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고딘이 말하는 브랜드의 진짜 본질
분기 실적이 하락하고, 시장의 반응이 미지근해질 때, 혹은 경쟁사의 화려한 등장에 위기감을 느낄 때, 회의실에서는 으레 ‘브랜드 리뉴얼’이라는 카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논의의 첫 단계는 대부분 ‘로고 교체’로 이어지곤 합니다. 마치 낡고 오래된 로고가 모든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말이죠.
왜 우리는 변화의 시작점에서 로고를 먼저 떠올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로고는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색상, 세련된 서체로 바뀐 로고를 홈페이지와 명함에 적용하는 순간,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은 이러한 접근이 가장 위험한 자기기만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로고를 브랜드의 ‘인공물(Artifact)’이라 부릅니다. 인공물이란, 어떤 의미나 약속을 상징하는 물건일 뿐,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결혼반지가 결혼 생활 그 자체가 아니듯, 로고는 브랜드 그 자체가 아닙니다. 결혼 생활의 본질이 신뢰와 사랑, 공유된 경험의 총합이듯, 브랜드의 본질은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고, 서비스를 경험하고, 직원을 만나며 축적한 모든 ‘경험과 약속’의 총합입니다.
고객 경험은 엉망인 채 그대로인데, 그 경험을 상징하는 로고만 바꾼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이는 마치 내용물이 모두 상해버린 통조림의 라벨만 새로 디자인해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고객은 결국 뚜껑을 열어보고 실망하며, 그 새로운 라벨에 대해서마저 불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브랜드 리뉴얼은 로고 시안을 받아보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 비즈니스의 ‘본질’을 정의하는 내부의 치열한 질문과 토론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로고는 이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이 명확해졌을 때, 그 답을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마지막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세스 고딘의 철학에 따라,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정확히 누구를 위한 것인가? (최소유효시장, Smallest Viable Market) ‘모든 사람’을 위한 피트니스센터는 결국 아무런 특징 없는 공간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50대 이후, 부상 경험이 있으며 재활과 건강한 노년을 목표로 하는 시니어’를 위한 피트니스센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이 명확한 타깃 설정은 어떤 운동 기구를 들여놓을지, 어떤 강사를 초빙할지, 어떤 시간대에 클래스를 운영할지, 심지어 어떤 단어로 광고해야 할지까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모른다면, 로고는 누구에게도 말을 걸 수 없는 공허한 그림이 될 뿐입니다.
둘째,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약속을 하는가? (이야기와 변화) 고객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을 통해 얻게 될 ‘더 나은 나’라는 변화를 삽니다. 우리의 역할은 고객의 현재 상태와 그들이 되고 싶은 미래 상태 사이의 ‘긴장(Tension)’을 해소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디지털 파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상태’와 ‘모든 것이 정리되어 창의성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 사이의 긴장을 해결해주는 것이 생산성 앱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고객에게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선물할 것인지, 그 과정에 어떤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을 것인지 약속해야 합니다. 이 약속이 바로 브랜드의 핵심 가치입니다.
셋째, 우리는 그 약속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꾸준히 지킬 것인가? (문화와 행동) 어쩌면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속가능성’을 약속하는 브랜드가 과대포장을 남발하거나, ‘고객과의 소통’을 약속하는 브랜드가 문의 게시판을 방치한다면, 그 약속은 거짓이 됩니다. 브랜드의 약속은 조직의 문화, 직원의 행동, 제품의 품질, A/S 정책 등 고객이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서 일관되게 지켜져야 합니다. 이 꾸준한 행동이야말로 고객의 뇌리에 신뢰라는 도장을 찍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진정한 브랜딩은 디자이너에게 로고를 의뢰하는 외주 작업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존재 이유와 약속을 정의하고 지켜나가는 전략적 과업입니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쌓여 하나의 단단한 ‘스토리’가 될 때, 브랜드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습니다.
수년간 오지의 농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공정무역 원두를 들여오고(행동), 매장에서 커피의 스토리를 고객에게 꾸준히 설명해주며(소통), 그 수익금의 일부를 다시 농가에 환원하는(약속) 작은 커피 브랜드가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설령 그 브랜드의 로고가 전문가가 그린 세련된 그림이 아닌, 창업자가 직접 그린 투박한 손 그림일지라도, 그 로고는 세상 어떤 로고보다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그 로고를 보는 순간, 고객들은 그 안에 담긴 모든 스토리와 진정성을 함께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로고가 필요한 진짜 순간은, 낡은 이미지를 감추고 싶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고객에게 할
‘새롭고 위대한 약속’이 생겨 세상에 그 시작을 알리고 싶을 때입니다.
먼저 당신의 비즈니스가 지켜나갈 위대한 약속을 만드세요.
로고는 그 약속을 담아낼, 가장 마지막의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