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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Dec 29. 2021

우리 애는 그런 애 아니에요

연극 '4분 12초'



우리 애는 그런 애 아니에요 



‘우리 애는 공부는 안 하는 데, 머리는 좋거든요.’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얼마나 착한데.’ 

부모가 보는 자식은 늘 순수하고 착하다. 부모 이야기만 들으면 세상에 나쁜 애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어머니. 잭은 그런 아이예요. 못되고 나쁘다고요.’ 그러나 다이와 데이빗은 아들이 그런 애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부정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부정한다.


열일곱 살 잭은 명문대 법학과 입학시험을 앞둔 중요한 순간에 어떤 사건에 휘말린다. 잭의 셔츠에 묻은 핏자국을 본 다이는 이게 무슨 피냐고 데이빗에게 물어본다. 데이빗은 ‘별거 아니야. 그냥 시비가 걸려서 코피 좀 났을 뿐이야’라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넘기려 한다.


그러나 다이는 꼬치꼬치 이 일의 진상을 알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하자 데이빗은 실상을 말한다. 알고 보니 잭의 여자친구 카이와 헤어지면서 카이의 오빠에게 구타를 당한 것이다. 그 와중에 카이의 아빠는 잭을 더 때리라고 소리를 치고 잭은 그 혼란스러운 상황을 겨우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다이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졌다. ‘아니, 열 일곱 살 짜리 애를, 그것도 착하디착한 잭을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때려? 카이, 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다 걔가 문제일 줄 알았다고.’ 데이빗은 다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우리 아들 잭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이 사건을 묻으려고 했다.


그러나 다이는 다친 건 잭인데 계속해서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데이빗이 수상해 사건에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더 있으리라 생각했다. ‘잠깐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무슨 일이 더 있는 거지?’ 



사실은 잭이 카이의 동영상을 찍어 유포했다는 것이다. 동영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범죄이며 동영상 속 잭은 자신이 알고 있던 순수한 잭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이는 믿을 수 없었다. 자기 아들 잭이 그런 짓을 하다니. 자신이 알고 있는 잭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다. 아직 열일곱 살이고 그런 범죄를 도대체 어떻게 알고 저지른 것이며, 유포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데이빗은 동영상 유포는 절대로 잭이 아니라며 큰소리를 친다. 그렇다면 그 동영상은 도대체 누가 유포한 것일까?


다이는 동영상 유포한 유력한 범인 잭 친구 닉을 만난다. 다이는 닉에게 사실대로 말하라며 카이의 동영상을 유포한 것이 너라고 카이에게 말하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닉은 자신은 절대로 그런 동영상을 보지도, 유포하지도 않았고 만약 범인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잭이라고 맞받아친다. 

‘아줌마, 잭은 그럴 애라고요 카이의 나체사진을 보낼 때도 그런 사진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닉과 이야기를 하면서 다이는 점점 자기 아들이 범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데이빗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데이빗의 행동이 수상하다. ‘여보, 혹시 예전에 찍은 내 나체사진 친구들한테 보여준 적 있어?’


데이빗은 그런 짓을 왜 하냐며 자신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러나 다이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다이는 카이를 만나 잭을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잭이 시험만 치게 해줘. 그러면 딱 20분 동안 너 원하는 대로 해, 다만 이성적인 범위 내에서,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카이는 그 말을 듣고 울부짖는다. ‘아줌마. 내 4분짜리 동영상이 퍼진 것에 대한 대가가 딱 20분이면 해결된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다이는 자신이 잭의 범죄를 덮기 위해 했던 행동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 거리를 맴돈다. 



누구나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다. 연극을 보고 난 뒤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연극 속 유포된 카이 영상 길이였다. 

디지털 성범죄는 카메라 등의 매체를 이용하여 상대의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하여 유포·유포 협박·저장·전시하거나, 사이버 공간·미디어·SNS 등에서 자행하는 성적 괴롭힘을 의미한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용하면서 범죄는 더욱 다양하고 우리 삶에 가깝게 다가왔다.


디지털 성범죄는 어디서든 누구나 범죄의 표적이 된다. 그러나 범죄자는 그 일이 범죄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다. 장난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만약 범죄에 걸려도 처벌의 강도도 미미하니 범죄는 더 악질적으로 변한다. 

연극은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 가족 입장에서 진행된다. 그래서 연극을 볼수록 카이의 답답함과 울분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가슴이 답답해져 다이와 데이빗에게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잭은 그런 애라고요! 범죄자예요!” 그러나 그 외침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잭 본인에게도 말이다.


결말은 씁쓸하다. 화가 난다.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카이의 동영상은 여전히 인터넷에 떠돌 것이고, 잭은 자신이 범죄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법학과에 다니며 희희낙락 웃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것이 죄이고. 법을 어긴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상처는 오로지 피해자의 몫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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