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GPT로 거울치료 하기
난 신문물(?)에 매번 늦은 편이다.
예전부터 컴퓨터 속도쯤 세월아 네월아 해도 작동만 된다면 큰 상관없었고,
휴대폰도 법인폰 의무 교체 기간이 없었다면 아마도 같은 기종을 고장 나기 전까지 썼을 둔한 사람이다.
챗GPT가 상용화된 걸 넘어서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며,
대학교에서도 사용을 막을 수 없어 오히려 학생들에게 ‘잘 사용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영 관심이 없었다.
진짜 궁금한 건 책으로 찾는 게 익숙했고 그것이 진짜 정보라는 나만의 신뢰도 있었다.
어찌 보면 그냥 고집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제 모두가 스마트폰을 쓰듯 챗 GPT를 쓰는 지금에서야 뒤늦게
무료 버전으로 시답잖은 질문들을 던져봤다.
처음으로 홍진경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평소 그녀의 작문 실력에 관심이 있던 터라, 그녀가 책 출간을 했었는지 문득 궁금했다.
그래서 홍진경이 책을 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해맑게 답했다.
[은지 님, 네 그럼요. 홍진경 님은 출간을 한 적이 있어요. 정확한 책 제목은 모르지만 블라블라]
????
내가 알기론 그녀는 책을 출간한 적이 없고, 검색으로도 그렇기에 다시 물었다.
질문: 책을 출간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러자 답했다.
[네, 맞아요. 책은 출간한 적이 없지만. 아마도 책 제목은 이걸로 추측되어요.] 하는 앞뒤가 안 맞는 답변이었다.
내가 책을 출간했니?라고 말하면 “네 그럼요 했죠~”라고 답하고
그런 적 없는 것 같은데? 하면 또 “네~그럼요 한 적은 없죠.”라고 실시간으로 정확한 정보 없이(=영혼 없이) 응답하는 사회 초년생 때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혹은 혼나본 경험치가 없어서
묻는 말에 내 생각보다는 상대의 의중을 맞추는 대답을 했던 그때.
스스로 가면성 우울증을 의심할 정도로 너무도 텅 빈 대답을 기계처럼 잘하던 때였다.
당연히 챗 GPT처럼 모든 질문에 긍정형으로 네 그럼요~ 하고 웃으며 답하니 평판은 매우 좋았다.
긍정적이며 No가 없는 진취적 직원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솔직한 내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긍정적이기보다는 현실적 혹은 부정적이고
단점을 누구보다 빨리 찾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것을 겉으로 꺼내놓을 사회적 지위와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그때의 나보다 더 약하고 여린 약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울분을 이고 퇴근하고,
해소하지 못한 채 다음 날 출근을 하는 괴로움을 버티는 청춘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생각이 매번 해맑게 답하는 챗GPT를 보며 들었다.
처음엔 아무리 무료버전이라지만 정보도 정확하지 않고,
그저 내 명령어에 맞장구만 치는 그 녀석의 태도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아닌 걸 알아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던 20대의 나와 현재 20대들을 떠올리니 그마저 짠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나 또한 그렇게 사회 초년생을 지나 메인 연출이 되었지만, 약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사람이 되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로 윗사람은 본인의 말이 맞다고 하는 직원은 유능한 직원이고, 반론을 제기하는 직원은 삐딱하고 다소 부적응인 직원으로 보는 편이다.
아무리 기탄없이 얘기하라고 해도 그때 진짜 기탄없이 얘기하다가는 썩 편치 않은 회사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실제로 통찰력 있기로 유명한 회사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런 그마저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직원에게 “아주 천재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걸 봤다.
다수에게 객관적으로 별로인 의견이었지만 가장 밝은 말투로 가장 빨리 “대단하십니다!”하고 동의하는 직원에게 공개적으로 베스트 직원이라는 긍정적 낙인을 찍어준 것이다. 그 후로 나머지 직원들의 선택은 안 봐도 뻔하다.
상사도 상사이기 이전에 인간인지라 본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에게 당연히 마음이 열리게 되어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괴물이 될까 두려워 최대한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
철저히 혼자 있으면서 진짜 그게 진심일까? 하는 생각 혹은 의심을 해보고, 그때의 해맑음이 진정한 동조였을지 되새겨 본다.
다행히 달리기라는 좋은 툴을 찾아서 내 몸을 혹사시키며 고민하면 대강은 생각이 정리된다.
이제라도 방법을 알아서 안도하는 마음이다.
줏대 없는 챗 GPT라고 감히 비난할 수가 없다.
과거의 내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