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_존 윌리엄스
<스토너>를 읽게 된 건
"지쳤을 때 도움이 되는 명작"이라는 추천 댓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지쳤을 때'라는 네 글자가 파워 F인 내 정서를 자극했고,
'명작'이라는 두 글자가 최근 명작을 가까이하지 못했던 나에게 독서에 대한 당위성을 제공해 주었다.
왠지모를 기대감에 가득 차 읽기 시작했고,
몰입감이 상당해서 오랜만에 출근길 이동 중에도 계속 읽게 되는 경험을 했다.
사실 책을 놓지 않았던 포인트는
'스토너도 곧 행복해지겠지?' 하는 기대감이었다.
지쳤을 때 힘이 되는 명작이라고 했으니, 극적인 반전을 위해 처음에는 풀리는 일이 없더라도
후에 한 방(?) 크게 풀리는 그런 에너지틱한 전개 말이다.
그러나 갈수록 스토너 못지않게 나도 지쳐가고 피폐해져 갔다.
책장을 덮기 전까지 아니 덮고 나서도 그랬다.
'대체 이게 왜 명작이지?'
의문을 가지고 평소 잘 보지 않던 스토너의 책 리뷰들도 찾아보았다.
결론은 실패인 삶은 없고 최선을 다하는 모든 삶이 전부 행복이며 성공이다 이런 얘기들이었다.
사실 이보다 처절할 만큼 반전없는 스토너의 지친 모습에서 각자의 모습이 반영되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스토너다"라는 제목의 리뷰들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대주제에는 100% 공감을 못하더라도,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었음에도 세밀한 감정묘사는 꽤나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남부 숙녀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유형이었다. 역사는 길지만 은근히 가난한 집안 출신인 그녀는 곤궁한 살림이 집안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어른들의 가르침은 그녀에게 앞으로 상황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지만, 나아진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호러스 보스트웍과 결혼할 때도 아예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습관적인 불만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 뒤로 세월이 흐르면서 불만과 앙심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그런 감정이 그녀의 삶에 워낙 깊고 넓게 배어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도 누그러뜨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늘고 높은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절망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 같았다.
위 문단은 스토너가 장모님을 처음 만났던 순간에 나온 문장이다.
'은근한 가난한 집안 출신'인 장모님이 품고 있던 습관적인 불만과 앙심, 그리고 그 감정에서 파생된 스토너를 바라보는 눈빛.
그 모든 배경과 속내를 파악한 스토너의 예리한 시선이 인상 깊었다.
그는 아내가 학생들을 맞으러 나오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그녀가 아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이렇게 거듭 사과하는 것이 아내의 부재를 설명해 주기보다 오히려 강조한다는 사실을 그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고, 자신의 침묵이 설명보다 덜 구차하기를 바랐다.
위는 스토너에게 어쩌면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아내에 대한 묘사다.
실제로 정신적으로 아팠던 것 같은 아내는 그 모든 불안을 온 몸으로 표출하는 인물이다.
스토너가 매일 똑같은 표정으로 하루를 사는 것과 달리 그녀의 하루는 매일이 다르다.
하루는 눈부시게 들떠있고, 그다음 날은 침대를 벗어나지 못할 만큼 지쳐있다.
시체처럼 지내다 불현듯 또 갑자기 많은 손님들을 초대하고 싶어 하고, 아기 똥기저귀 냄새도 맡기 싫다던 그녀가 갑자기 딸의 행복이 전부인 모성애로 무장한 인물로 변모한다. 그리고 딸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대출을 일으켜 스토너의 월급으로는 무리인 대저택도 구매한다. 모두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런 스토너의 아내의 삶과 매일 논문을 읽고 학생들의 과제를 검토하는 복사한듯한 스토너의 삶은 큰 대비를 보여준다.
스토너는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난 오후에 그녀의 집으로 왔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또 사랑을 나눴다. 아무리 놀아도 지치지 않는 아이들 같았다. 그렇게 봄날은 흘러갔고, 두 사람은 여름을 고대했다.
위 문장은 아내에게 지칠 대로 지친 스토너가 찰나 같은 행복을 찾게 되는 순간에 나온 대목이다. 그의 수업을 들었던 여학생과의 짧은 만남이 그것인데, '아무리 놀아도 지치지 않는 아이들' 같았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그 둘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흘러가는 봄날과 여름을 고대했다는 대목에서 이 둘의 행복이 결코 길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어 더 여운이 길게 남았다.
끝내 반전은 없었고,
힘들 때 읽으면 기운이 나는 책이라는 효능조차 나에게는 없었지만
반전이 없었기에 더 여운이 길었던,
어쩌면 명작은 그런 것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게 만들었던 책 스토너.
피폐함을 견뎌낼 마음의 여유가 아주 조금이라도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https://youtu.be/8GTfYAdTX2I?si=ctFZ4EKlZdZuVSo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