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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May 04. 2022

쓰지 않으니까 읽을 동력이 안생긴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글쓰기 특강> 풀어쓰기 2부

지난번에 올렸던 강의풀어쓰기 두번째부분입니다.

모든 내용은 고미숙의 <읽고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에 더 자세히 실려있네요. 이 내용은 강의 내용을 입말을 살려 풀어쓴 것입니다.




1. 글을 쓸려면 책을 읽어야 되요.


글을 안쓰고 책만 읽으면 하나도 머릿속에 안남아요. 그래서 허무주의에 빠져요. 읽으면 뭐하나, 읽으면 뭐해. 그럼 안읽으면 뭐합니까? 그 사이에 욕망을 채우는 일을 해요. 책을 읽는 건 그 시간에 욕망에서 좀 벗어나면서 내 안의 염증이 가라앉아요. 그런데 다 읽고 내용이 생각이 안나면, 이걸 해서 뭐하지?란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잊어버려요. 저도 그렇고요. 연암같은 천재도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 처음이 가물가물하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겪는 거에요. 어차피 잊어버리는데 책을 설렁설렁 읽게 되요. 독서가 삶에 융합이 안되면 이렇게 되거든요.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되요.



2. 쓰지 않으니까 읽는 것에 대해 동력이 안생겨요.


저는 바꿨어요. 쓰기 위해 읽어야 한다. 내가 세상에 대한 메세지가 있거나 질문이 있는 거 그거로 글을 쓰게 되면 질문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쓰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질문이 생기면 목차를 짜고 관련 책을 갖다 놓고 쓰기 시작합니다. 강의도 듣는 사람이 배우는 게 아니라 하는 사람이 배웁니다. 준비하면서 정리가 되버려요. 최고의 효율적인 배움은 누구를 가르치는 거에요.


3. 책에 대해 남기고 싶을때 필사도 하고 메모도 하지만 가장 좋은건 누구한테 얘기해주는 거에요.

누군가에게 말을 하잖아요? 그럼 몸으로 들어와요. 안에 있는 내용, 지식 컨텐츠를 다 안다? 이 시대엔 다 소용없어요. 검색하면 되잖아요! 이 책을 읽을 때 나의 집중, 거기서 얻은 지혜가 내 몸에 모든 세포에 파동을 전달하는 것, 감동을 느끼잖아요? 그러면 계속 책을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글을 써야지 밀도가 생겨요. 또 누구랑 함께 한다. 그게 중요한 거구요. 저는 그걸 체험해서 잘 아는 거에요. 집중하고 편집하는 능력이 내 몸에 새겨집니다. 점점 더 깊은 지혜를 탐구할 수 있어요. 근데 그건 꼭 글쓰기로 해야하나? 반문할 수도 있어요. 그래야 됩니다. 말과 글로 해야합니다.


4. 사유하는 것은 언어로 구조화되있어요.

 어떤 생각이 어떤 감정을 일으켜서 그것을 욕망하거나 추구하게 되있어요. 그 최초가 언어에요. 인간의 사고체계는 언어화되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음악으로는 구체적인 소통을 할 수 없잖아요. 미술도 그렇구요. 모든 동양의 지혜는 영성으로 이어지게 되있어요. 내가 내 감정을 컨트롤하고 욕망을 제어할 수 있으면 마음의 무한한 영역으로 가는 문이 열리고 우주로 이어져요. 우리가 다 연결되어 있구나. 이럴 때 느끼는 충만함. 서양에서는 주로 신이라고 얘기하고 동양은 인격신이 아니잖아요. 음양의 도라든가, 아트만의 브라만이라던가 이런식의 표현을 하는게 존재가 우주전체와 연결되는 길이 있다는 거죠. 연결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게 신의 마음입니다.

내가 그렇게 인식을 해야 그 길로 갑니다. 인식의 도구는 뭐냐 언어입니다. 그래서 언어가 사회적 소통의 핵심 아닙니까? 인스타에 시각적 자료가 넘치지만 결국은 카톡을 하고 메일을 하고 문자를 보내야 합니다.


5. 왜 읽고 써야 하는가?

가장 거룩한 존재가 되는 위한 길이기 때문이에요. 본성의 심연에 도달하려면 우리 인식의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화폐와 욕망으로 셋팅되는 인식구조, 이 어플이 나한테 깔려 있는데 그걸 바꿔야 합니다. 화폐와 욕망은 나를 끝없이 소비시킵니다. 끝없이 욕망하라고. 끝없이 갈망하라고. 애초에 어플을 그렇게 깔았는데 어떡해요? 그럼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리셋을 해야죠. 다른 어플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혜와 영성, 지성과 영성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겠다. 하면 책을 통해서 언어를 바꿔야 합니다.

인생의 생로병사를 끌어가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6. 특히 죽음에 대해서 탐구해야 해요.

 안그러면 너무 불안합니다. 피해서 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누구나 다 죽잖아요. 100세 인생이 축복인 건 건강한 채로 생로병사를 죽음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이에요. 이건 축복입니다. 예전엔 산업혁명 직후까지는 일하다가 죽었잖아요. 언제 죽음을 탐구합니까? 지금 우리는 뼈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굶지 않아요. 그럼 부모님이 못했던 걸 해야죠. 생사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탐구해나가야 해요. 그게 동양의 지혜에요. 생로병사는 돈으로도 지위로도 해결이 안되요. 이걸 해결하려면 읽어야 되요. 노자도 읽고 불경도 읽고 성경도 읽어야 되는데 읽을 동력이 없어요. 자꾸 들을려고만 해요. 글을 쓸려고 하면 동력이 생깁니다. 가장 거룩하고 통쾌한게 읽고 쓰기다. 몸이 순환이 되요. 지금 삶으로도 충분해, 이런 마음이 들고 불면증도 사라지고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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