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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Aug 28. 2022

Ep.1 Hello, Vietnam?

호찌민 믹스테이프

 제주도 생활을 마치고 상경한 지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꽤 바쁘게 살았고, 나름 취직도 했다.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한 때 내 반짝이던 꿈을 뭉개버렸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이 또한 내 운명인가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3년 만인가? 오랜만에 여권을 꺼내 들었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이사 올 당시 잡동사니들을 마구마구 욱여넣어놨던 우체국 6호 종이박스가 있었는데 여권이 설마 그 박스 안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여권이 보이지 않아 본가까지 다녀왔는데.

 그래도 재발급받지 않고 찾아서 다행이었다. 돈이 굳기도 했고.

 아, 여권을 왜 챙겼는지 설명이 없었다. 나는 여름휴가를 베트남으로 다녀올 생각이었다. 호찌민이라는 도시로 말이다. 해외여행이라는 단어는 말한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가슴 떨리게 하는 큰 재주가 있는 녀석인데, 이번 8월에는 내게 그 설렘을 허락해주었다.

 나는 여행을 계획하는 편이 아니라서 이번에도 정말 숙소만 잡고 대책 없이 가고자 했는데 이번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동행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틀은 잡고 가야만 했다. 왠지 출국을 하기 전까지 계속 걱정이 앞섰다. 아무래도 혼자 떠나는 여정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안전과 치안 걱정을 계속했었던 듯하다.


 한국에서 베트남 호찌민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린다. 물론 비행기로. 중국 청두(成都)에 다녀온 경험치가 있어서 5시간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가항공이라 그런지 좌석이 굉장히 좁아 꽤 고생을 했다. 심지어 앞에 앉은 아저씨 한 분이 의자를 뒤로 계속 젖히는 바람에 굉장히 불편하게 왔다. 허리랑 목이 너무 아팠지만,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굳이 여기서 내가 불평불만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 따로 컴플레인을 하진 않았다.

 2022년 8월 12일 오전 10시 30분, 나는 베트남 호찌민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보냈지만, 베트남 상공의 구름을 보면서 다가올 설렘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푸른 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지구는 언제 봐도 참 예쁘다. 지금에 와서 보니 이때부터 '호찌민 미니 테이프'이라는 소제목의 여정이 시작됐던 듯하다.

 호찌민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캐리어에 꼭꼭 숨겨놨던 도시락 USIM을 꺼내 들었다. 한국의 카카오 택시라 불리는 Grab이라는 어플을 활용하여 이동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 여행 일정은 순탄치 않았다. USIM을 갈아 끼웠지만 데이터가 제대로 안 터졌다는 것. 정말 다행히 포켓와이파이도 대여를 해온 터라 무리 없이 Grab을 이용할 수 있었으나, 일정 내내 USIM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건 참 아쉬웠다. 포켓와이파이는 비상시에 참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

 '알탕형'이라는 호찌민에서 거주하시는 유튜버분의 영상에서 알려준 것처럼 공항 입구를 나와 왼쪽으로 끝까지 캐리어를 끌고 갔다. 역시나 택시기사(?)들의 호객행위가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비나썬 택시에 탑승했다. 나처럼 베트남이 초행길인 분들에게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일정에 따라 준비한 금액이 있을 텐데 그중에 절반은 베트남 동으로 환전하고, 반은 달러로 준비하길 바란다. 물론, 달러로만 들고 와서 큰 무리는 없다. 그래도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정도의 택시비 정도는 베트남 동으로 들고 있으면 좋을 듯하다. 또한, 베트남에선 100달러를 가장 높은 가치로 쳐주기 때문에 100달러 단위로 환전을 해가면 어딜 가나 환영받을 것이다. 나는 호텔 로비에서 돈이 필요할 때마다 100달러씩 환전하여 사용했다. 아주 친절하게 현재 환율시세를 기준으로 환전해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호텔 직원들이 참 친절했구나 싶다.

 전날 저녁식사가 마지막이었던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호찌민에서 제일 맛있기로 소문난 쌀국수 가게에 방문하기로 했다.


 가게 이름은 '포퀸(pho quynn)'.


 한국인들이 호찌민에 방문하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라 한다. 그만큼 후기도 좋았고, 실제로 이곳에서 쌀국수를 먹어 본 결과, 정말 내가 살아보면서 먹었던 쌀국수 중 가장 맛있었다. 특히 국물이 아주 예술이었다. 한국에서도 워낙 쌀국수 가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나도 가끔 즐기곤 했었는데 확실히 쌀국수 본 고장에 와서 먹어보니 근본이 다르긴 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1번 쌀국수와 2번 쌀국수.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땐, 이미 꽤 많은 한국분들이 계셨다. 우리처럼 우정여행 온 사람들도 있었고, 가족여행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쌀국수 메뉴가 너무 많았는데 너무 맛있게 먹고 있었던 그들에게 어떤 메뉴를 주문했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결국 내 선택을 믿어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성공적이었지만, 사실 어떤 메뉴를 주문했어도 성공했을 것이다.

 

 쌀국수 두 그릇과 맥주 한 잔 그리고 콜라 한 잔의 가격은 20만 동. 한국 돈으로 1만 원 조금 넘는 가격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이 가격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는데 이것도 거의 2배 정도 오른 가격이라 한다. 호찌민에 방문하신 예정인 분들은 포퀸에서 쌀국수는 반드시 즐겨봐야 한다.

 베트남에서의 이동수단은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아서 일까? Grab을 부를 때도 오토바이를 선택할 수 있다. 아쉽게도 한 번도 이용해 보지 못했지만 다음에 베트남에 방문하게 된다면 오토바이 여행도 재밌을 것 같다.

 아무튼, 배도 채웠겠다 Grab을 다시 불러보기로 한다. 다음으로 가 볼 곳은 '핑크 성당'이라는 곳이다. 그리고 핑크 성당 앞엔 '콩 카페'라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고 해서 가보기로 결정했다. 식사 후에 커피 한 잔은 국룰이니까.

 Grab을 타고 10분 정도 달려온 곳, 핑크 성당. 본 명칭은 떤딘 성당이라 한다. 날이 좋아 그런지 유독 핑크빛이 눈에 띄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 보고 싶기도 했는데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하는 건지 아닌지 몰라서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이곳은 내부보다 외부가 포토스폿인 듯했다. 라이브 스트리밍 하는 사람들도 보였고, 성당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보였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예쁜 사진 한 장을 건지려면 길 건너 맞은편으로 가야 했는데 횡단보도가 있음에도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워낙 많았기 때문에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위험했다. 타이밍을 잘 맞춰 건너야 한다. 이것만 잘 이겨내면 아주 멋지고 근사한 사진을 얻을 수 있으니 참고 인내할 만하다.

 맞은편 콩 카페(Cong Caphe).


 총 3층으로 되어 있었던 카페였다. 외관은 허름해 보였지만 거부감을 느낄 정도는 절대 아니다. 빈티지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이방인으로서 객관적인 시선이다.

 

 다시 한번, 타이밍 좋게 건너 끼익 소리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선선한 느낌의 우드톤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길게 쭉 뻗은 카페의 모습. 제법 아기자기하다. 주문은 1층에서 해야 하고, 음료는 직접 가지러 가면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카페는 1층부터 3층까지 이용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3층 야외 테라스가 가장 좋아 보였는데, 좀 더 가까이에서 베트남을 느껴보고 싶다면 1층 창가 자리를 추천한다. 삼삼오오 어디론가 왔다 갔다 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까.

 콩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코코넛 커피라고 한다. 내 돈 내산 직접 먹어봤다. 코코넛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게 "안녕? 베트남은 처음이지? 여름휴가로 베트남에 오다니 탁월한 선택이야!"라고 하는 듯했다. 그 정도로 맛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추가로 '쓰어다 커피'라는 메뉴도 시켜봤는데 한국의 갓스커피(믹스커피)와 맛이 비슷했다. 바리스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커피를 즐겨마시는 편이 아니라서 사실 커피 맛을 평가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베트남에서의 시원한 추억을 남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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