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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Jul 29. 2021

버즈를 사용하는 중입니다: 더 이상 목줄은 없습니다

최근에 스마트폰을 교체했다. 그동안은 간혹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나는 주로 이어폰을 단자에 꽂아 사용했다. 그런데, 새 폰에는 이어폰 단자가 없다. 스마트폰 몸체에 이어폰을 꽂을 수 있는 단자 자체가 없으니 어쩌랴. 나도 이제 버즈를 사용하게 되었다. 버즈의 장점은 무엇보다 자유로움일 것이다. 일정 거리 내에서는 폰과 떨어져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기술은 나에게 자유로움을 선사했지만,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아직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음악을 들으면서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일어설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웅크린다. 이어폰이 폰에서 분리될까 봐 불안해한다. 최신식의 버즈 프로를 사용하는 중이지만, 내 무의식에서는 여전히 이어폰이 스마트폰에 연결되어 있다.


며칠 전에 베개 하나를 버렸다. 메모리폼으로 된 베개인데, 땀으로 오염이 되었고, 씻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버렸다.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밤에 대문 앞에 내어 놓으면 그만이다. 혹시나 남편이 보고 못 버리게 할까 봐 걱정하면서, 조심스럽게 베개를 대문 밖에 내어 놓았다. 그렇게 베개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대문 밖에 두고 오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결혼하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심리적으로 나는 여전히, 욕실 슬리퍼를 버리고 남편에게 비난받고 어쩔줄 몰라하던 새댁인 것이다.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다. 물건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남편의 관점이 나의 무의식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분명 버려야 하는 물건을 버리고 있음에도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박사학위논문 지도를 받기 위해 지도교수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의 한 대목. 교수님께서는 나의 살아가는 인생관이랄까, 태도랄까 그런 것을 조금씩 고쳐 가라고 하셨다. 나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하시는 듯 했다. 내가 "어떤 책에 보니까 사람들이 끈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의외로 그 끈은 길다"라고 하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펄쩍 뛰시면서 그 아이디어는 적절하지 않다고 하시면서, 그런 끈 자체를 부정하시는 듯했다. ‘지배당하니까 지배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교수님께서 강의하신 사회사상사 강의는 "사람의 사고가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조금씩 태도를 바꾸면 몇 년 후에는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하셨다. 지도교수님과 그런 대화를 한 지 십 년도 넘었는데 나는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다.


이제 아이들도 모두 자랐고 남편도 퇴직했다. 누구도 나의 행동반경을 제한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일을 해도, 어떤 곳에 가도 괜찮다. 그런데, 나는 그 자유를 아직 잘 활용하지 못하겠다. 특히 내가 하는 거의 모든 일과 결정에 잔소리를 하고 형편없다고 지적하던 남편의 관점이 나를 여전히 사로잡고 있다.


이제 스스로 해방되어야겠다. 나는 이제 성능 좋은 버즈로 불편한 선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해야겠다. 내가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릴 때 남편이 잔소리를 하면, ‘당신이 무얼 안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면박을 줘야겠다. ‘내게 목줄을 매달려고 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강력하게 주장해야겠다. 결코 누군가가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겠다. 내게 더 이상 목줄은 없다고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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