거나 밤낮없이 놀아제끼거나 대외활동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위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도, 따라하기도 힘들었다. 그냥 다 멈추고 싶었지만 일반적인 궤도를 벗어나는 게 두려웠다. 두려웠는데,


"고민을 하는 것 자체는 괜찮아. 니가 잘못된 게 아니야. 너는 누구나 한 번쯤 해야 할 고민을 좀 더 빨리 시작한 것뿐이야. 다만 그 고민을 너무 오래 끌면 안 돼.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게 되거든. 학교로 돌아오지 않아도 돼, 은별아. 니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걸 찾아봐. 생각나는 게 있으면 백 개쯤 적어. 그리고 해봐, 하나씩. 마지막까지 남는 건 다섯 개도 채 안 될 거야. 다섯 개나 남으면 다행이지."


라는 말에 가닥이 잡혔다.




당연히 상담 한 번으로 짜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같은 전개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은 당시 내가 누구에게서든 절실하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니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과 학교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걸 명분 삼아 많은 것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도전장만 남기고 냅다 도망치긴 했지만, 김은별이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건 확실하다.


아, 수업 빼먹은 날은 무슨 중요한 걸 찾았느냐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걷다 전시를 보러 갔는데, 그 무렵 내리기 시작한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학교 수업은 휴강했단다. 미래를 알 수 없었던 나는 굳이 안 보내도 되었을 문자와 함께 교수님의 뇌리에 내 이름을 박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꼼꼼히 젖어 묵직하고 차가운 운동화를 얻게 되었으며, 그 촉감에 파묻혀 전시 내용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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