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쓴 엘리슨 벡델은 전작 아버지에 관한 회고록 <펀홈>으로 베스트셀러 그래픽노블 작가로 발돋움 한 뒤 차기작으로 어머니에 대한 회고록을 펴냈으며 최근작품으로는 운동에세이 <초인적 힘의 비밀>이 있어요. 여성 퀴어 서사로 연재를 시작한 작가인데 <펀홈>은 양성애자였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자살을 이해하려는 이야기였다면 이번 책은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냈어요.
<초인적 힘의 비밀>과 <펀홈>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책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벡델은 20대 중반부터 10년이 훌쩍 넘도록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자 정신분석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요.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 불안해하고 연인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 원인을 파헤치고 싶었던 거죠.
라캉, 프로이트도 언급되긴 하지만 주로 앨리스 밀러와 도널드 위니캇이라는 심리학자의 저서를 중심으로 정신분석을 다뤘고 문학은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와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작품을 깊게 들어가면서 자신의 상황에 맞게 풀어줍니다. 에이드리언 리치 시집과 버지니아 울프 소설은 도저히 몰입이 안되어 포기했는데 이 책을 도움삼아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뒷 표지 보니 "버지니아 울프 소설의 그래픽 노블 판"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거 보니 비슷하게 오리무중한 느낌이 드는 소설인가 봐요.
벡델의 어머니가 저처럼 아이가 셋이고 그 아이들 순서도 딸, 아들, 아들인게 비슷하더라구요. 성격은 좀 다른것 같은데 벡델 어머니는 문화예술에 소양이 남다르고 좀더 냉철한 사람인것 같아요. 아이들이 좀 크고 나서 교직생활을 하셨고 연극활동도 꾸준히 하다가 퇴직후에는 지역신문에 칼럼도 쓰는 열정적인 여성인데 큰 딸은 어머니를 어려워해요. 자신의 글과 그림, 예술적 소견을 어머니와 자주 통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어머니가 대화를 이끌어갑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살고 있을 때 쓴 회고록인거죠. 자기 주장이 확실한 어머니에 대해 쓰는 회고록이니 허락도 받아야하고 여러 어려움이 있겠죠.
저자는 어머니가 자신의 성 정체성에도 응원을 하지 않고 작가생활에도 부정적인것 같다고 느끼는데... 제가 보기엔... 벡델의 어머니는 솔직하고 참 강인해보여요. 참, 이 어머니는 저자가 대학에 들어간 직후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는데(딸은 커밍아웃을 하고) 남편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는... 힘든 시간을 겪거든요. 결국 저자는 마지막에 자신 안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파괴하는 과정을 겪어요. 그 과정을 겪고 나서도 제 안에 어머니가 살아남는다면 두 사람은 그저 두 인간인 채로 만나는게 아닐까 해요. 무거운 심리학 용어가 과정을 어렵게 만들긴 했지만 결말이 참 좋아요.
결국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고, 그런 환경으로 인한 마음의 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가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나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긴 인생서사를 이렇게 만나볼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