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아빠 Jul 01. 2024

야근한다던 남편은 배달 알바를 뛰고 있었다

*상담 사례를 각색했습니다.


육아 고민에 대해 상담해야 함을 잘 알지만 남편 이야기를 한번 하려고 합니다.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 보고 그러는 게 다인 아빠이자 가장이에요.


제가 전업주부로 아이를 보다 보니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았어요. 남편도 집에서 항상 누군가 아이를 돌보고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옆에 있는 것이 아이에게 큰 정서적인 도움이 될 거라면서 늘 고맙다는 말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영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가 애플, 캣 이러니까 너무 예쁘더라고요. 남편도 우리 아이 천재냐고 퇴근하고 나서 매번 시켜보고 즐거워했어요.


물론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이가 어린이집도 안 다니는데 영어 공부라도 시켜볼까 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던 차에 방문 영어 수업이라는 것을 보았어요. 아이가 어디 갈 필요도 없고 편할 것 같아서 가격을 알아보니 한 달에 40만 원 가까이하더라고요. 


지나가는 말로 남편에게 이런 걸 시켜보고 싶었는데 한 달에 40만 원이라 그래서 안 하련다 그랬더니 남편은 웃고 말았어요. 저도 그 뒤로 조금만 더 있으면 유치원 갈 텐데 뭘 이런 걸 시키나 싶어서 관심을 끄고 있었어요.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야근이 잦아졌어요. 평소 한 달에 한번 할까 말까 하는 직장이었는데 일주일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네 번도 있었어요. 일이 바빠졌다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체력 빠지지 말라고 칡즙이나 해주고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어느 날 남편이 야근을 하고 아이가 저녁에 하도 답답해해서 아파트 놀이터로 나왔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옆 아파트 분수나 보러 가자며 아이를 이끌었죠. 그런데 옆 아파트 후문 입구에서 남편을 딱 마주쳤어요. 손에는 치킨을 들고 있길래 여기서 뭐 하냐 그랬더니 혼자 어버버 하더니 조금 있다 이야기하자며 뛰어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운 건가 오해하고 화가 많이 났어요. 그날 밤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서 일부러 나오지 않았어요. 말도 하기 싫어서요.


다음날 출근한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00이 영어 수업 꼭 듣게 해주고 싶어서 시간 날 때마다 배달 아르바이트 해봤어. 생각보다 재미있고 밤에는 꽤 콜도 많아서 짭짤해. 혹시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야근한다고 했어 미안해'


그러면서 배달플랫폼에서 입금받은 내역들을 보내주더라고요.


연애할 때와 결혼 초기에 철없는 아이 같았던 남편이 아이가 생기고 부쩍 가장 노릇하느라 어른스러워진 건 깨달았는데 이 정도로 큰 무게를 느낄 줄은 몰랐어요. 괜히 미안한 마음에 한참을 울었어요.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괜히 저도 모르게 뾰족하게 말이 나가더라고요.


"아니 왜 그런 걸 하고 있어? 내가 영어수업 꼭 한다고 안 했잖아. 그 시간에 집에 와서 아이랑 시간을 더 보내야지"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는 남편을 보며 요즘 늦게 들어와서 코를 골며 잤던 모습, 유독 피곤해하던 모습이 생각나 괜히 또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우리 집 가장 든든한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 응원한다는 말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요?


 



먼저 서로를 생각하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남편분의 남모를 고생을 보고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못하고 응원을 못했다는 감정이 있으신 것 같아요.

본능일 수 있으나 대부분의 남자들의 마음속에는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본인이 지켜내야 할 사람들이 생기면 놀라울 정도로 크게 발현이 됩니다.

아마 남편분께서는 아이가 영어를 하는 모습도 너무 예쁜데 아내가 좋은 수업도 찾았고 그것을 망설이는 이유가 단지 돈이라는 것에 큰 자극을 받으신 것 같아요.

적지 않은 비용이 생활비에 추가 되는 만큼 어떻게든 그 비용을 만들기 위해 일단 손쉬운 배달 아르바이트를 선택하시고 아내분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하신 것 같아요.

모든 남편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남편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본인을 희생하는 것을 피하지 않습니다. 희생이라고 생각도 안 하셨을 거예요.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닌데 안 좋은 소리가 나가서 미안하고 남편분을 응원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굳이 제가 조언을 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단순합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감정을 그냥 말로 옮겨주세요.


"우리 00이 영어 공부 시켜주려고 우리 남편이 그렇게 몰래 고생했구나. 고마워"

"당신이 그렇게 고생하는 게 싫고 내가 괜한 소리 했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말이 그렇게 나갔어. 미안해"

"오빠가 있어서 00이랑 내가 편하게 사는 거 같아. 최고야"


갖은 선물이나 이벤트 등보다 남편분에게 더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아내분의 인정과 고마움의 표현일 것입니다. 

출근하는 길에 안아주기, 퇴근길 맞춰서 버스정류장에 아이랑 나가 있기 등 가족의 따뜻함을 가감 없이 표현해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남편분의 피로를 씻은 듯이 사라질 거예요.


세분의 가정에 늘 행복과 사랑이 넘치시길 바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키우지 말걸 그랬어요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