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방과 후 교사로 일한다.
KLL(Korean Language Lerner) 선생님이 필요하다!
지난해부터 초등학교에서 한국어 방과 후 교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오게 된 중도 입국 학생들이다. 이 학생들은 한국에 와서 한국 학교를 다니지만, 한국어를 배우지 않은 탓에 한국어가 서툴고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이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한국어 선생님들을 계약직으로 고용해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학교에 따라 한국어 교사가 오전 정규 수업에 들어가 담임교사와 협력수업으로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도 있고, 어떤 학교는 오후 수업이 끝난 후 따로 학생에게 방과 후 수업으로 한국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는 방과 후에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중도 입국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한국어 교사는 학생들 개개인을 위한 맞춤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빠른 시일 내에 한국어를 배워 정규 수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표이다. 마치 미국 학교에서 영어를 못 하는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ELL(English Language Learner) 선생님과 같다.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나는 실제로 내 아이들이 ELL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었고, 선생님과 상담도 하며 그 과정을 지켜봤기에, 어떤 단계로 학생들이 정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지 알고 있다. 궁극의 목적은 현재 한국어 선생님의 목표와 같다. 이주해 온 학생이 ELL 선생님의 도움 없이 홀로 정규 수업에 참여해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학교 진도에 맞춰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하는 것. 이를 위해 한국의 다문화 학생들은 한국어 선생님이, 미국의 이민 학생들에게는 ELL 선생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미국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수업에 적응시키는 단계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레벨테스트를 본다. 학교가 개학하기 전에 영어와 수학 테스트를 봤다. 그 테스트 결과에 따라 영어와 수학의 수준별 반이 배정되었다. 초등학교는 테스트를 본다 하더라도 나이에 맞춰 학년이 배정되었지만 중학교는 수준별 수업에 따라 배정되는 반이 달라졌다.
배정에 따라 일반 영어 수업에 들어가지 못할 수준이라면 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ELL 수업 교실에 들어가 영어 수업만을 듣는다. 이렇게 일정 기간 수업을 받은 후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다른 학생들과 함께하는 수업에 들어갈 수 있다.
Limited English Proficency (제한된 영어 능력) 학생으로 판단되었을 경우, 학생들은 정규 수업에 들어가지만 ELL 교사와 함께 수업을 듣게 된다. ELL 교사는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아이들을 도와주고 관찰한다. 주로 영어와 사회 수업에 같이 참여하며, 숙제가 있는 경우 학생들의 숙제도 도와준다. 수업을 맡고 있는 선생님과의 상의하에 학생을 어떻게 지도할지 협업을 하고, 에세이와 같은 숙제는 ELL 선생님이 먼저 학생의 과제를 검토, 첨삭 후 학생이 다시 수정해서 제출한다. 이렇게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학생의 수준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에 올랐는지 확인한 후 ELL 교사의 판단에 따라 혼자 수업을 들을지 말지 여부가 결정이 된다.
개개인의 발달 속도에 따라 1학기~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ELL선생님의 도움 없이 제 학년의 수업에 참여가 가능하게 된다. ELL 교사는 학생의 수업 태도 관찰과 과제 진행, 테스트 등의 결과를 보고 혼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지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ELL 교사가 마침내 이 학생은 혼자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결정하면, 비로소 이 학생은 소위 말하는 'ELL을 졸업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며, 여타 학생들과 같이 선생님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혼자 수업에 참여하고 과제 수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학생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이민 학생이 많은 학교에 ELL 교사를 상주시키고 적극적인 '국어' 교육을 한다. 어떤 ELL 선생님은 방과 후에 따로 부모를 위한 영어 교육을 무료로 하기도 했다. 이민을 간 나라의 말을 배우는 어린 학생들이야 말로 그 나라에서 계속 살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들에게 하는 국어 교육은 가치가 높다.
이렇게 학교에서 매일 이민 학생들을 보는 ELL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수업에 적응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 영어를 잘 모르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구를 만들기 위해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꽤나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바로 학교에 가서 원어민처럼 말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줄임말과 슬랭을 많이 사용하므로 '학교 영어'와 동시에 '친구 사귀기를 위한 영어'를 함께 알아야 한다. 따라서 많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며,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ELL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우리 아이들도 운 좋게 그런 ELL 선생님을 만났었다. 그분은 여름방학 동안 무료 튜터링을 해주셨고, 아이들이 얼른 적응하고 영어를 잘하게 되기를 바라셨다. 어떻게든 튜터링 비용을 드리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튜터링 비용 대신 당신의 이름으로 학교에 기부금을 내주시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의 이름으로 소액이지만 기부를 하기도 했다.
많은 한국어 교사도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한국어를 '빨리' 가르쳐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고 싶을 것이다. 나아가 교과목으로서의 '국어' 수업을 혼자 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을 것이다.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의 ELL 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런데 현재처럼 한국어 강사와 학교의 1년 계약, 혹은 한 학기 계약, 혹은 120시간 계약, 그것도 주당 14시간 이하 근무 등등의 조건으로 이런 과정의 수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중도 입국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는 정식 KLL(Korean Language Learner) 교사를 고용해 몇 년 동안 그 학생들의 한국어 발달상황을 체크하고 일정 시점에서의 해결책도 제공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중도 입국 학생들이 계속 증가한다면 통일된 한국어 교육 가이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중도 입국 학생들을 매일 만나면서 나의 아이들이 낯선 사회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 경험이 투영되면서 이 아이들이 빨리 안정적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국도 이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나라이다. 더군다나 교육은 중도 입국 학생을 '한국인'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는 정석의 길이기도 하다.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이들을 교육하는 데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