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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Aug 20. 2023

결혼 후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서



우선, 시댁과 절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간 버려두었던 '나'를 찾기 위해 옷을 입을 때 속옷부터 챙겨 입듯 주섬주섬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들만을 위해 존재했던 '나'에서 본래의 '나'를 찾아보기로 했다.








결혼 전에 나는 원래 책을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늘 책을 손에 들고 집안 어디서건 앉아서 책을 보셨다.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때마다 책에서 찾는 것이 버릇이어서일까, 이제야 나 자신을 위한 책을 볼 짬이 생겼다.

남편에게 쏟던 노력을 멈추고, 아이들이 6살, 4살이 된 지금에서야.

결혼하고 나서는 육아서만 보아왔던지라 나 자신을 위한 책을 고르는 것, 그 행위 자체에서도 약간의 희열이 느껴질 정도였다.




근 몇 달간은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처럼, 하루종일 책을 손에서 놓질 못했다.

원래도 TV를 잘 보지 않지만 아예 켜지 않게 되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려놓으며 음식준비를 해놓고, 틈이 나는 대로 책벌레가 된 듯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둘째 아이는 자기 방에서 책을 들고 와, 엄마옆에서 자기도 책을 읽겠다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화책을 읽어나가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기특하게 느껴지던지



그러다 느꼈다.

'아, 이게 바로 내가 자라던 환경인데...'



결혼 전, 친정의 분위기는 그 어떤 것도 강요하는 것이 없었다. 부모님이 책을 읽는다고 나에게 책을 읽으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책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이 그랬다.

공부도, 대학도, 취직도, 결혼도 권유조차 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나에게 기준을 정해주지 않았다.

나의 인생이기에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에서 자라왔었다.



그러던 내가 결혼하자마자 인생이 통째로 갈아치워 지듯 남편도, 시댁도 나에게 그들의 '선한 의도'라는 프레임을 씌워, '선한 강요'를 했었고, 부당하다고 느꼈던 순간들도 아이를 낳았으니 참을 만큼 찾아보겠다고 넘겨왔던 시간을 지나고 보니, 어느새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책을 읽고, 생각이 조금씩 정리될 때마다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읽고 싶은 책을 찾고 읽고 글을 쓰고를 몇 달째 반복하고 있다.



그간의 나는 책을 읽을 때면 채워지는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비워내는 느낌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비워지는 느낌이랄까, 오히려 비움을 하다 보니 채워졌던 것이 바르게 정렬되는 기분이 든다.



그러다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일어날 일들이었다고 말이다.



그동안 나의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은 '~하지 않았더라면'이었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혼전임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감당하지 못할 스트레스를 받으니, 자꾸만 현실부정만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종착점은 반드시 '이혼'이었다.

이혼만 하면 스트레스의 근원이 사라지게 되니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할 만큼 했으니 후회는 남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와의 삶이, 나의 화만 줄어들 수 있다면 완벽하다고 남편이 생각할 만큼, 나는 이 가정에 할 만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다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라고 생각이 들자 과거의 후회들이 나를 발전시키는데 쓰이는 초석처럼 느껴졌다.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 단단해질 수 있는 것처럼, 나만 불행하다 느꼈을 때 이 생각은 나를 살리게 되었다.




억울하고 분했을 때, 나만 겪는 것 같은 부당함에 울부짖고 그 끓어오르는 분노로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때, 이 것을 단순히 '고난과 역경'으로 치부해 버리니 주저앉고 싶었던 자신이 우스울 정도로 다시 일어서고 싶어졌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어도, 아이를 낳지 않았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어도 내 인생에 이 역경이 올 수밖에 없었다면..?

그러면 원망의 대상이 지금의 남편과 시댁이 아닌 새로운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사람이 아닌 어떤 일로서 역경이 왔었을까.



내 인생에 반드시 오고야 마는 일이었다면, 그것을 기점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기회라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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