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울 May 01. 2023

고장난 와이퍼를 고쳐줄 차용증에 관하여

영화 <멋진 하루> 리뷰


지난주 일요일에는 날씨가 오랜만에 여러모로 좋았다. 여러모로라 함은, 하늘은 맑고, 미세먼지도 없는데, 춥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휴일에는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돌아다니는 것이 나의 최고의 취미다. 조금 달리다보면 좋은 음악이 듣고 싶어지기 마련인데, 그럴 때 보통은 가볍고 산뜻한 재즈를 틀곤 한다. 보사노바를 들으며 이 오래되고 진한 도시 사이 사이 쏟아지는 햇살과 그림자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나는 내가 이 맛을 아는 한 절대 늙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멋진 하루>라는 영화가 있다. 3~4년 전쯤에 우연히 봤다. 내가 그때껏 본 영화 중 가장 슴슴한 영화였는데, 이상하게 여운이 진하고 길게 남았더랬다. 몇몇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보면서도, 대체 이 영화의 뭐가 그리 좋은걸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일요일에 자전거를 타던 중에도 문득 생각난 게 그 영화였다. 그럴만도 하다. 그 영화는 햇살 좋은 어느 날 하루동안 서울을 돌아다니는 영화니까. 자전거를 멈추고, 대여소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멋진 하루>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언뜻 슴슴한 듯한 이 영화가 실은 알알이 꽉 찬 영화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작하는, 이 영화의 리뷰이다.






- 줄거리 -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돈 350만 원.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떼인 그 돈을 받기 위해 1년 만에 그를 찾아나선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희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빌린 350만원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리러 나선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병운이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아침, 초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희수는 경마장에 들어선다. 두리번두리번, 경마장을 헤매는 희수. 마침내 병운을 발견한다. 병운과 눈을 마주치자 마자 내뱉는 희수의 첫마디.

“돈 갚아.”

희수는 서른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 애인도 없다. 직장도 없다. 통장도 바닥이다. 완전 노처녀 백조다. 불현듯 병운에게 빌려 준 350만 원이 생각났다. 그래서 결심한다. 꼭 그 돈을 받겠다고.

병운은 결혼을 했고, 두 달 만에 이혼했다.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하고 빚까지 졌다. 이젠 전세금까지 빼서 여행가방을 들고 다니는 떠돌이 신세다. 한때 기수가 꿈이었던 병운은 경마장에서 돈을 받겠다고 찾아온 희수를 만나게 된다.

병운은 희수에게 꾼 돈을 갚기 위해 아는 여자들에게 급전을 부탁한다. 여자관계가 화려한 병운의 ‘돌려 막기’에 기가 막히는 희수지만 병운을 차에 태우고 돈을 받으러, 아니 돈을 꾸러 다니기 시작한다. 한때 밝고 자상한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병운을 좋아했지만, 대책 없는 그를 이제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 1년 전엔 애인 사이, 오늘은 채권자와 채무자…… 길지 않은 겨울 하루, 해는 짧아지고 돈은 늘어간다. 다시 만난 그들에게 허락된 ‘불편한 하루’가 저물어 간다.

출처 : 네이버 영화




#1 희수와 병운의 대조


희수


희수는 병운의 말에 따르면 ‘조금 까칠한 것 빼고는 흠잡을 데 없는’, ‘뭐든지 잘 할 것 같은’ 사람이다.

짙은 스모키 화장과 날카로운 목소리, 바늘하나 들어갈 틈 없이 빡빡해보이는 인상과 말투.

‘정학 같은거 당한 적 없는’ 모범적인 사람.

‘관계자만 출입’이라는 표시 앞에, 발걸음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뒷걸음질을 치는 모습에서는

이 사람이 얼마나 규범적이고 매사에 선을 잘 지키는 사람인지 엿볼수 있다.


한편 결혼하려던 사람의 여건이 안 좋아졌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떠났을 만큼 현실적인 사람이며,

지하철이 다가온다는 방송에 구두를 신고도 빠르게 뛰어가 기어이 타려하는 여유 없는 도시인의 전형이다.

차에서 내릴 때마다 내비게이션을 빼서 숨겨둘만큼 방어적이고 조심스러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를 표현하는 단어들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 모범적, 타이트한 성격, 조급함, 방어적, 조심스러움, 차가움, 까칠함. 현실적.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병운의 말마따라 ‘남들보다 쎈척하지만 사실 약한’ 사람인 그녀가 현실에서 잘 적응하고 이겨내보려고 취하는 전략이고 갑옷이다.



병운


병운은 뺀질거리고, 헐렁하고, 대책없는 사람이다.

속없는 모습이 답답하기까지 하지만

특유의 다정함과 둥근 성격으로 별의별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이다.

그는 희수와는 달리 ‘어른’이나 ‘도시인’으로서의 타이트함 내지 성숙함이 없는 어린아이 같다.

그래서 그는 늘 오해받는다.

여자관계가 복잡해보이지만 사실은 정말 별다른 게 없었다.

경마장에 돈을 꼴아박는 사람 같지만 사실은 기수가 되고싶었던 자신의 꿈을 되새기며 힘든 상황에 용기를 얻으려고 다니는 것이었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할, 병운이 희수를 지하철에서 위로해주는 장면에서도 그는 또 오해를 받는다.


희수를 위로해주려고(병운이라는 인물에게 실제로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모르나, 최소한 영화적으로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봄이 맞겠다) 자기가 꾼 허황된 꿈 얘기를 떠벌이는데 그걸 들은 희수가 눈물을 흘린다. 그걸 보고 반대편에 앉아있는 어느 아줌마가 병운을 “여자 울리는 나쁜놈”으로 생각했는지, 매섭게 노려본다.


이 장면은 어쩌면, 따뜻하기 위해서 허황된(꿈 같은 얘길 하는) 그를, 차갑고 현실적인 사람들이 으레 오해하고 비난하곤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희수 역시도 그의 그런 허황됨을 그렇게 노려보며 짜증을 내곤 했으니까.


아무튼 쥐뿔도 없어보이지만 사실 뭐가 많다.

햄버거는 밥이 아니라 스낵이라고 꿍얼거려놓고선 막상 주문할 때는 자기만의 취향을 세세하게 말한다.

집도절도 없지만 스키도 강사를 할만큼 잘하고, 승마를 오래 했을만큼 부유했고, 할줄아는 것도 많다.


헐렁한 사람같지만 사실 희수가 하는 말들을 다 듣고 있다.

결혼 못했다는 희수의 말을 못 들은 척 해놓고는 여러 시간 지나서 뜬금없는 타이밍에 ‘근데 결혼은 왜 못한거야?“라고 묻는걸 보면 알 수 있다. 희수의 진지한 얘기에 신소리나 늘어놓지만, 그 신소리에는 사실 무겁게 가라앉은 희수의 감정을 다른 곳으로 일단 돌려놓고자 하는 의도가 있고, 그러면서도 적절한 때에 진심을 담은 용기와 위로를 뜬금없이 툭 건넨다.


은 구름이다. 늘상 뜬구름 같은 소리를 하고, 집도절도 없이 떠돌아다닌다. 항상 하늘(=이상)에 있는 점도, 가볍디 가벼운 모습도 구름 같다.

그 와중에도 ”쓸데없이 덩치가 커서 기수가 되지 못 했다“며, 본인이 더 가볍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사람이다.






#2 죄책감


희수는 병운과 헤어지고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를 만나 결혼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남자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희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남자를 버렸다.

그래서 희수는 그 결혼할 뻔했던 사람에게 죄책감이 있다.


희수의 죄책감이라는 테마는 어찌보면 뜬금없이 나타난다.

바로 전까지 햄버거 집에서 병운에게 쌀쌀맞게 굴던 희수는 화장실에 간다.

손을 씻으려고 하는데 물이 나오지 않는다. 

'손을 씻는다'라는 행위는 속죄라는 테마를 다루는 가장 오래된 표상이다. 

손을 씻지 못하게 되자 갑자기 오랜 죄책감이 불쑥 고개를 든다.


거울 앞에 선 그녀에게, 어느 칸에서인인지 보이지 않는 어떤 여자가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네가 싫어지거나 뭐 그런건 아니야. 그냥 이런 관계가 나한텐 좀 버거운 것 같아서“

영화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누군가가 통화하는 말인지, 아니면 희수가 기억 속에서 떠올리는 말인지, 모호하게 표현한다.  


희수가 듣는 것은 과연 실재하는 누군가의 소리일까?아니면 자신이 전 연인(들)에게 했던 말을 거울 앞에서 떠올리는 것일까.


희수의 죄책감이란 감정은 전 연인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 병운을 떠난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희수는 병운에게도 미안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헤어진 후에 병운이 어려워졌을 때, (희수는 부인했지만) 병운이 기억하는대로 ‘미안해서’ 돈을 빌려줬었다.


그래서 바이커의 아내가 희수에게 던진, ‘물병자리, 상황따라 사람 쉽게 보고 그러지 않나?’라는 말은

그녀의 죄책감을 정통으로 찌른다.





#3 변화


희수는 병운과 보내는 하루동안 조금씩 변해간다.

신경질적이고 차갑던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가며 나중에는 피식 웃기도 하고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소소한 변화들이 영화 곳곳에 숨어있다.

차에서 내릴 때마다 내비게이션을 빼서 숨겨두곤 했는데, 나중에는 내비게이션을 그대로 두고 내린다   

한 사장이 권한 담배를 초반에는 거절했었는데, 나중에 바이커가 담배를 내밀 때는 받아 피운다            

쓰디쓴 카카오 99% 초콜릿을 먹었는데, 나중에는 병운이 뽑아준 달달한 커피를 마신다            

병운이 햄버거를 나눠먹자고 했다가 거절당한 때 ‘여전하네, 나눠먹기 싫어하는 건’이라는 말을 한다. 그랬던 희수가 나중에는 병운이 마시던 커피를 나눠먹는다.            







#4 어른 희수와 어린 희수


병운과 희수는 중간에 소연이라는 학생(병운의 친구의 딸로, 삼촌과 조카 같은 사이이다)을 데리러 학교에 간다.


그곳에서 나누는 대화다

- 병운 : 소연이 얘, 너랑 비슷한 구석이 있어. 애는 좀 똘똘한데 어우 성격이 아흐.
- 희수 : (발끈하며) 난 정학같은거 당한적 없거든!
- 병운 : 야, 다 나름의 아픔이 있는거야. 걔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응? 너도 그렇고..

(이후 장소가 바뀌는 동안에도 병운이 계속 쫑알거리지만 희수는 아무 말도 안 한다. 희수는 아마 병운의 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 희수 : .....나 결혼 못했어
- 병운 : 응? 뭐라고?



병운이 무심코 또는 일부러 던진 ‘너도 아픔이 있다’는 메시지에 희수는 처음으로 자기 얘기를 꺼낸다.

‘나 결혼 못했어’

이 시점부터 희수의 내면에 있는 ‘어린 희수’가, 소연이라는 캐릭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소연은 말하자면 ‘어린 희수’이다

어른 희수는 야무지고 똑똑하고 뭐든지 잘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최근 큰 실패를 겪는다. 결혼도 실패했고, 직업도 없어졌다.

어린 희수인 소연이도 똘똘한 아이지만, 정학을 당했다.


소연이가 학교를 안 나가서 정학을 당했듯이, 희수는 직업을 잃었다. 둘다 해야할 것을 못했다.

타이트한 성격의 희수, 어른이어야 하는 희수는 그것을 괴로워한다.

어린 소연이는 껌을 떼면 된다. 부럽다.

희수는 옆에서 소연이를 도와 같이 껌을 뗀다.

어쩌면 소연이를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도 그렇게하고 용서받고싶어서가 아닐까.




세 사람은 학교를 나와 버스를 타고 간다.


병운은 희수에게 ‘너 나 밉지? 저기로 꺼져버릴게’라는 식의 주접을 떨면서 저 멀찍이 희수와 마주보는 자리로 옮긴다. 까불거리는 병운을 마주본 희수와 소연은 대화를 나눈다. 그 때의 대화는 사실 희수의 내면의 대화이다.



소연 : 미안해요 나 땜에 이렇게 된거 같아서
희수 : 너땜에 아니야. 생각해보면 나 때문이야.
소연 : 왜요?
희수 : 사람을 잘못 만나서
소연 : 하긴 저렇게 어리광 많은 남자 곤란하죠. 그래도 난 병운 삼촌 괜찮은거같아


어른 희수가 어린 희수에게 건넨다




#5 지하철에서


발을 다친 병운은 앉아있고, 비를 맞은 후로 내내 침울해보이는 희수는 창에 기대어 서있다. 지하구간을 지나는 전철의 창 밖은 어둡다.


침울한 희수를 힐끗힐끗 살피던 병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희수 옆으로 가 서있는다.

정확히 그 순간 따뜻한 햇볕이 창 밖에서 쏟아진다. 전철이 지하구간을 지나 지상구간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고선 병운은 난데없는 엉뚱한 소리를 해댄다.


희수는 병운의 말을 듣다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는다



"내가 좀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거든. 근데 꿈에 저 사람이 나왔어. 아니 한국말을 하더라구. ‘너 괜찮어? 너 뭐 많이 힘들지?’ 나한테 막 그러는 거야. 그 말에 나 막 가슴이 벅차가지구 대답을 했어. ‘당신이 있어서 난 괜찮아’ 그리곤 정말 한동안은 마음이 괜찮은거야. 정말 신기...... 아휴 희수야 왜그래?"


병운의 허튼소리는 그냥 허튼소리가 아니다.

꿈 얘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너 괜찮냐?”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다.

병운이 딱 그 말을 하는 순간만큼은 명확히 희수를 보면서 말한다.

(정확히 그 문장을 제외한 나머지 말들은 카메라가 병운을 잡지 않거나, 잡았더라도 자기 얘기에 심취해 다른 곳을 보며 얘기한다)

희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병운이 희수에게 꿈 얘기를 빌려서 “괜찮냐?”는 위로를 전달하는 장면인 것이다.

(물론 나는 사실 병운은 정말 꿈 얘기나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믿는다)

병운의 뜬구름 같은 소리, 꿈 같은 허튼 소리는, 사실은 타인의 침울하고 어두운 마음에 드리우는 햇볕이며, 젖은 마음을 말리는 온기이다.


그런 그를, 여느 세상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맞은편 아주머니는 오해하고 매섭게 노려본다.




#6 와이퍼


희수의 차 와이퍼가 고장나 있다. 와이퍼는 비가 올 때 차 유리의 빗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희수도 마음에 비가 내리고 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그 눈물을 닦아줄 와이퍼가 고장 나 있다.

그런 그녀에게 병운이 나타나 와이퍼를 고쳐준다. 그가 고쳐준 것은 자동차 와이퍼이지만, 사실은 희수의 와이퍼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와이퍼 수리에 대한 2시간짜리 이야기이다.





#7 차용증


희수가 병운에게 빌려준 350만원은 최근에 차와 핸드폰을 새로 바꾼 그녀의 형편을 생각하면 사실 안 받아도 그만인 돈일 수도 있다.


그런 그녀가 병운을 찾아가 돈을 갚으라고 한 것은

아마 의식적으로는 정말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였겠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이 세상 속에서 잘 이겨내보려고, 여린 그녀는 시종일관 냉정하고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이 먹히지 않아 좌절하고, 그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때에 병운을 만나서 보낸 멋진 하루는 희수에게는

다시 온기를 채워넣고,

99%로 꽉 차 올라있던 쓴맛을 치워버린 후 달달함으로 채우고,

눈물을 닦아줄 와이퍼를 고치는 하루인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희수는 병운의 동창에게 다시 돈을 돌려준다.

그러고 그 날 하루의 기름값과 주차비 등까지 합쳐서, 병운에게 34만1백원의 빚이 남았으니 다음에 갚으라고 한다.

병운은 노트를 꺼내 그 금액으로 다시 차용증을 써준다.

희수는 그 차용증을 서랍 속이나 책장이 아닌, 매일 보는 냉장고 문에 붙여둔다.


이것은 차용증이 아니다. 언젠가 또 무너졌을 때 내 눈물을 닦아주고 일으켜줄, 희망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하루의 끝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둘은 재회하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병운은 당장 그날 밤 잘 곳도 없고, 희수는 다음 날 아침부터 다시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소화하는 하루하루를 마저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녀가 또 삶과의 투쟁에서 지치고 무너질 때, 그녀에게는 병운을 다시 찾아갈 34만1백원의 차용증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언젠가 와이퍼(위로)가 고장났을 때 고쳐줄 차용증(희망)이 필요하다.

병운은 그런 사람이고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8 그 외


희수가 좋아한다던 아스트루드 질베르토는 Girl from ipanema를 부른 브라질 가수이다.

병운이 그 가수의 이름을 떠듬떠듬 기억해내려하기 직전에 그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