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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 Jul 16. 2021

백석의 <국수>는

  추석 달이 이울어 간다. 풀벌레 소리가 애잔하다. 그것들은 제 목숨을 현악기로 삼는다. 가느다란 두어 줄로 우주를 켠다. 밤새들도 꾹꾹 울어댄다. 콘트라베이스의 피치카토를 듣는 것 같다. 남은 계절을 예견하는 필사의 몸부림일까? 나는 이 하얀 밤의 앙상블을 마주 대한다. 더없이 고졸하다. 한동안 귀 기울이다가 행여 가을밤의 정취에 방해라도 될까 고양이처럼 사뿐히 걷는다. 책상 앞에 다가가 전기스탠드를 밝히고 조도를 맞춘다. 노트북을 연다. 찬찬히 들으며 정리하고 있는 ‘현대시 강의’에 집중한다. 갈매나무 시인 백석의 시 몇 편을 읊조려보다가 <국수>라는 시에 머문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는 枯淡하고 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 백석, <국수> 中에서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35년(24세) 8월 31일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시 작품에 정진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고유어 중심의 이야기 시를 쓴 사람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끝까지 우리말을 고수하였다. 백석의 시어는 주로 함경도 지방 중심의 토속어여서 처음 접할 때는 생경한 경우가 많다. 주석을 보아야 이해가 되는 부분 때문에 감상의 흐름이 끊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까다로운 부분은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세월이 오래다 보니 같은 말이어도 의미가 다른 것들이 수월찮다는 점이다. ‘국수’도 그렇다.


  국어사전에서는 국수를 “밀가루·메밀가루·감자 가루 따위를 반죽한 다음, 반죽을 손이나 기계 따위로 가늘고 길게 뽑아낸 식품. 또는 그것을 삶아 만든 음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메밀가루, 감자가루도 재료가 되기는 하지만 남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국수 하면 뜨끈한 국물의 밀가루 국수를 우선 떠올린다. 그래서 백석의 <국수>를 해설할 때도 남한식 국수를 바탕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인터넷에 올려놓은 수업을 들어 보았다. 

  소재, 주제, 갈래, 성격, 특징 등등을 구조화하여 수업을 전개하였다. 시의 골조를 낱낱이 발골해내서 학생에게 주입시키는 입시 전용 수업이라고나 할까? 컴퓨터 모니터 밖으로 교사의 침이 튀겨져 나올 것 같았다. 강의가 다 끝나도록 백석의 <국수>에 대한 농밀한 사유나 성찰은 나오지 않고 밀가루로 만든 국수의 여운만 감돌았다. 

  그 밖의  인터넷 게시물들에도 작품과 함께 잔치국수 이미지를 포스팅해 놓은 경우가 적잖게 눈에 띄었다. 백석의 ‘국수’를 잔치 국수 이미지로 해석하고 감상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이것은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 속 동백꽃을 남쪽 바닷가에 피는 붉은 동백꽃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 오류일 수도 있다. 백석의 ‘국수’는 밀가루 국수가 아니고 ‘메밀가루나 감자가루로 만든 냉면’이라고 전제하면 김유정의 ‘동백꽃’이 알싸한 향기가 나는 생강나무 노란 꽃인 것처럼 그 작품 속의 정황이 확 바뀐다. 멸치 육수에 말아서 만든 따뜻한 국수가 아니라 눈 내리는 날 잘 익은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쩡한 맛의 냉면을 먹는 풍경이 되는 것이다.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에 꿩고기 수육 두어 점을 고명으로 올리고 기호에 따라서는 얼얼한 고춧가루와 식초를 곁들여 먹었을 것이다. 시큼시큼한 식초 맛을 생각만 해도 군침이 고인다. 함께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던 정겨운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아랫목은 또 절절 끓어오를 듯이 따뜻하였으리라. 


  백석의 ‘국수’를 상상하다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휘리릭 빨려 들어가 본다. 농한기를 맞이한 마을 사람들이 산토끼나 꿩들을 사냥해 온 적이 있었다. 눈이 많이 쌓이면 길 잃은 것들을 주워오다시피 잡을 수 있었는데 바로 그런 날이었다. 꿩고기는 무를 넉넉히 삐져 넣고 맑은 탕으로, 토끼고기는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볶듯이 자작하게 끓였다. 어른들은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그 얼큰한 것들로 속을 채웠고 아이들도 쫄깃한 육 것들을 두어 점 뜨듯하게 맛볼 수 있었다. 백석의 마을에서 하듯 국수까지 만들어 먹지는 않았지만 바쁠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던 그런 날 모처럼 소담한 동네잔치가 열려 종일 설레었다.

  백석의 시에서도 그런 풍경이 있다.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그것은 심심하고 한가한 아이들이 꿩 사냥을 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가재미에서 꺼내온 것 중에는 김치뿐 아니라 동치미도 있었을 것이다. 꿩고기를 삶아 수육을 만들고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국수틀로 생면을 뽑았을 것이다.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그것은 봄, 여름, 가을을 거쳐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샇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었다. 

  겨울 하루 꿩 사냥을 시작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국수를 만들어 나누는 모습이 여실하다. 화자의 정서와 어울리는 토착어로  잔잔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움 속에 내 어린 날에 대한 그리움도 살짝 빗대어 본다.


  내가 백석에 관심을 가진 지는 오래지 않다. 2012년 즈음 군산의 N중학교에 근무하던 때였다. 중년의 한 미술 교사가 백석의 시집을 겨드랑이에 끼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타이트한 바지와 허리에 다트가 과하게 들어간 남방 차림을 하고 있었다. 앞부리가 뾰족하게 돌출된 구두로 잔뜩 멋을 부린 것 같았지만 썩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다만 시집 한 권을 지니고 쓱 스쳐가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남몰래 문학을 동경하고 꿈꾸기는 했지만 이차저차 잊고 살려했던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2017년 정읍 J여중에 근무했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출근하면서 중앙 현관을 통과했는데 A4 크기의 종이가 좌우 벽면에 붙어 있었다. 순간 ‘저게 뭐지?’하고 소심한 꼰대의 촉이 발동했다. ‘누군가가 뜬금없이 불만 사항이라도 표출했나?’ 싶어 신경이 덜컥 곤두섰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았다. 기우였다. 누군가가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출력해서 붙여 놓았던 것이다. 강조하는 폰트를 쓰지도 않았고 멋지게 보이려고 꾸미지도 않았다. 그냥 흰 종이에 알 글만 박혀 있었다. 그것은 건물 양 끝 출입구에도 붙어 있었고 2층에도 두어 군데 붙어 있었다. 며칠을 오며 가며 한 번씩 읽어 보다가 지나가던 선생님에게 누가 한 일인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아 그거요? 3학년 2반 D가 한 거래요.” 나는 그 학생이 궁금해졌다. 학교 밖 체험학습이 있던 날 출발하기 전에 잠깐 면담을 부탁하였다. D는 승마용인 것 같은 검정 바지에 투명한 반짝이가 빛나는 흰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왼쪽 머리는 거의 삭발이다시피 밀고 오른쪽 머리카락들은 얼굴로 쏟아져 내리듯 커트한 이른바 투 블록 헤어스타일이었다. 거기에 크고 둥근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어떻게 벽에 시를 붙여놓을 생각을 했지?” “수업 시간에 배웠는데요, 너무 좋았어요. 컴퓨터에 필사하다가 다른 사람과 함께 보고 느끼려고 그렇게 했어요.” D는 나름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의 속내를 공감했을까? 덕분에 나도 문학에 심취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풀벌레와 밤새들의 연주가 뜸해졌다. 자라면서는 알지 못했던 백석 시인을 옛 동료와 제자를 통해 발견했던 것을 기억하며 늦은 공부에 밤을 새워 본다. 같은 말이지만 다른 맛을 내는 밀가루 ‘국수’와 백석의 ‘국수’를 섣부르게나마 상상해보며 노트북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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