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중반의 피카소가 선사하는, 예기치 못한 감동
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Picasso, 1881~1973)
- 70대 중반의 피카소가 선사하는, 예기치 못한 감동
죠슈아는 칸영화제 티켓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여행용 가방을 바닥에 눕혀 놓으면서 거실 벽에 비스듬하게 놓여 있는 피카소의 <The Pigeons-비둘기들,1957> 그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10월에 예정되어 있던 전시회가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갤러리의 대표이자 수석 큐레이터 제인이 신입 큐레이터 죠슈아에게 피카소 전시기획을 제안했다. 당황했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던 중에 새로 사귄 한국인 친구 태림이로부터 영화제 티켓을 받았고, 평소 애정하고 있었던 <The Pigeons-비둘기들,1957>이 그려졌던 칸에서 피카소의 자취를 따라가 볼 계획이다.
다음 날, 칸에 도착하자마자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영화제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뒤로 하고 소나무와 유칼리나무 사이로 들어가다 보니 언덕 위에 ‘라 칼리포르니’가 보이기 시작한다.
정원에서는 피카소가 평소 좋아했던 염소와 개들이 뛰어다니고,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의 거대한 창들을 통해 들어오는 빛 때문에 한쪽 눈을 찡그렸다 뜨는 찰나에 소나무와 유칼리나무의 짙은 향기가 흩날리면서 열린 창문 밖으로는 탁 트인 지중해 바다가 펼쳐진다.
이 곳은 죠슈아가 곁에 두고 봐 온 그림 그대로였다. 게다가 비슷한 작품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것을 보니, 피카소가 이 작업실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때마침 창문으로 날아든 비둘기들을 보면서 평생 사무치도록 그리워했던 고향의 말라가 광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고 그렸던 비둘기들을 보면서 향수에 젖어들었을 피카소의 미소를 떠올려 본다.
죠슈아가 그의 미소를 따라가자 이 곳 ‘라 칼리포르니’에서 완성했던 <The Pigeons-비둘기들,1957> 작품이 선명해지면서 얼마 전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이 쓴 책 《영혼의 미술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가장 지속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미술의 범주는 쾌활하고 즐겁고 예쁜 것들이다. (중략) 만일 세상이 좀 더 따뜻한 곳이라면 우리는 예쁜 예술작품에 이렇게까지 감동하지 않을 테고, 그런 작품이 그리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참고서적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문학동네 / 김원일, 《김원일의 피카소》, 이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