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rry Sep 15. 2024

나도 ‘Blesser’

우리 모두가 blesser!

나는   장애비장애를 통합하는 장애통합교육을 하는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유아기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은 통합할 교육기관이 너무 없기에 입학을 할 수 있는 것만을 도 너무 좋아하신다.  가끔은 나에게 ‘천사 같은 원장’이라고 까지 하신다. 그만큼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대한민국헌법 제31조에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데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예외일 때가 많다.  그런데 유아기에는 단순히 언어만 지연되거나, 발달이 조금 느거나 사회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영구적으로 회복되기 힘든 시각이나 청각, 지체장애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유아기에 장애라고 명확하게 결정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현장에 있어보면 유아기에는 발달의 개별차가 너무 커서 발달이나 사회성과 언어등이 느려서 특수교사 배정을 받다가도  2,3년 만에 회복되어 초등학교에 갈 때는 특수교육이 필요 없는 경우도 제법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기에 발달이 느려서 ‘장애 같기 때문’에 우리 교육기관에서 교육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 교육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어느 날 카페에 갔다가 옆 테이블에서 수다를 들었는데 학교에 장애친구가 한 반이라서 불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발언이 내가 장애 부모였다면 너무나 상처가 될 말이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정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어떤 부분에서 모두 다 저마다 생각의 차이 행동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부분을 두고 비정상이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비정상이다.  모두가 비정상이라면 그것은 역으로 모두가 정상인 것이다.

감사하게도 어린아이들은 친구들을 장애 비장애를 결코 나누지 않는다.  성인의 관점으로 구분을 시키고 맞다 틀리다를 주입하는 것이 교육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배척당하는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은 그래서 더 밖으로 나오기가 두렵다.  장애는 없애고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닌 고유한 인간의 특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아기 장애 또는 발달이 느린 부모님들의 어깨에는 늘 힘이 들어가 있다.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치료하시려고 고군분투하신다.  이 아이들이 초, 중학교를 다니게 되면 더 이상 치료실을 다니시지 않는다. 너무 힘드시기도 하셨겠지만, 힘을 빼는 방법도 터득하셨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천천히 그 아이들도 자기의 진도대로 잘 자라는 것을 보신 것 같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나는 감히 장애아동을 가르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있어서 나 같은 인간이 조금이라도 성숙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의 저자의 이야기를 다른 최근 영화 ’ 그녀에게‘의 영어제목이 ’blesser‘인 것을 보면서 깊이 공감했다.  장애 비장애를 불편한 시선으로 구분하지 않고 지원의 필요성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학교 가는 길 영화에서 ‘17년을 기다려 특수학교가 세워졌다. 그 투쟁을 처음 시작한 부모의 자녀는 이 학교에 다닐 나이가 훨씬 넘어갔다. 내가 받을 혜택이 아닌 것을 알면서 싸워줄 이가 누가 있을까? 지금 누리는 혜택도 그전에 누군가 힘을 다해준 덕분임을 알고 계신다. 그 모습을 보신 분들은 다음 부모님들을 위해 또 그렇게 힘쓰고 계신다.


https://youtu.be/_hPtjcZWeD4?si=iBXriAa0QWZRtCc1 학교 가는 길 영화


https://youtu.be/d6KEz9DBNEo?si=jRqsAxnXMSI1uV5L 영화 그녀에게


작가의 이전글 새째 딸인 나는 엄마의 남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