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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01. 2022

아가, 그해 여름을 기억하니?

그 꽃은 작고 무르지만 한없이 단단하단다


벅찬 여름




아가

그 해 여름을 기억하니?



우리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던 

행복했던 그 여름을 말이야



너희 둘의 손을 꼭 잡고 걷던 

그 여름의 날들을 

엄마는 아직도 기억한단다

그때 너희는 네 살, 일곱 살이었어



처음 만나는 세상 앞에서

두 눈을 반짝이던 너희를 보며

엄마 아빠는 더운 줄도 몰랐지

그토록 행복한 여름은 처음이었단다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꽃 두 송이


그 해 여름은 초록빛이었고

분홍빛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올랐지

엄마는 그 꽃들을 바라보느라

세상 구경은 뒷전이었어



엄마가 여름을 좋아하게 된 게

아마 그해 여름이었을 거야

그해 여름에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았거든



그 꽃은 작고 무르지만 한없이 단단해

천천히 피어나지만 오래토록 아름답지

그래서 그 꽃은 자기만의 향기로 

더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단다



엄마는 너희에게 여름을 선물받았어

엄마의 여름에는 

기뻐하는 마음들이 있단다

정말 아름다운 선물이야



고마워

엄마에게 

이 아름다운 여름을 선물해 줘서



우리 아가

피어라 피어라

그 해 여름처럼

벅찬 아름다움으로




- 미래의 어느 여름날의 육아 일기




분수를 처음 본 아이들, 얘들아 세상엔 신기한 것들이 정말 많단다. 엄마 아빠가 많이 보여 줄게. 조금씩 용기를 내면 더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단다.



"엄마, 할머니 집은 지하철 몇 개 타면 갈 수 있어?"


 박물관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아이스크림을 먹던 큰 아이가 대뜸 묻는다. 시골 할머니 집에 가고 싶은 눈치다. 


"그래, 여름 방학은 역시 할머니 집이지... 

 우리 차 타고 가볼까?"

"아니, 나 안 갈래..."


 아이는 익숙한 듯 다시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올해 일곱 살이 된 큰 아이는 차를 타지 못한다. 원래 감각이 예민한 아이이기도 하고, 아기 때 겪은 차에 대한 공포가 트라우마가 되면서 차를 무서워하게 된 것이다. 큰아이 돌 무렵, 산후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아기를 데리고 요양차 친정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날 탔던 택시가 화근이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가는 길이라 급하게 서두르기도 했고, 양쪽 차선에서 대형 트럭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안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런 울음은 처음 겪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끔찍한 공포에 휩싸인 비명 같은 것이었다. 당시 나는 다른 종류의 공포에 휩싸인 상태였기에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라고 안아서 달래려고 해봐도, 아이가 안기려고 하지를 않았다. 자기를 품어줄 만한 마음이 거기에 없다는 것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황무지가 된 마음속을 헤매고 있던 엄마는 그렇게 아이의 마음도 함께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벅찬 여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런 우리 옆에 남편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꼭 나무 같은 사람이어서, 나는 항상 그 나무 옆에 기대어 있고, 아기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남편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 내가 채워주지 못한 아기의 마음을 남편이 모두 채워주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마음은 가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번 여름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특별한 여름이었는데, 드디어 아이가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했는지 나는 안다. 집 문을 열고 나가는 연습, 계단 하나만 내려가보기, 내일은 계단 두 개, 세 개... 현관문 밖으로 나가 보기, 열 걸음만 더 걸어가 보기, 무서우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기... 그 작은 걸음들이 지하철까지 도착하는데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아이의 걸음걸음마다 남편의 사랑이 담겨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런 남편의 사랑을 목격하며 나도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아이를 자라게 했고 나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일렁이던 시간들을 거쳐, 벅찬 여름에 당도했다. 그 사이 둘째도 태어나 넷이 된 우리 가족이 난생처음 가족 여행이란 것을 하게 된 것이다. 이름하여 서울 시민의 서울 구경인데, 집에서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곳 중에 여행지를 정하고, 2박 3일 동안 여행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고민고민 끝에 여행지를 인사동으로 정하고, 배낭을 하나씩 메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흡사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정독 도서관에서 보낸 행복한 하루. 특별한 휴가지에 가지 않아도 이렇게 좋구나. 아이들 덕분에 발견하게 되는 작은 행복들.



 큰 아이는 여전히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자 아이의 얼굴은 성취감과 만족감으로 물들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남편과 나의 눈꼬리와 입꼬리는 새어 나오는 행복으로 홍수 사태. 땀인지 눈물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벅찬 여름 안에 있다. 그 와중에 폴짝폴짝 뛰어가는 둘째의 뒷모습은 왜 그렇게 귀여운지. 


 영영 잃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올해 여름의 순간들이 그러하다. 분홍빛 원피스를 입고 타박타박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 다시 달려와 내 손을 잡는 작은 손, 꼭 쥔 두 손 사이로 느껴지는 열기, 그래도 놓지 않는 작은 손... 그 벅찬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들을 여름 안에 새겨 넣는다. 여름은 계속 나를 찾아올 테니까.


 남편은 작은 꽃이 피기까지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의 걸음이 조금씩 단단해질 때까지 그저 함께 걸었다. 그 마음들이 꽃이 되어 올해 여름에 피어났다. 내년 여름에는 시골 할머니 댁에 예쁘게 피어 있으려나. 아차차... 서두르지 말아야지. 



피어라 피어라

그해 여름처럼

너만의 속도로 

너만의 향기로

아름답게 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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