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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Jul 02. 2022

미들마치에 사는 젊은 세 여성의 사랑과 결혼

조지 앨리어트 <미들마치> 1416쪽 (주영사, 2019) 이가형 옮김

안나카레니나에 버금가는 벽돌책이지만 여성작가이고 작품속에 여성을 어떻게 녹여냈는지, 지금까지 읽은 고전문학속 여성심리에 조금은 성이 안찼던지라 기대에 차서 읽었어요. 아르놀트 하우저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조지앨리엇 파트를 따로 빼서 다루고 있어서 유심히 읽었는데요, 디킨스는 엄청 까더니 조지앨리엇은 '영국 소설사에서 내면으로의 전환은 조지 엘리엇의 작품과 함께 완수된다' 칭찬을 많이 하네요.


조지앨리엇은 그 당시에도 파격적이었던 오픈 메리지를 공개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는데 젠더가 드러나지 않은 '조지 앨리엇'이란 가명으로 작품을 냈어요. 원래 이름은 메리 앤 에반스라네요. 두꺼워서 하루에 100여쪽씩 20여일 정도 걸려 읽었어요. 


조지 앨리어트 <미들마치> 1416쪽 (주영사, 2019) 이가형 옮김 | 영국 1871년

미들마치라는 지방소도시 한 마을 안 사람들의 삶을 그린 풍속소설이라고 하는데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있네요. 세상 돌아가는 정치나 유행, 과학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정세를 느끼고 적절히 받아들이는 그런 수도권 변두리같은 느낌. 그런곳에 처음엔 완전히 반대성격인 도로시아와 실리아 자매를 통해 결혼풍속을, 로저먼드와 프레드 남매를 통해서는 지방중산층 초년생들의 낮은 자존감들을 잘 나타나요. 이런 미들마치에 27세의 외지인 의사 리드게이트가 개업을 합니다. 


고대철학과 명확한 선을 긋고 의료과학의 시대로 나아간 19세기 초중반의 과도기(?) 영국을 리드게이트와 미들마치 명사들을 통해 잘 보여주네요. 제인오스틴 소설에서 보았던 필치도 보이구요 새커리처럼 강한 어조는 아니지만 비슷한 통찰력을 더 세련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사람한사람의 특성을 납작하게 판단하고 구별하려는 시도가 없이 사실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작가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 그런 구도. 새커리 소설읽으며 그런부분이 허기졌구나 깨달았네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p.262) 분명히 그의 안에는 두 개의 자아가 있었다. 그래서 그 두 개의 것은 서로 굽히며 상호의 간섭을 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두 개의 자아를 번갈아 보는 민첩한 눈이 있어서, 우리가 꼭대기에서 미친 듯이 악을 쓰며 넓은 평원을 볼 때에도 우리의 불변의 자아는 잠시 멈추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도로시아와 로저먼드, 메리라는 세 여성을 축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젊은 여성들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아요.  학자스타일 커소번에게 반해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가장 먼저 결혼한 열아홉 도로시아와 외부인에 대한 환상을 키웠던 로저먼드는 의사 리드게이트와 결혼하게 됩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채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이 두 여인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아요. 


도로시아, 로저먼드와 달리 하층계급에 속하는 마지막 주인공 메리. 로저먼드의 오빠인 프레드는 어릴때부터 메리와 친분을 쌓으며 연인사이로 발전합니다. 중산층 프레드와 메리의 결혼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그 과정들이 정말 풋풋하고 귀엽고 예쁩니다. 그 와중에 메리의 아버지 케일러브 가스씨는 왜 이렇게 멋진가요. 자신에게 돈을 꿔가서 갚지 못한 프레드를 용서하고, 그를 자신의 조수로까지 받아들여 장래와 적성을 찾게 도와줍니다.


(p.952) "아니, 자네한테는 나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네." 케일러브는 목소리에 깊은 감정을 담아 말했다. 
"젊은 사람은 언제나 나이 든 사람의 도움을 받아 전진할 권리가 있다고. 나만 해도 옛날에는 젊었지만, 별로 도움을 받지 않고 해나가야 했어. 하지만 순수하게 남의 처지를 헤아린 마음에서 나온 도움이라면 나도 기꺼이 받았을 거야."

우리의 이야기는 사실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소설 또한 뻔한 결말을 향해 가는데 왜 이렇게 두꺼워야 할까. 스토리를 따라가고 결말을 궁금해하는 것은 아주 작은 재미에 불과하겠구나, 가장 큰 재미는 과정과 해석에 있겠다는 생각을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며 합니다. 안나카레니나도 그렇고 미들마치도 그렇고 조금(아니 조금 많이) 감동받고 있네요. 


여러 계층의 수많은 인물들과 장소적 다양함과 관계에 얽힌 각자의 이야기들을 어찌 줄일 수 있을까. 도로시아의 희생과 열정, 로저먼드의 아름다움과 허영심, 메리의 자조감과 총명함을 설명하기 위해 온 마을 전체가 필요할텐데, 줄인다면 우리는 어디서 인간의 멍에를, 삶을 발견해야 될까요? 


도로시아, 로저먼드, 메리 이 세여성을 제 안에서 고루고루 발견하게 되도록 이끈것이 저자의 의도였을까요? 세 여성 모두 결혼에서 자유롭지 못한 당시의 환경을 바꿀 순 없지만 자신을 인정하고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있는 힘껏 스스로 결정하는 모습들이 참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도로시아가 결혼에 대한 멍에를 언급한 부분이 와닿아 옮겨봅니다.


(p.1344) “결혼은 다른 무엇과도 상당히 다른 것 같아요. 결혼으로 두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은 무언가 두렵다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설령 다른 사람을 요컨대 그 결혼한 상대보다도 더 사랑했다 하더라도, 그건 아무 쓸모도 없을 거예요." 도로시아는 불안한 나머지 가슴이 두근거려서 띄엄띄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은 그런 사랑의 베푸는 힘이나 받는 힘을 모두 마셔 버린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랑은 확실히 귀중한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결혼을 죽이고 맙니다 … 죽임을 당한 결혼은 살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뒤를 계속 따라다닙니다…그리고 다른 것은 모조리 사라져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남편은 … 만약 남편이 아내를사랑하고 신뢰했는데, 아내는 남편을 돕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남편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면.…."


이 완역본은 1990년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을 저작권자인 역자의 후손의 허락을 받아 재발행 한것이라해요. 번역이 조금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데 민음사에서 새 완역본이 곧 나온다고 해요. 최근번역본이 훨씬 더 좋지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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