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강작가의 매혹적인 어느 수요일

2028년 11월 13일, 미드 나잇 인 파리

by 스미다

작가 초청의 밤이 드디어 끝났다.

서둘러 인사를 전하고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미드 나잇 인 파리' 속 남자 주인공이 다소 흥분한 모습으로 설렘을 느끼던 그 다리에, 그렇게 동경하던 하루의 페이지에 들어와 버렸다. 블랙 드레스와 미드 힐 슈즈 그리고 베이직한 트렌치코트 앞섬을 여미며 세포 하나하나에 파리를 새겨 넣는다. 자유로운 파리의 영혼이 기지개 켜는 자정 무렵, 주황색 조명이 번진 매혹의 밤 거리는 다시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자유로움과 비이성적 감정이 요동치는 설레는 밤이다. 작가의 삶을 살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감정이자 각인하고 싶은 느낌이다. 글에 있어서 만큼은 적당함의 예의와 합의를 벗어두고 홀가벗고 취하고 싶다. 그래야만 다시 단정한 하루로 돌아가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난 떠나고 다시 돌아가나 보다.

© pixabay

한국에서 땅이와 생활하고 있는 남편에게는 미안한 감정도 들지만 어쩌겠는가. 작가는 남편, 자식, 가정으로부터 도망쳐야만 해낼 수 있는 '업'이 있는 사람인 것을. 원고에 미쳐있는 몇 달간 남편도 아이들도 해방감을 느끼며 각자의 자리에서 오롯이 살아갈 힘이 생긴 것은, 글쓰기가 우리 가족에게 선사해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가정이라는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인생을 도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첫째 바다는 훈훈한 외모로 독일에서도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나 보다. 페이스톡을 통해 친구들과 축구하는 모습, 학교생활 하는 모습, 기숙사 친구 DEN과 자동차 디자인대회 참가를 위해 땀 흘리며 상기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잘 익은 완숙 토마토 같다. 쨍-한 여름의 한 가운데 한 입 베어 물면 과즙이 철철 흘러넘치는 토마토 같이 생기있는 모습이, 그 열정이 귀엽다 못해 질투난다.(나는 그런 유년 시절을 보낸 적이 있던가)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더니 결국 자동차 디자이너를 목표로 독일에서 본격적인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바다의 세심한 성격과는 반대로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세련됨과 스피디한 디자인은 독일의 한 유명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둘째 땅이는 뉴욕과 런던 등을 오가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더니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문화와 함께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바랐던 내 바람이 이루어질 것 같다. 땅이의 모습을 보노라니, 누구 딸이길래 저렇게 딴딴하고 야무진가 싶어 웃음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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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과 와이프를 전적으로 써포트해주는 남편, 그리고 평범한 가정주부 역할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나의 존재, 나의 쓸모'에 대해 고뇌했던 시간까지. 그 불안정하고도 흔들리는 서툶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의 초고는 과연 완성됐을까. 그 시간을 견뎌냈기에 지금 세계 곳곳을 다니며 글쓰기에 정진할 수 있는 것이다.

돌아가 충전할 가정이 있다는 것, 서로를 본받고 섬기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는 것, 이것이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자 글 안에서 자유로움을 갈망하고 날아다닐 수 있는 이유다.



두 번째 소설의 마무리 작업을 마치는 대로 런던에서 열리는 '작가와의 밤_위드 런던'에도 잠시 들려야 한다. 로맨스의 성지인 노팅힐 북 샾에서 첫 번째 소설 '그곳에 내가 있었다'에 대한 독자와의 대화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그 가치를 먼저 알아봐 주고 인기를 끌며 추가 인쇄에 들어갔고 곧 한국에서도 여러 강연과 모임이 주최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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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어둠 속에서 자신의 외로운 글쓰기를 지속하는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 또한 그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음을. 단지 5년의 시간동안 담금질하며 묵묵히, 때론 담담히 써 내려갔을 뿐이란 사실이다.

하면, 쓰기만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리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는 직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지금, 5년 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 미래가 어땠을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자기검열의 감옥에 스스로를 묶지 말고 무모한 용기를 내보길 바란다. 다소 무모한 도전은 언제나 나를 상기시키며 미처 알지 못한 세계로 이끌어 줄 것이다.


파리의 마드모아젤이 되어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새벽 두 시가 되었다. 정처 없이 떠오른 단어들이 흩뿌려져 달아나기 전에 얼른 흰 여백에 묶어놔야겠다. 세계 여러 작가들에게 '매혹적인 글'이라는 칭찬을 들어 취한건지 와인과 샴페인을 너무 마셔서 취한 건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작가의 삶에 건배를.


À ta sant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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