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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쌤 Oct 13. 2023

말차라떼에 시나몬을?

감각이 예민한 나를 위한 스타벅스 여행.



우리 아파트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교체시기를 만났다.이번 주부터 우리 동 차례란다. 점심 먹고 쉬고 있는데 방송이 울렸다.

"아아. 주민 여러분께 안내말씀드립니다. 잠시 후 1시 반부터 엘리베이터 공사와 관련하여 소음이 많이 발생할 예정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어제보다 괜찮아진 컨디션 덕분에 잘 견딜 수 있겠지 하며 집안 정리를 하고 있는데 예상되던 '그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쿠우쿵

두두두두두두두두

쿠쿠우쿵

두두두두두두두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넘어갈 만한, 그러나 남들보다 좀 많이 예민하신 나는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할 만한 크기와 종류의 소리였다. 진동과 소음이 현관문을 넘어드니 건물이 무너질까 무서워졌다. 아무래도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얼른 집에서 나와 버렸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스타벅스가 있다. 느긋하게 천천히 가을길을 밟으며 드디어 도착! 계절 상관없이 자주 마시는 '말차라떼'를 주문하고 빈 자리에 앉았다. 대기가 없어 음료가 금방 준비되어 나왔다. 냅킨을 가지러 갔는데 갑자기 눈에 띈 갈색가루. 그렇다. 시나몬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계피!


시나몬을 무척 좋아한다. 츄러스, 짱구, 수정과 등 시나몬이 들어간 음식을 엄청 즐긴다. 자꾸 그런 것만 고른다고 동생이 알려줘서 알았다. 그 후로 동남아에 가게 되었는데 현지에서 주는 비누맛 나는 향신료들을 아주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고수 외에도 그보다 더 희한한 맛을 내는 풀들이 정말 많았고 그걸 입에 넣고 맛보는 게 너무 즐거웠다. 후각과 미각도 예민한데 강렬한 향과 맛을 즐기는 편인 듯하다.


계피 사랑은 오늘도 나를 자극했다. 사실 말차라떼는 말차라떼로 충분한 것을. 그러나 청각이 피곤해진 나는 조금 더 큰 자극으로 예민해진 몸을 달래주고 싶어 시나몬 가루를 연두색 음료 위에 팍팍 뿌렸다. 향을 맡아보니 거의 계피향만 가득한 느낌이다. 근데 만족스럽다. 음료가 든 트레이와 내 가방을 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도로가 보이는 쪽에 사람들이 있어서 뒤편에 앉았다. 골목 뷰는 움직임이 없어 시각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니까.


자, 이제 드디어 계피향 말차라떼를 먹어볼 시간! 컵을 입에 가까이 가져오자 입이 열린다. 녹색가루가 동동 뜬 뿌연 용액이 입 안으로 흘러 들어오기 직전! 코가 먼저 알싸한 향을 머금는다. 혀에 닿는 말차라떼는 부드럽고 매끄럽고 따끈하다. 꿀꺽 삼키고 입 안에 남은 향을 관찰한다. 따뜻한 우유와 섞인 말차 가루, 그 위에 사뿐이 걸어다니는 시나몬. 물감을 발에 찍은 소녀가 통통 뛰어다니는 모습이 연상된다.


후각과 미각을 더 자극해달라는 요구가 들리면 다시 한 모금. 입 안 가득 머금었던 음료의 잔향이 아득해져온다. 시끄러운 소리에 예민해진 감각이 점점 고요해진다. 이제야 내 안에 편안하게 머물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며 컵에 반쯤 남은 음료가 식도록 기다린다. 온도에 따라 향과 맛은 다른 멋을 내니까. 이제는 시나몬향이 가라앉고 우유와 녹차향이 상위에 있다. 조금 차가워진 음료의 느낌에 청량감이 담겨있다. 카페 안 음악과 수다떠는 소리보다 에어팟이 흘려넣어주는 피아노선율이 가깝게 느껴진다.


초가을 온도처럼 차갑게 만든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삼켜본다. 이 차가움과 부드러움, 담백함과 푸릇한 느낌은 뭘까? 지난 여름, 녹차밭 산을 돌고 나서 더위를 식히려 맛본 녹차맛 아이스크림 맛이네!


집을 나오길 잘했어.

시나몬을 팍팍 뿌리길 잘했어.


나른해지는 느낌이 필요할 때

내 안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을 때

시나몬 말차라떼 또 찾아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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