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작은 씨앗을 품고 있다 생각했다. 씨앗이 자라기 위해선 양분이 필요하다.
2015년부터 시작된 식당. 손님은 많아 보였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수익은 적었던 상황, 다 그렇듯 무릇 생활고를 겪을 땐 모든 일이 안 좋게 보인다. 발전하고 싶었다.
우리 가게 식당에서, 주문받은 메뉴를 말해줘야 할 때, 엄마가 듣지 못해 아주 많은 마찰이 생겼다. (화이트보드에도 쓰지만 바쁜 점심시간에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신다.) 처음에는 엄마 귀에 문제 있는 줄 알았다. 우리 가게는 생선을 굽기 때문에 우린 큰 환풍기를 쓴다. 환풍기 소리가 워낙 커 주방 내에서도 말을 전달하기 무척 힘들다. 귀도 조금 안 좋은 편이긴 하셨지만, 그보다 주방 불 옆에 있는 환풍기 소리 때문에 엄마는 잘 듣지 못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크게 말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긴 것이, 가끔 크게 말하는 내 목소리가 화난 것처럼 들리나 보다. 나의 큰 목소리를 통해 돌아오는 엄마의 소리는 짜증 썩여 있었고, 어린 나는 매번 엄마의 태도가 미웠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또 여러 번 설명해 드려야 하는 것에 환멸 했다. 설명을 하게 되면 불만만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루 이틀 같이 일할 것도 아니고 나는 엄마와 의도적으로 부딪혔다.
듣게 되셔도 문제가 발생했다. 대답하지 않으시면 엄마가 못 들은 거라 생각하여 한 번 더 말하게 된다. 대답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그렇게 같은 말을 두 번 하기 일수였다. (제가 이 상황에 민감한 이유는 엄마가 주문을 못 들었을 경우 주문받은 음식이 나가지 못하니 가장 큰 문제입니다. 손님이 10~20분 더 기다리게 되면 화가 많아지셔요... 특히 직장인 점심시간)
편해지려면 우선 불편해야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식당을 해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일이 정말 장난 아니게 많다. 쉬는 날도 거의 없고, 12~16시간 일하는 엄마는 식당에 자신의 모든 걸 갈아 넣은 상태였다. 그래도 내 기준에 부족한 면을 고쳐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2015년부터 빚더미인 우리에게 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서로 맞추지 않으면,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해처 나갈 수 없었다. 나를 이용하고 엄마를 이용했다.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텼다. 나는 한두 번 들으면 이해할 내용을 10번은 더 반복해야 하는 과정 속에 나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화를 많이 내게 되고, 제대로 된 수익을 느낄 수 없으니 점점 일 할 동력을 잃어 갔다. 일을 해도 빚은 미동도 없는 듯했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느낌은 내 기분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생각을 지우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괴롭다. 그냥 한다. 그냥 하는 거다.
어느 날, 손님에게 미소 짓던 내 모습이 사라졌다. 손님들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얘는 얼마 얘는 얼마... 손님들도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지우는 건 부족한 내게 아주 힘든 일이었다. 정신은 급속도로 피폐해져 갔다. 기름칠되지 않은 방치된 자전거처럼 끽끽거렸다. 내쉬는 나의 숨은 모두 한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게 회장님이라 불리는 손님이 계신다. 평소에 엄마 음식이 입에 맞으시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분께서 와이프와 다른 친구 부부와 같이 오셨고, 나를 친구 부부께 소개해주며 이렇게 말하셨다.
"허 허 내가 이 친구 팬이야! 아주 효자야 효자!"
그 말을 듣고 순간 울컥했다. 심장이 아파왔다. 시야를 눈물이 가렸고, 가린 줄 알았던 그 눈물이 렌즈가 되어 나의 좁디좁은 시야를 넓게 밝혔다. 광명을 찾았다는 표현은 이때 쓰는구나.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고 기뻤다. 한 사람의 인정이 우주처럼 거대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엄마에게 모질었고, 내게 모질었고, 손님들께 모질었던 나의 생각은 이제 없었다. 손님의 의중이 어쨌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은 게 아니라 내게 이정표처럼 보이는 천년 빛이 되어 이끌어 주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은 것 같았다. 손님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어린 나는 또 한 번 성장했을까. 20 후반. 작은 씨만 품고 있던 나는 꽃이 되고 있는 걸까.
손님이 어떤 기분으로 말씀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손님이 내게 해주신 말 한마디가 나를 꽃피웠다.
이제 내게 어떤 향이 날까 기대된다.
지금도 가끔 찾아주시는 고마운 우리 손님. 70이 넘으셔 연로하시지만 언제나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