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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je Dec 27. 2021

제주 미디어아트 "그대, 나의 뮤즈"의 4인의 거장들

클림트, 고흐, 드가, 마티스에 대하여



숙소에서 우연히 본 팸플릿에 끌려 "그대 나의 뮤즈"를 보고 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설적인 작가들 고흐, 마티스, 클림트, 드가 등 유명한 작가들의 명화를 미디어아트로 구현하여 생동감 넘치는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한 전시 었다.



전시가 상당히 인상적이라 전시의 주제인 클림트, 고흐, 드가, 마티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전시회를 가기 전에 알고 가면 좋을 것 같아 거장의 생애와 작품의 특징에 대해 포스팅해보았다.



<그대, 나의 뮤즈>


기간: 2021.01.27(수) ~ 2023.01.30(월)


관람요금: 성인(만 19세 ~ 64세): 15000원


청소년(만 13세 ~ 18세): 12000원


어린이(만 3세 ~ 12세): 10000원


장소: 제주신화월드 서머셋클럽하우스


예약링크: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463740

위치: 서머셋 제주신화월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신화역사로304번길 89


공식홈페이지

https://mymuse.modoo.at/



유튜브 소개 영상


https://youtu.be/9iYjsQyr0Dg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들 고흐, 클림트, 드가, 마티스의 유명 작품들이 살아 움직이는


영상으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전시된 그림들은 그림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어디선가 한 번은 본 적이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었다.


거장 4인의 작품 100여 점을 미디어 아트의 형태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익숙한 그림을 생동감 넘치는 형태로 구현하여 마치 그 명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입장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아트


커다란 무대와 같은 곳에 벽면에서 바닥으로 양옆 좌우 270도로 예술작품이 쏟아진다.



"WHY MUSE?"


1. 반 고흐가 되어라! 마티스가 되어라


당신은 화가의 뮤즈, 즉, '영감의 순간'으로 초대된다.


오직 그릴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으로!


들었던 소리, 눈에 들어왔던 풍경,


손 끝에 전달되었던 감촉은 마법처럼 재현된다.



2. 유쾌하고, 로맨틱한 상상력


당신의 움직임은 작품이 된다.


당신의 손짓에 고흐의 <해바라기>는 흔들리고,


당신의 몸은 클림트 <키스>의 황금빛 물결의 일부가 된다.


마티스의 <붉은 방>에서 익살스러운 고양이의 움직임에


놀랄 준비를 하자. 웃고, 행복하라! 이곳의 규칙이다.



3. 캔버스를 녹일 듯한 고흐의 붓, 마티스의 끝없는 도전


반 고흐의 뜨거운 붓놀림, 르누아르가 포착한 이상의 행복,


마티스의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꿈...


이들 화가들의 치열했던 삶 속에서 건져낸,


최고의 걸작들에 당신의 가슴은 벅차오를 것이다.


전시회를 보기 전에 알면 좋은 거장 4인의 일생과 작품에 대하여...


전시장에서 아는 척 하기 꿀팁!


첫 번째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


전시관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거장은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클림트는 황금의 화가라고 불린다. 그가 강렬한 황금빛을 자주 사용했기 때문.


그가 그린 그림의 황금빛과 금속성 느낌은 오스트리아의 금세공업자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젊은 클림트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빈 미술가 협회를 벗어나 동료들과 빈 분리파를 창설한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그들은 부자들이 향유하는 회화에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한 예술적으로는 천시받았던 수공예 기술을 접목하여 부자의 예술과 빈자의 예술을 일치시키려고 했다.


이후 클림트는 멤버들과의 갈등을 겪어 빈 분리파를 떠나게 된다. 그가 자주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을 그림에 그렸는데 그의 그림이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는 동료들의 지적 때문이었다.



성과 사랑, 에로티시즘


클림트의 작품에는 에로티시즘이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여성 모델에 집착했다. 클림트 작품들은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에 맞지 않았으며 그의 그림은 외설적이다는 평가를 받아 그가 죽은 후에도 50 년 동안이나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고, 그의 작품은 낭만, 사랑과 자유의 열망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

그의 대표 작품인 "키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복제품(레플리카)이 있는 그림이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두 번째 거장, 에드가 드가


두 번째로 소개된 거장은 바로 아름다운 무용수들의 모습을 그린 에드가 드가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에드가 드가는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가업을 잇기 위해 법률을 공부한 적도 있지만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당시의 화가들과는 상당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화가들은 성경이나 신화의 이야기를 주제로 역사화를 주로 그렸다. 반면 드가는 본 적도 없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무의미하다 생각했고 그는 일상생활에서 그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대상들을 화폭에 담았다. 또한 그는 미화되지 않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으려 노력했다.



아름다움의 이면, 그 고단함을 담다.


그는 주로 소외 계층인 세탁부, 재봉사 등 노동자를 주로 그렸는데 특히 그가 주목하던 것은 바로 무용수 었다. 당시 무용수들은 최하층민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서 춤을 추던 이들이다.


과거 가난한 가정의 어린 소녀들이 발레를 배웠고 부유한 고객이 이를 스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드가의 그림 속에서도 이러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주로 그림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을 스폰서로 묘사했다. 이들은 커튼의 뒤편에서, 무대의 한쪽에서 발레리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는 아름다워 보이기만 한 발레의 이면에 감추어진 삶의 고단함을 화폭에 담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뿐만 아니라 무용수들이 엄격한 발레수업을 받는 모습, 공연을 마치고 토슈즈를 벗고 고단한 발을 쉬게 하는 모습, 리허설을 하는 모습 등 화려한 무대 뒤의 이면의 모습 또한 그렸다.



스냅사진처럼 순간을 포착하는 화가


에드가 드가는 무용수가 달려 나가는 모습, 인사를 하는 모습 등 역동적인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정적인 화면을 소재로 삼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움직임을 화폭 안에 표현한다는 점이 그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림에 표현한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당시 대부분의 화가는 사진술의 보급을 반기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가는 오히려 자신의 작품 활동에 사진을 이용하였다. 화가의 화폭에는 정형화된 구도의 그림이 담기지만 순간을 담는 사진은 좀 더 자유로운 구도와 연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사진으로 구도를 포착한 뒤 화폭에 동적인 움직임을 담았다.






세 번째 거장, 빈센트 반 고흐


개혁교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는 항상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죽은 형의 "빈센트"라는 이름을 그대로 따왔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그를 보며 항상 이미 죽은 맏아들을 떠올렸다. 그에게는 다른 형제들도 있었지만 유달리 테오와 사이가 좋았다. 그들의 우애는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반 고흐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전업 화가로 생활하게 되는데, 그 전에는 서점의 점원, 학교의 보조교사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좀 더 미술에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동생 태오의 말에 그는 화가로의 길을 걷게 된다. 태오는 그가 예술에만 전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그를 금전적으로 지원했다.


동생의 애정 어린 응원과는 반대로 고흐의 부모는 그들의 장남이 그들 눈에 실패자와 동의어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에 무척 실망하였고 가족들과의 불화를 겪었다.



고흐 작품의 강렬한 색채


"색채는 그 자체로 무언가를 표현한다. 색채 없이 표현은 불가능하다. 반드시 색채를 사용해야 한다. 아름다운 것, 진정 아름다운 것은 옳은 것이기도 하다."


고흐는 색채에 강렬하게 끌렸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그 어떤 도구보다 화가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색채야 말로 타인과 작품의 내용을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믿었다. 그는 일본 판화를 보며 이를 오랫동안 연구하였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해석을 통해 표현하는 것, 그래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긍정적인 연관성을 확립하는 것이 고흐가 색채를 표현함으로써 이루고자 한 것이었다.



비극적인 생애


고흐는 화가 생활 10년 동안 900여 점의 회화와 1100여 점의 드로잉과 스케치를 남겼다. 그러나 생전에 팔린 작품은 "붉은 포도밭"이라는 풍경화 한 작품뿐이었다. 고흐는 그로 인해 좌절감과 절망감을 지속적으로 느꼈다. 고흐는 젊었을 때부터 우울증, 공황장애, 신경증, 정서 불안 등을 앓았다. 자신의 귀마저 잘라버릴 정도로 그의 정신세계는 불안정하였다. 그는 정신병으로 인한 발작으로 정신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고 결국 권총으로 자살을 택하며 그의 고단한 삶을 마무리하였다. 빈센트는 태오가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형의 죽음을 목격한 테오 역시 6개월 뒤 충격으로 인해 눈을 감는다.






네 번째 거장 앙리 마티스


마티스는 성공한 곡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마티스는 허약한 체질이었다. 그는 사업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공부를 하고 싶다 하였고 그의 부모는 그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파리로 건너가 법률을 전공한 마티스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법률 사무소에서 조수로 일을 하게 된다.


그가 화가가 된 계기는 상당히 특이한데, 그가 취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티스는 심한 맹장염을 앓게 되었다. 허약했던 그는 수술을 받고 꽤 오래 병상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티스의 어머니는 그가 심심할까 봐 그에게 미술도구를 사 주었다. 오랫동안 누워 있던 그는 어머니의 선물이 무척이나 반가웠고 재미 삼아 그림 그림에 푹 빠져들게 된다.


그는 복직을 한 후에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그는 법조인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화가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림의 기초도 모르는 22 살의 마티스는 천재들이 우글거리는 파리에 화가가 되기 위해 입성하게 된다.



야수파의 창시자 마티스


마티스는 왜 화가들이 원색을 사용하기를 꺼리는지, 눈에 보이는 색만 묘사하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졌다. 마티스는 강렬한 원색을 그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얼굴을 살색이 아닌 노란색을 칠하고 노란색, 녹색 강렬한 원색이 그의 그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작품에 공감하며 함께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야수파(큐비즘)의 탄생이었다.


전통적인 미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형태, 피사체, 구도를 모조리 무시하고 색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을 무시하고 화가의 감정에 따라 색을 재창조하였다. 한 비평가가 이들의 그림을 보고 "마치 야수처럼 포악하고 거칠다"라는 평을 내렸다. 조롱의 어조로 사용한 그 말이 마티스와 그의 친구들은 칭찬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야수파가 탄생하였다.



"내 마지막 작품이 이로서 끝났다...."


1948년 병색이 짙은 마티스는 샤펠 로자이르 드 뱅스 예배당 벽화 및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맡게 되었다. 그를 간병하던 사람들은 그의 나이와 병색으로 그 작업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렸으나 그는 이 것이 나의 최후의 작품이라 말하며 온 힘을 다하였다. 그리고 1952년 마침내 그는 그 작품을 완성하였고 그는 쓰러졌다. 그는 "내 마지막 작품이 이로서 끝났다..."라고 지인들에게 말하였다고 한다.


약 2 시간의 시간을 전시장에서 보내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일반적인 전시회와는 달리 미디어 아트는 전시회장에 있는 그 시간 동안은 작품 자체에 푹 빠져들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컴컴한 암막커튼을 나와 전시장을 벗어나면 마치 꿈에서 깬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제주도에 올 일이 있으면 한번 가볼 만한 곳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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