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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Apr 12. 2024

팬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설렘을 알면 인생은 성공적인 방향으로 바뀐다

#초등학교 3학년, 등촌동 SBS 공개홀 <인기가요> 녹화장


5월 15일 내 생일이었다. 아빠가 갖고 싶은 생일 선물을 물었고, <인기가요> 녹화장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동네에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일요일이면 색색의 풍선을 들고 왠지 좀 무서워 보이는 언니들이 모이던 곳이다.


당시 내가 좋아했던 가수를 보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난 그곳에서 PD라는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전까지 장래희망을 적을 때면 (공부를 오지게 못했음에도) 아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변호사'라고 적거나,

조금 더 자란 후에는 '방송 작가'라고 적었었다. 라디오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방송국을 구경한 이 날 후로 내 장래희망은 방송국 PD가 되었다. 무대 위에서 소리도 치며 가수들에게 말도 걸고 자연스럽게 진두지휘하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PD'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다.


사람들은 PD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에이 설마 싶었는데 PD가 직접 한 인터뷰에서 SKY 중 하나를 가야 한다고 했다. 


1등보다는 늘 꼴등에 가까웠던 내 머릿속에 대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이번엔 설렘과 불안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 모든 떨림을 이겨내는 단 하나의 방법은 미친 듯이 책상에 앉아 전 과목을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기본기가 아예 없었기에 모든 과목을 기초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오히려 꾸준히 공부해 온 친구들과 달리 공부에 질릴 틈이 없었다. 모든 게 다 새로운 정보였기 때문이다. 팬심을 기본기로 집요하게 책상에 붙어 있었다. 효과는 있었다. 


결국 SKY 중 하나인, K=고대에 수시로 합격했다. 계획대로 고대 방송국에도 들어갔다. 정작 진짜 지상파 PD가 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설렘을 잃지 않고 그 주변을 맴돌다 결국 초3 때 꿈대로 KBS 예능 PD가 되었다.



그리고 입사 후 10년이 훨씬 지나, 나에게 첫 설렘이자 동기를 주었던 젝키의 멤버와 처음으로 일터에서 만나 방송을 하게 됐다. 너무 자연스럽게 10년이 넘어서야 다가왔지만 뒤늦게 깨달아보니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외울 정도로 듣던 젝키의 노래를 편집하면서 넣어서 작가님한테, "피디님, 설마 젝키 노래 다 아시는 거예요?"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합본하며 화면을 보고 또다시 보면서 꿈을 이룬 사람이 됐다는 실감 나지 않는 사실을 되뇌어 본다.


현실로 툭 다가왔지만, 분명히 어린 시절 내가 상상하고 꿈꿨던 그림들이다.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있다. 


설렘을 가지고 살아가면 인생은 꽤 성공적인 방향으로 바뀐다.

팬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간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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