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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쏠이 Apr 23. 2024

야망에 관하여(feat. 디자이너 되기)

배쏠이의 우당탕 디자이너 되기

느슨하게 서로를 압박하며 글을 쓰고 있는 “느슨한 글쓰기 모임”에서 “야망”을 주요 테마로 잡고 글을 써나가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프로젝트 초반, 나의 “야망”에 관해 써보기로 했을 때 쓴 글입니다.



“Girls be ambitious”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뭔가 뜨거운 게 용솟음쳐야 할 것만 같지만, 어쩐지 공허했다. 어떤 에너지가 솟구쳐 오르기보다는 짜증이 몰려오기도 했다. “굳이 야망 있게, 뭔가를 이뤄야 하는 것처럼 살아야 하나? 그냥 좀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 돼? 이 세상은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둘 줄을 몰라.”하고 말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든데, 평범함의 위대함은 무시한 채 야망을 가지라니, 얼탱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Girls be ambitious’는 ‘Boys be ambitious’의 주어를 바꾼 문장으로, 그동안 소년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진 ‘야망’을 소녀들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 참 좋은 문장이란 생각은 들지만, 내 근본적인 의문점은 이거다. “도대체 왜 야망을 가져야 하느냐?”. 이렇게 ‘야망’은 나와는 퍽 동떨어져 있는 단어였다.


요즘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고 툴 실력도 좀 늘리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어 보기 위해 국비지원 학원에 다니고 있다. 갑자기 왜 디자이너를 하기로 했냐 하면, 하고 싶은 일에 제대로 도전도 안 해보고 못 할 거라 생각하며 지레 포기해 버린 나 자신이 어이없게 느껴져서다.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해도 먹고살기 빠듯한 건 매한가지인데, 이럴 바엔 하고 싶은 일이라도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싶었다.


근데, 아무튼 최근에서야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작금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할 게 아니면 어차피 저는 계속 불안정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합니다. 어딜 가나 무슨 일을 하나 안정적 고연봉자의 꿈을 이루는 것은 요원한데, 재미도 없는 일에 목맬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불안정 저임금 노동자가 되는 편이 낫겠더라고요. 도대체 뭐 얼마나 벌겠다고 그렇게 하고 싶은 걸 피해 다녔던 건지,,, 아무튼 앞으로는 그냥 두려움을 껴안고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내가 쓴 '호기로운 디자이너 되기 선언문'에서 발췌-


호기롭게 디자이너가 되겠다 마음먹고 학원 등록까지 막힘 없이 진행했건만, 실력보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만이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학원에는 반짝반짝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학원 밖엔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런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나도 AI 배워야 하나? 코딩도 할 줄 알아야 하나? 피그마는? 모션은? 영상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면서 42.195km를 달릴 궁리를 하고 있으니 막막하다. 아무리 “나는 아직 시작 단계고, 기초를 쌓는 단계다.”라고 마음을 다스려도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디자인 실습을 하면 할수록 “내 디자인은 왜 이토록 구린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영영 미리 짜인 템플릿이나 수정하는 수준의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사람도 디자이너라고 불리기는 하는 건가? 나는 너무 늦게 시작해 버렸고 보는 눈도 없는데 어쩌나 싶다. 20살부터 디자인 한 사람들의 시간을 내가 따라잡을 순 없으니, 내가 보낸 시간 중에 이 분야로 가져올 수 있는 건 뭘까 고민한다. 사실 “고민한다”는 말 그 자체만 머릿속에 맴돌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의 이런 생각과 고민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기억될는지,,?

학원에서 한 낙서,,,,,,,,


그나저나 문득, 이렇게 조바심 내며 좋은 작업물을 만들어 내는 디자이너들을 동경하고, 같은 학원 수강생을 질투하고, 내 작업물이 좀 더 잘 나오길 바라는 내가 과연 야망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하는 거 좀 잘하는 사람, 아니 사실 좀 많이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건 분명 야망이다. 온갖 욕심 없는 척은 다 했지만, 그래도 욕심나는 분야가 바로 이거였다. “좋은” 디자이너, 디자인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

한참 주저리주저리 쓰다 보니, 그럼 야망이랑 꿈은 어떻게 다른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비슷한 것이겠지 뭐. 아무튼, 결론은 나는 야망이란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결국 나도 야망 있는 사람이고, 이 야망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싶다. 야망이라 불리는 꽤 거대한 미래상 이루기에 매몰되어 주변을 돌아보지 않거나 스스로에게 무한 긍정의 힘을 부여하고 싶지 않다. 이런 거 대신 야망을 동력 삼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망할지라도 꿋꿋하게 내 갈 길 가는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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