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량음료 Jun 19. 2023

조성진을 만나다

꿈이 꿈결같이 이루어진 날

지난주는 우리 네 가족 중 두 명, 둘째 아들 완이와 남편이 각각 학교 캠프와 회사 출장으로 집을 비웠다. 생전 처음으로 큰아들과 단 둘이 지내는 5일 간을 사이좋게 보내면서 집도 잘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하루하루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수요일이 되었다. 나의 바이올린 선생님과 레슨시간 조정을 하던 중, 그분이 그러셨다.


“ 내일 프랑크푸르트 Alte Oper(알테오퍼, 오페라 극장이자 연주회장)에 조성진이 공연 오는데 알고 계세요? 같이 가실래요?”


2015년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순간부터 그의 광팬인 나는, 당연히 이번 프랑크푸르트 공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두 시간 거리인 쾰른의 공연을 다녀왔던지라 선뜻 적극적로 표 예매를 하지는 않았더랬다. 나의 조성진 사랑을 잘 알고 있는 바이올린 선생님은 내일 부부 동반으로 함께 가지 않겠느냐 물어왔다. 그래서 난 건이에게 물었다. “건아, 함께 갈래?”


건이가 음악회 가는 것을 나쁘지 않게 생각하며,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은 느낌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너무나 흔쾌히 가겠다고 이야기하여 추억도 쌓을 겸 기쁘게 표 두 장을 예매했다.




공연은 당연히 좋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성진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교향악단이 함께하였는데, 두 곡 중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만 조성진의 협연이었고, 나머지 한 곡인 말러의 작품은 심포니였으므로 결과적으로 전체 1시간 반의 공연 중 조성진은 30분 정도만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아쉽긴 했지만 이곳 음악회의 관행인 듯하였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교향악단에는 나의 바이올린 선생님의 대학 스승님이 악장으로 계신다고 했다. 연주회가 모두 마친 후 그분께 인사를 하기 위해 건물 옆쪽에 위치해 있는 쪽문으로 함께 향했다. 아마 틀림없이 조성진도 이 문으로 나올 것이므로 내일 다시 이 문으로 와서 지켜 섰다가 만나보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그렇게 그 스승님을 20분 정도 기다렸나… 갑자기 문 앞에서 후광이 비치며 그가 나타났다.. 어색하고 긴장된 표정의 조성진이었다. 순간 숨이 멎고, 시간이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조성진이 벌써 숙소로 돌아갔을 거라 예상한 우리들은(함께 간 교회분들이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레 닥친 행운에 어쩔 줄 몰라했다가, 정신없이 다가가서 사진을 함께 찍고 사인을 받았다.





나의 바이올린 선생님은 자신의 친한 친구가 조성진의 친한 친구라고 했다. 그 친구에게 듣기로는 오랜 연주회 생활로 인해 그가 낯을 더 가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바이올린 스승님에게서 들은 바로는, 연주회 직전 그가 스승님께 굳이 찾아와서 자신이 너무 떨린다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사람들 앞에 섰을 때 굳어있던 그의 표정도,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몰라 표정을 짓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아서 팬으로서 안쓰러웠다. 그가 빚어내는 음악이 너무나 아름답고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 것은 조성진의 복이겠으나, 그 어떤 일도 어두운 면이 있는 법, 언제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자신을 쫓아다닌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되고 무거울까 싶기도 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주회를 하는 생활이 거의 8년 가까우므로 이제는 익숙해졌을 법도 하건만, 여전히 연주를 앞두고 많은 긴장을 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힘든 외로운 싸움을 거의 매일 하는 것이므로, 조성진은 그야말로 ‘왕관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기간 조성진을 코 앞에서 대면하고 그에게 사인을 받아보길 꿈꿔왔던 나는 갑자기 그 꿈을 꿈결같이 이루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래서 또 다른 꿈을 꾸기로 했다. 조성진 님과 식사를 한번 하고 싶다. 아니면 피아노 합주라도.. ㅎㅎ 하지만 앞서 말했듯,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버거울 때가 많을 그를 생각하면 그 꿈은 꾸지 않는 것이 맞겠지, 팬으로서.


그렇게 2023년 6월 15일은 나에게, 큰아들과 음악회 데이트만으로도 행복했는데, 벅찰 정도의 서프라이즈가 내 인생에 찾아온 럭키데이로 남았다. 역시 인생은 그런 것이다, 초콜릿 상자 같은 거.


함께 사진찍어줘서 고마워요
급한대로 프린트한 티켓 뒷면에 받은 그의 사인

"저기.. 성진씨..." "네?" "죄송한데 사인좀..." "네~" 이렇게 그와 대화도 했다 ^^

매거진의 이전글 4월 근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