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닌 게 아닌 이유
<살림남>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박서진이라는 출연자와 2년 가까이 함께 하고 있다.
한 사람이 발전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보기 좋기 마련이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걸음마를 뗀 아기들
매번 틀리던 문제를 맞히고 활짝 웃는 학생들
고심 끝에 응시한 시험에 합격하는 직장인들
모두가 보기 좋은 모습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은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출연자들 중 하나인 박서진이라는 인물 또한 눈에 띄는 내적 성장으로 나에게 뭉클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인물이다.
특히 최근에 <사람 기획>에 관련된 책을 완성했는데, 이 책에도 큰 영감을 준 인물이다.
수년 전 박서진이라는 가수를 처음 봤을 때는, 나 또한 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을 똑바로 보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피하고,
내가 묻는 질문에는 단답으로만 대답할 뿐 그 어떤 화답도 부가설명도 없었다.
내심 '피디인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렇듯 누구라도 어떤 이유 없이도 누군가 싫어 할 수는 있는 법이니,
크게 미워하지는 말자고 조용히 다짐했다.
그렇게 수 년이 흘러,
<살림남>의 섭외를 수락하고 처음 집으로 미팅을 갔을 때는 <주접이 풍년>을 했던 피디님이라며 그래도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착하게 웃어주던 모습이 생생하다. 고마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매주 함께 촬영을 하며 한 프로그램에 꽤나 익숙해지는 시간이 길어졌다.
익숙한 제작진들과 환경. 반복되는 그런 것들이 때로는 고되겠지만 불안했던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잠하게 하는 데는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학교와 직장이 지긋지긋해도, 아예 정해진 루틴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것처럼
고정 정규프로그램 또한 연예인들에게는 같은 이치다.
소심하고 낯가리던 서진에게 어쩌면 나보다 더 따뜻한 표정으로 다가간 수많은 제작진들.
그런 제작진들을 위해 담금주 만드는데 취미가 생겼다며 손수 만들어준 인삼주 30병.
따로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더니 6개월 뒤에 먹고 힘내라며 세심함을 보여준 서진.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만들면서 전해주고픈 누군가를 떠올리는 건 분명 귀한일이다. 더군다나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마음의 여유가 없는게 당연한 서진에게는 더욱 그렇다.
엠씨인 은지원 씨도 매번 녹화 때마다,
"서진이 처음에 나 봤을 때 형이라고 하지도 못했는데, 진짜 많이 변했어."라고 말한다.
나 또한 녹화장에서 선배들한테 먼저 "식사하셨어요?"라고 묻는 서진을 보며 속으로 엄청 감탄한다.
대놓고 칭찬하면 민망하고 부끄러울까 싶어 꾹 참는다.
그러나 난 이게 엄청난 발전임을 안다.
서진이 부족하고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용기를 내 발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나 또한 꽤 소심해 정류장을 지나치는 기사님에게 "내릴게요!"라고 차마 말 못 하고 정류장을 수없이 지나쳤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것이 꽤 큰 용기임을 안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소리 없는 큰 응원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2년 전 <살림남> 처음 연출을 맡았을 때 엄청난 포부가 있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애정을 가진 출연자를 주인공으로 섭외해 함께하는 순간 온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같이 기뻐하게 됐다.
그래서 문득 이들과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가득 고였다.
분명 <살림남>은 나의 소유가 아니기에, 당연히 물러날 시기가 올 테지만
그때까지는 행복한 성장을 하길 바라며 내가 해줄 수 수 있는 것들을 기꺼이 해주려 한다.
나는 운 좋은 연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