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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May 07. 2024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이유:

글을 쓰면서 알고 말았다. 내가 어떤 이유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지. 바로 이거였어. 난 말이야.... 난....




    감정의 둑이 무너져 내 삶의 단정한 안정감이 흔들리는 것을 목도할 자신이 없었다. 애써 쌓아 올린 우리만의 울타리에 어느 날 '툭, 투둑, 투두두둑'하며 하나둘 틈새가 생기다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을 알았기에 감정을 기워 올려 쓰는 행위를 두려워했나 보다. '감정의 둑이 기어이 열려 버리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과연 되돌릴 수 있긴 한 걸까.'



 

   육아하기에 적당한 마음 온도였다. 쓰기 전까지는. 

하지만 글이 일상에 스며들자, 엄마의 책임감에 균열이 갔다. 감정의 시류에 휩쓸린 채 아이들을 등한시한다는 것은 언제나 죄책감을 동반했다. 그래서였을까. 내 안의 2인조 중 결국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언제나 '이성'이었다. 

'지금 이럴 상황이 아니야. 감정 부스러기들에 의미 부여 하지 말고 주어진 일을 해야지. 당장 환기를 시키고, 계절에 알맞은 옷들을 챙기고, 육아서를 펼쳐. 그리고 냉장고에 건강한 식재료를 채워 넣고 아이들을 사랑의 눈길로 쓰다듬어 줘. 그런 다음 잠들기 전, 한 10여 분간 시간이 남는다면 그때, 네 감정을 챙기면 되잖아. 아님. 말고.'

© unsplash

    글을 쓰려면 하루의 햇살에 의미를 부여하고, 구겨진 영수증에 마음을 담아야 했다. 구깃구깃한 자그마한 종이를 펼쳐 생각을 살펴야 했다. '내가 이 작은 종이 한 장에 찝찝한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왜 이런 감정이 들었을까' 되새김질해야만 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수많은 물감을 일일이 열어 그 작은 것들의 색을 확인해야 했다. 어떤 날은 맑은 뭉게구름이 그려지고 어떤 때는 흐린 먹구름이 몰려오는지 세심한 붓질을 들여다봐야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멈췄다. '이렇게 사소한 감정들을 꼭 꺼내 명명해야만 할까. 쓰레기봉투 질끈 묶던 날들로 돌아가면 안 될까.'




    자잘한 의미를 부여할수록 댐이 무너져 물살에 허우적거렸다. 저수지의 윤슬을 바라보고 있던 삶에 파문이 일었다. 이대로 활자 안에서 감정의 북받침을 느끼는 것이 정당할까. 글이....내 삶에 무거운 파동을 일으키도록 내버려둬도 될까.

    엄마라는 역할이 없었다면 그래도 됐다. 엄마이기 전, 한 사람으로서 발칙할 만큼 감정에 솔직했으니깐. 

공항에 가서 비행기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만 듣다 온 적이 있다. 별다른 목적지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닌 적도 있었고, 내리는 비를 일부러 맞고 철벅철벅 걸어 간 적도 있었다. 사랑을 할 때는 온전히 마음을 주느라 심히 앓았고, 돌아오지 않은 마음에 애끓은 밤도 수없이 많았다. 사랑의 적나라함에 타들어 갈 것만 같았고, 발바닥이 찌릿찌릿 저리도록 온몸이 간지러울 때도 많았다. '지금은 사랑만 하고 싶어'라며 철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발가벗겨진 채 온몸을 맡겼던 내가, 그랬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 unsplash

    엄마는 그럴 수 없었다. 엄마는 그래선 안 됐다. 내 감정보다 아이의 감정이, 아이의 안전이, 아이의 안정이 우선시되어야만 했다. 안정의 테두리에 갇혀 그 외적인 감정엔 눈길조차 주어선 안됐다. 그것은 곧 일탈이었다. 엄마로서 행하면 안 되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였고, 그럴수록 감정을 네모반듯하게 다듬어 마음 한편에 동봉해야 했다. '지금 네가 나올 곳은 없어, 철부지 감정일 뿐이야.'




    단란한 마음에 자꾸 시샘과 욕망, 수많은 물음표와 적막함이 찾아 들었다. 잘 쓰고 싶고, 잘 쓰이고 싶었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한 헛헛함과 공허함을 채우고 싶었다. 이 마음으로 글을 쓰자 고요함에 파문이 일었고, 글을 쓸수록 가장자리의 출렁거림이 버거워졌다. 이 또한 내 모습이지만, 현실에서 살아가야 할 세상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감정의 글쓰기에선 이성으로 도피하고 싶었고, 적적한 이성에선 말랑한 감성을 파고들고 싶었다. 

    처음엔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단어로 명명되자 나를 더 알아가고 있음에 개운했지만, 글을 쓸수록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감정의 보자기가 흘러넘치기 전에 한숨과 함께 고이 포갠다. 손길로 한번 쓰다듬어 준 뒤, 침대 깊숙이 들이민다. 손에 묻은 먼지를 바지춤에 툭툭 문지른 뒤 다시 방문을 열고 나간다. 그런 마음이 있긴 했었나싶게 마음 대신 어질러진 주방으로 시선을 돌리고, 아이들 방을 하나씩 치운다. 그래, 여기가 삶이지. 그리곤 헛헛한 공허함을 분주한 일상으로 채워 넣고 만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느끼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 보일 날이 오겠지.' 

두 눈은 공허하고 손놀림은 바쁘다. 주인 없는 방에 들이친 햇살 속, 먼지의 소란스러움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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